"조지 오웰 소설에 끌려 '카탈루냐어' 배워 번역가 됐네요"

허윤희 2021. 1.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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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전문 번역가 권가람씨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권가람씨는 현재 미국 뉴욕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권가람 제공

“카탈루냐어는 모음 소리가 깊어요. 예전에는 ‘중세 음유시인 트루바두르의 언어’라고 불렀대요. 그래서인지 언어에 음악적 느낌이 있어요.”

권가람(34)씨는 국내에서 유일한 카탈루냐어 전문 번역가다. 카탈루냐어는 스페인 북동부 자치구인 카탈루냐에서 사용하는 소수 언어다. 스페인 4개 공용어 중 하나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 카탈루냐 소설가 자우메 카브레의 장편소설 <나는 고백한다>(전 3권·민음사)를 옮겼다. 그를 지난 19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스페인 북동부 자치구 ‘소수 언어’
대학때 교환학생 연수 지원해 수강
자우메 카브레 장편소설 첫 소개
바르셀로나 머물며 작가 집도 방문

‘인간은 같은 언어 안에서 사는 존재’
“인류학 관점에서 역사·문화 알리려”

2018년 7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있는 자우메 카브레 작가의 집을 방문한 권가람(왼쪽)씨는 취미가 같은 카브레(오른쪽)와 함께 즉석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다. 권가람씨 제공

“<나는 고백한다>를 번역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어요. 처음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거라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카탈루냐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 해설, 등장인물표 등을 보내줬어요. 그분들은 한국에 카탈루냐를 알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쁘다고 했어요.”

그는 한창 번역중이던 2018년에는 자우메 카브레의 집도 방문했다. “카탈루냐쪽에서 마련한 번역작가를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 덕분에 한 달 정도 바로셀로나에 머물렀죠. 그때 카브레 작가가 자택으로 초대해줬어요. 둘 다 취미가 바이올린 연주이여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즉흥 연주도 했어요.(웃음)”

소수 언어인 카탈루냐어를 번역하느라 난관이 많았다. 국립국어원에는 카탈루냐어 모음 표기 규정이 없다. 그는 다른 외래어 표기 기준에 맞춰 나름의 원칙을 세워 번역했다. “카탈루냐어 같은 소수 언어는 언어 지위가 낮잖아요. 사람들의 관심도 많지 않고요. 카탈루냐어를 잘 모르니 그냥 스페인의 지역 방언 정도로 잘 못 알고 있는 분들도 있고요. 스페인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어는 카스티야어예요. 카탈루냐어와는 완전히 달라요.”

카탈루냐어를 번역하는 이도 찾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카탈루냐어로 된 작품은 대부분 카스티야어(스페인어) 등 다른 언어로 옮긴 것을 중역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탈루냐 소설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차가운 피부>(들녘·2007) 등도 이렇게 국내에 소개됐다.

그는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1938년) 때문에 카탈루냐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서 <카탈루냐 찬가>를 읽었어요.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데, 거기에 나오는 카탈루냐는 평등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곳으로 나와요. 그 책을 읽고 카탈루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지요.”

서어서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바로셀로나에 있는 대학으로 교환학생 연수를 갔다가 카탈루냐어를 배웠다. “일부러 첫 학기에 카탈루냐어로만 하는 수업을 들었어요. 못 알아듣는 채로 앉아 있었으니, 학점은 안 좋았죠.(웃음)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났더니 귀가 열리고 말문이 트였어요.”

언어는 한 민족의 세계를 만나는 통로이다. “소설 <나는 고백한다>에 등장하는 팔루바 신부가 ‘인간은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서 살아간다’고 해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살지만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카탈루냐 사람들을 보면서 이 말이 가장 와 닿더군요. 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란 단순한 정보가 아닌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이며 정체성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다른 세계를 알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

카탈루냐어에 관한 관심은 역사와 문화로 이어졌다. 본래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닌 독립 왕국이었던 카탈루냐는 1714년 스페인에 강제 병합됐다. 이후에도 카탈루냐인들은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분리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다. “카탈루냐인들을 통해 유럽에 있는 소수 민족의 상황을 알게 됐어요. 그들은 비록 국가가 없지만 독립을 향한 목소리를 내고 서로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민음사 제공

현재 그는 미국 뉴욕의 한 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 모로코 개발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인류학과 번역 작업은 공통점이 많아요. 둘 다 타인의 문화를 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무척 매력적인 일이죠.”

그는 인류학 공부와 더불어 국내 독자들에게 카탈루냐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카탈루냐 문학 작품이 많아요. 계속 소개하고 싶어요. 여력이 된다면 제가 알고 있는 카탈루냐 문화와 역사를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책도 펴내고 싶어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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