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지원 핑계로 금융업 본질 훼손.. "은행이 화수분인가" [정치금융에 멍드는 금융사]

이병철 2021. 1. 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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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금융수장 불러 수시로 압박
뉴딜펀드 참여 등 '성의' 보여도
이익공유제·이자 등 일방적 요구
"간섭 최소화해야" 금융권 속앓이
#1. 지난주 여당 주요 인사들과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간담회를 가진 후 금융권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간담회 후 논의 내용이 알려지자 자조를 넘어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여당에서 급증하는 상업용 대출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에 정치권에서의 상업용 대출 규제도 곧 시작되는 거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금융권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금융그룹 회장들을 불러 '정신교육'을 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2. 지난해 12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로나19 병상 확보 협력을 위한 금융업계 화상간담회'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소상공인에 대한 예대금리 완화에 마음을 써달라는 것. 이 대표는 "예대금리 완화 조치를 생각하고 있는 (금융지주) 회장님이 있고 다른 회장님들도 기꺼이 하겠다고 말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은행들은 바짝 얼어붙었다. 여당 대표가 예대금리를 직접 언급하고 나온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을 향한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십자포화식 '압박'이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마디로 '금융의 정치화'에 금융시장이 본래의 본질과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서민들의 어려움을 빌미로 정치인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여과 없이 쏟아지고 있다. 예컨대 이자제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기준 변경, 대출 만기 및 이자유예 등 금융업의 본질을 훼손하는 설익은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이익공유제로 금융권을 압박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산업계에서 퇴짜 맞은 극약처방을 규제 업종이라는 이유로 금융권에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정책 조율자의 역할을 상실한 채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금융당국은 정치권의 외풍을 조율하기는커녕 납작 엎드린 채로 정치권의 '정책 도구'로 전락하는 형국이다. 신성환 전 금융연구원장은 일련의 상황에 대해 "완벽한 금융의 정치화"라고 규정하면서 우려를 쏟아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가 금융기관들의 대출이나 이자 등을 간섭하는 것은 지난 1970년대 개발정부 시절의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업의 본질 훼손 말아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금융업의 본질을 해치는 압박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서민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손 안 대고 코풀기식으로 금융을 통한 설익은 해결책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끝없이 양산되면서 금융권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신 원장은 "서민들 돕는 것은 금융당국, 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아니다"라며 "이런 것은 기획재정부나 재정 등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금융에 대한 구체적인 압박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하면서 착한 임대인에게는 금리인하를 해줘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이후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할 때 예외적인 경우로 감안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심지어 이자 금지까지 거론되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은 최근 한 방송사에 나와 "임대료만 줄이고 멈출 것이 아니라 은행권의 이자도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며 "개인 신용등급을 하락시켜 이자 부담을 높이거나 가압류·근저당 등의 방식에 대해 올 한 해 동안은 멈추는 사회운동이나 한시적 특별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역대 다른 정부에서도 정치가 금융에 관여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관여를 심하게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며 "정치권의 과도한 간섭은 금융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 금융권, "은행이 화수분이냐"

금융권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끝없는 추가 지원 압박에 피로감이 표면화되는 모습이다. 그간 금융권은 어려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유예를 지난 1년간 시행해왔고 대출만기 연장은 좀 더 연장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또 전 산업 유일하게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해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연수원 등을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로 활용될 수 있도록 통 큰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 금융사들은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 펀드에도 잇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익공유제의 화살이 금융권으로 향하자 금융권은 "은행이 화수분이냐"라면서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금융업이 규제 산업이라고 해도 엄연히 사기업인데 과도한 간섭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신성환 전 금융연구원장은 "정부가 민간회사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며 "특히 제발 민간회사들 팔 비틀어서 기금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금융당국에서부터 금융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전문성을 갖고 목소리를 내줘야 하고 정치권도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그래야 금융이 산업으로서 바르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정치권에서 모든 것을 일단 덮어두자는 것"이라며 "더 큰 문제가 추후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의적 개입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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