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일자리 4만개 안긴 테슬라, 노조엔 '굴욕' 안겼다
지난 한 해 전세계는 전기차 시대를 향한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앞다퉈 미래차 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놨지만, 미래차의 등장과 함께 사회가 겪게 될 성장통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자동차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전통적인 노사관계의 해체는 아직 펼쳐보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미래차가 우리 사회에 일으키고 있는 균열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테슬라 공장 안에도 민주주의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은 ‘아니요’에 가깝다.”
독일 금속노조는 최근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여름 가동을 앞둔 테슬라의 베를린 기가팩토리를 두고 한 이야기다. 유럽의 가장 큰 전기차·배터리 생산기지가 될 베를린 기가팩토리는 독일 안팎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왔다. 내연기관차의 몰락으로 골머리를 앓는 독일의 숨통을 터준 효자이자, 다른 유럽 국가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거머쥔 트로피이기도 하다. 투자 금액 40억유로(약 5조3000억원), 연간 생산량 50만대, 일자리 4만명. 거론되는 숫자들은 저마다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전기차 전환으로 인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테슬라가 창출할 일자리는 노동자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그럼에도 금속노조를 비롯한 독일 자동차산업 종사자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이들은 길게는 100년간 다져온 노사관계의 토대가 테슬라의 출현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테슬라가 미국 월마트처럼 독일식 노사관계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왜일까.
45년 역사 ‘공동결정’ 비켜간 테슬라
27일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의 설명을 들어보면, 테슬라는 독일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노사공동결정제도를 적용받지 않을 전망이다. 1976년 제정된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은 노동자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도록 한 제도다. 기업 감사위원회에 사측 위원 수만큼 노동자 위원을 두는 것이 뼈대다. 노사 동수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회사 전반의 사안을 함께 다루고 결정하게 된다.
공동결정은 독일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노사 갈등의 완충 역할을 하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경영의 유연성을 해친다는 일부 기업의 반발에도 명맥을 이어온 이유다. 2006년 공동결정제도 30주년 연설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은 유럽에서 파업 일수가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다. 이는 공동결정의 영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일정 규모의 회사라면 모두 적용받는 이 제도를 테슬라만 피해간 데에는 일종의 ‘꼼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금속노조는 “테슬라는 직접 법인을 설립하는 대신 이미 설립된 유럽주식회사(Societas Europaea)를 사들인 뒤 법인명을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주식회사는 범유럽 차원의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각국 법이 아닌 유럽연합(EU) 공통 법체계를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도 유럽주식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990년대 노사가 고용 안정과 근무 시간제를 교환해 최악의 해고 사태를 면했던 ‘폴크스바겐 신화’도 테슬라에서는 볼 수 없는 셈이다.
테슬라는 단체교섭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 개개인과 개별적으로 임금협상을 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3월 금속노조가 만남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조합원만 230만명,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금속노조로서는 굴욕적인 모양새다. 앞으로 둘 간의 관계가 평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금속노조는 “많은 루머가 있지만 일단은 테슬라를 믿어볼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노조 만들면 스톡옵션 없어”
독일 노동자들이 근심에 빠진 이유는 또 있다. 테슬라가 이미 미국에서 ‘무노조’ 원칙으로 악명을 떨친 전력이 있어서다. 2016년 공장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하자 이를 방해한 혐의로 시정명령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노조 혐오’가 널리 알려진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의 판결문을 보면, 테슬라 프리몬트 공장 직원 일부는 2016년 가을부터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도움을 받아 노조 조직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른바 ‘테슬라에서의 공정한 미래’(Fair Future at Tesla) 캠페인이다. 캠페인을 주도한 호세 모란은 블로그에 “테슬라는 미래지향적인 회사지만 노동환경만 놓고 보면 과거에 사는 듯하다”며 “몇달 전에는 작업 관련 부상으로 팀원 8명 중 6명이 동시에 병가를 내야 했다”고 적어 화제가 됐다. 매주 60~70시간 일해 피로에 시달리지만, 다른 완성차 업체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 탓에 경제적으로는 초과근무수당에 의존하게 된다고도 했다.
일론 머스크는 즉각 반응했다. 호세 모란과 만나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 문제를 고치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전미자동차노조는 당신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노조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노조 휘장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도 세웠다. 조직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직원들이 노조 편에 서면 스톡옵션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암시해 논란을 키웠다. “(테슬라 직원들은) 원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전미자동차노조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노조비를 내야 하고 스톡옵션을 포기해야 하는데 왜 그러겠는가?” 머스크가 2018년 5월 트위터에 올린 문구 중 일부다.
노동관계위원회는 이런 행위가 노동관계법 위반이라고 보고 2019년 9월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테슬라의 기본적인 방향성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몬트 공장에는 여전히 노조가 없으며, 머스크는 그 후로도 노동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테슬라가 방역지침을 어기고 공장을 가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전미자동차노조 쪽에서 법 위반이라고 지적하자 머스크는 “테슬라는 검증된 방역지침을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트위터에 공유하며 응수했다.
대전환 시기에…노사관계 어디로 갈까
테슬라의 ‘반노조’ 논란은 전세계 자동차산업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동차산업의 경계는 희미해지는 추세다. 테슬라, 구글(웨이모), 아마존(죽스), 애플, 바이두… 자동차 업계에 도전장을 낸 테크·아이티(IT) 업체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 기업은 자연히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와는 전혀 다른 디엔에이(DNA)를 갖는다. 실리콘밸리 특유의 ‘노조 알레르기’가 대표적이다. 테슬라가 자동차산업에 일으켜온 여러 균열이 개별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힘의 이동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자동차 부가가치 창출의 무게중심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아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생산직 노동자들의 협상력은 계속해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산업 전반의 노사관계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테슬라가 보여준 미래차 산업의 예고편은 결국 현실이 될까. 전문가들은 대전환의 시기에 전통적인 기득권과 새로운 힘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테슬라가 저렇게 나올 수 있는 것도 결국 (노조에 비해) 자신들의 협상력이 훨씬 높다고 보기 때문인데, 노조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자동차산업 내에서 디지털 격차로 인한 갈등과 구조조정은 더욱 심해질 텐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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