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설기현 "유럽 가고픈 선수는 경남으로 오라"
포포투=이종현(통영)]
설기현 경남FC 감독은 다른 축구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 확신은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자신감은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확신이 없으면 허풍으로 끝날 수 있다. 설기현 감독은 2020시즌 프로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감독이 내비친 자신감이나 팬들의 높은 기대감은 오히려 의심을 키웠다. 하지만 경남은 플레이오프까지 올라 수원FC와 승격을 다퉜다.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희망을 봤다. 설기현 감독은 경남 축구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자기 축구에 대한 확신 때문일까. 감독 설기현은 내내 여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수원FC에 질 것이다”로 대표되는 발언이나 준플레이오프(vs대전하나시티즌), 플레이오프(vs수원FC) 미디어데이에서 장난기 어린 표정과 행동이 그 압축본이다. 그는 <포포투>와 인터뷰 도중 국가대표 발탁과 유럽행을 원하는 선수가 경남에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발언의 수위보다 미묘한 표정에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2021시즌. 국가대표 공격수 이정협을 비롯해 윌리안, 에르난데스, 임민혁 등이 경남으로 향했다. 경남을 선택한 선수들 사이 “설기현 감독의 축구가 배우고 싶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설사커’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배우고 싶은 축구로 통한다. 설기현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한 2021시즌 경남이 일관성 있는 경기력을 바탕으로 K리그2에서 가장 좋은 팀이 될 거라고 말한다.
프로 감독 첫 시즌 플레이오프까지 올랐다. 기대했던 결과였나. 이상이었나.
기대한 만큼 갔다. 하지만, 과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승격할 뻔했는데 못했다. 시즌 후반부에 나온 경기력과 결과를 초반부터 보여줬다면 좋았을 거다. 경남이 하고자 하는 축구와 다른 면들이 나타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힘들게 시즌을 치른 것 같다. 그런 아쉬움이 있다.
뒤늦게 불이 붙었다. 수원FC와 플레이오프가 시즌 최고의 경기력이었다고 자평했다. 나름 좋은 마무리였다.
수원이 4-4-2 전술을 썼다. 내가 (4-4-2 포메이션을) 공략하는 방법이 있는데 내 생각에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이 나왔다. 상대가 전술적으로 어려워하는 포인트가 있다. 선수들이 그걸 이해하고 계속 공략했다. 선수들이 찬스를 많이 만들면서 수원을 압도했다. 마지막에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선수들이 원팀으로 상대를 어렵게 하는 축구를 하는 걸 보면서 만족했다. 가장 긍정적인 건 스스로 ‘내가 준비한 축구가 가능하겠다’라는 자신감과 확신을 얻었다는 점이다. 원래 (새 시즌) 선수 구성에 많은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이후 선수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전술적으로 선수들이 내 플레이 스타일에 적응했다고 생각하니까 섣불리 못 바꾸겠더라. 기존의 틀을 지키고 각 포메이션마다 내 전술에 맞는 성향에 선수를 영입해 경쟁시키려 했다. 선수는 자신감이 생겼다. 서로 신뢰가 강해졌다.
선수 구성에 맞게 전술을 짜는 감독,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감독도 있다.
감독마다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난 내가 원하는 축구가 있다. 작년에는 내가 늦게 부임해서 기존에 구성된 선수로 최대한 맞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술적으로 원하는 선수를 영입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올 시즌은 내 스타일에 맞는 선수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골을 잘 넣는 공격수보다는 전술적인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한 거다. 골까지 잘 넣는 선수는 전북이나 울산으로 간다.(웃음) 나는 전형적인 타깃형 스타일보다는 우리 전술에 잘 맞는 선수가 좋다. 우리 전술에 특화된 선수를 영입했다. 전술적으로 잘 드러내야 원하는 경기력이 나온다. 결과는 경기력에 따라 나온다. 이기는 것과 비기는 것의 비중이 높은 팀이 되려면 전술이 드러나야 한다. 수원FC전처럼 때론 원하는 결과는 못 얻어도 목표를 위해 그런 경기력에 도달해야 한다. 한 번은 운으로 된다. 실력이 없으면 두 번, 세 번의 기회는 없다. 내가 원하는 팀은 경기력을 바탕으로 결과까지 잡아야 한다.
'설기현 축구는 다르다'는 시선이 있다. 선수들도 ‘설기현의 축구를 배우고 싶어서 왔다는 입단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마치 강원의 김병수 축구를 배우기 위해 선수들이 모이는 경향과 비슷하다.
감독으로 좋은 팀을 만드는 게 첫 번째다. 나와 선수가 자부심을 느끼고 누구나 오고 싶은 팀을 만드는 게 목표다. 우리는 항상 문이 열려있다.(웃음) 뜨거운 열정이 있다. '내가 국가대표가 되거나 유럽에 나가고 싶은 선수들이나 축구를 재미있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친구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 선수들이 나를 믿고 팀을 선택한 건 감독으로서 감사한 일이다. 열심히 하고 있으나 '내가 더 잘해야겠구나’ 싶다.
지난 시즌 화제가 된 ‘설기현 감독의 믿으세요' 사진을 알고 있나.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많다는걸 뜻하기도 한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못해서 관심이 많은 것 같다.(웃음) 잘하고 다른 축구를 해야 하는데, 아직은 경남 색깔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약간 다른 플레이스타일을 좋아하는 팬분들이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시즌을 하면서 '시즌 중후반에 많이 발전했구나' 느꼈다. 지금은 전술적으로 바뀐 것도 있다. 처음에 자신감 있을 때 비춰보면 많이 부족했구나 매번 느낀다.'관심 주실 때 부응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부족하지만 팬들을 위해 재미있는 축구를 하겠다.
스스로도 설기현 축구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나.
‘설사커’는 우리가 수비할 때 상대를 어렵게 해서 궁지로 몰고 실수를 유발해 볼을 빼앗듯, 공격상황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가지고 역이용해서 경기를 푸는 축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수의 개인 기량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게 부족해도 전술적인 방법을 통해서 어려움을 풀고 실수로 상대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다가 상대가 ‘이제 됐다'고 느낄 때 어렵게 하는 게 축구를 쉽게 만드는 방법이다. 축구가 쉬워지면 또 즐거워진다. 그런 점에서 작년보다 좋아질 거다. 상대를 가두고 공격할 거다. 우리 목표는 상대 진영에 가두고 집중적인 공격을 통해 무력화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격하고 골을 만들고 수비의 안정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거다. 그러면 승격 아닌가?(웃음) 그렇게 하고 싶다.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사실 나도 궁금하다.(웃음)
대전과 준플레이오프, 수원FC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기자회견장에서 보인 여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험인 것 같다. 선수 때부터 많이 경험했다. 감독이지만 진지하면서도 중요한 시기지만 때로는 굉장히 재미있고 자신감 있게 나가는 것도 모습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진지하다고 해서 매번 상황이 유리하거나 결과가 좋지 않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대를 방심하게 할 수도 있다. 미디어도 예상 답변이 아닌 이야기가 나오면 좋지 않나? 예를 들어 “우리가 수원FC에 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들이다. 당시 떠올라서 했던 발언인데, 선수 때 내 진지한 이미지만 알던 사람들은 놀랐을 수도 있다. (감독 때도) 진지한 이미지이고 싶지 않다. 긴장도 하지만 자신감과 여유 있는 모습으로 팬들과 상대 팀에 비치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설기현 감독에게 자신감이란 키워드가 떠오른다.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상하게 현역 때보다 감독인 지금 자신감이 더 있다. 나만의 컬러가 자신감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감독은 어려서부터 하고자 했다. 20대 후반부터 감독을 하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했다. 그때부터 다르고 특별해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해왔다. 지금 내가 하는 방식에는 경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접근 방식은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전술적으로 다른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선수 때와 감독인 지금은 이미지가 달라 보인다. 기점은 언제인가?
원래 내 본모습이 이렇다. 선수 때는 미디어 노출이 많지 않다. 경기 전후로 인터뷰 외에는 접촉하는 모습이 없다. 그래서 운동장에서 설기현만 보셨을 거다. 하지만 감독 설기현은 많은 상황에서 보이니까 원래 모습이 더 드러난다. 지금이 원래 내 모습에 가깝다.
단체 미팅을 자제하고 그룹별로 영상 데이터를 수시로 유연하게 활용한다고 들었다.
영상 편집으로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 건 중요하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다. 내 축구의 중요한 건 일관성이다. 선수가 식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영상을 보여주고 훈련하면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너무 영상만 활용하면 집중력이나 미팅에 대한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선수들에게 보여준다. 단체로 모여서 행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단체 영상 시청을 최소화한다. 사실 공격수인데 수비수 내용까지 볼 필요는 없지 않나. 편집은 내가 할 수밖에 없다. 나만 아는 전술이다. 지겹지 않고 효과적으로 이해하게끔 구성한다. 선수 때 경험하고 해외에서 봤던 것을 활용한다. (FFT: 감독이 편집을 직접 하는 건 처음 들었다) 편집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대학교 가기 전 프로 선수 시절 때 배웠다. 내가 하고자 하는 축구는 정해져 있는데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시킬 수 없다. 내가 너무 많은 걸 하면 분석관이 할 게 없다.(웃음) 그래서 기본적인 것 잘라서 붙인다. 이후 분석관에게 영상 효과를 요청한다.
"K리그2에서 가장 좋은 팀이 될 거라”라는 선언을 했다.
가장 좋은 팀이 되는 게 목표다. 그런 역량이 있는 팀이다. 구단주 김경수 경남도지사님이 지원과 관심을 주고 계신다. 우리가 생각했던 목표에 못 미칠 수 있지만 여지를 남기는 것보다 최대 목표치를 던져놓고 도전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선수들도 경험했다. 프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난 시즌 큰소리쳐서 고생했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낮추고 싶진 않다. 우리 목표는 경쟁력을 갖추고 다이렉트 승격하는 거다.
선수 구성은 만족하나. 전술 완성도도 중요하다.
선수 구성과 기량은 확실히 좋아졌다. 우리 목표는 전술이 확실히 드러나는 경기력을 보이는 것이다. 전술에 맞는 선수 구성이 중요한데,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 면에서 작년보다 구성이 좋아졌다. 선수 능력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경기력이 유지돼야 한다. 전술 완성도가 필요하다. 기존 틀은 지킨 것은 더 익숙해지고 디테일해지는 전술 변화가 따라와야 한다. 우리가 시험 문제를 공부할 때 기초 문제를 풀고 심화를 한다. 올 시즌은 전술을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한다. 확실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 영입 방향은 어떤지 설명해달라.
같은 유형의 선수를 여럿 영입하는 게 좋은 팀은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리오넬 메시 10명으로 선발라인업을 구성한다고 좋은 팀은 아니다. 포메이션에 전문성을 가지고 전술에 잘 맞는 선수가 필요하다. (이)정협이는 많은 움직임으로 상대 파이브백에서 공간 창출을 해줄 거다. 우리의 전술로 윌리안과 에르난데스에게 볼을 가져다줄 수 있다. 크로스나 슈팅은 선수 능력이다. 임민혁이나 김소웅은 공격형 위치에서 때로 키핑이나 움직임을 통해서 상대 조직을 무너뜨리는 움직임을 할 수 있다. 전술에 특화된 선수, 수준이 높은 선수를 데려오는 영입 목표로 세웠는데 나름 잘 됐다.
이정협의 영입이 신선했다. 과정을 말해달라.
전술적인 활용도와 우리 팀에서 어떤 플레이를 요구할 건지 이야기해줬다. 스스로 고민하던 걸 내가 말해주니까 마음이 바뀐 것 같다. (이)정협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이를 통해 축구가 더 재미있어지고 찬스를 더 많이 잡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승격하려면 최소 두 자릿수 이상을 보장하는 공격수가 필요하다. 이정협도 좋은 선수이지만, 승격에 필요한 최후 퍼즐로 생각하면 아쉬운 구석이 있다.
골은 넣는 선수가 넣는다. 그러면 나머지는 수비 잘하는 선수로 전략을 짤 수 있다. 나는 (이)정협이가 15골 이상 가능하다고 본다. 그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기량의 선수가 주변에 많다. 동료들이 (정협이에게) 만들어줄 찬스, 정협이를 통해 만들어질 찬스가 있다. 특정 선수에게 득점이 편중되는 건 좋지 않다. 선수가 막히거나 컨디션 저하되거나 부상 등 변수가 많다. 다양한 선수가 다양한 포메이션에서 찬스를 만들어야 상대가 막기 어렵다. 정협이에게 거는 기대도 크지만 주변에 좋은 선수가 많아 서로 도움이 될 거다.
결국 핵심은 조화인가?
축구는 팀플레이다. 세계적인 선수를 봐도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다른 경기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주변 선수가 못 받쳐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 한두 선수가 아니라 다섯 여섯 선수가 좋다. 충분히 시너지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2021시즌 '설사커'에 기대를 갖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경남 만의 독특한 축구를 하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 (지난 시즌에는) 포메이션은 독특했으나 모호했다. 올 시즌은 포메이션뿐만 아니라 플레이 내용도 다르고 상대가 대처하기 어려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결과까지 내겠다. 승격하겠다. 새 시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응원해 주시면 기대에 부응하겠다.
사진=이연수, 한국프로축구연맹
영상=허지연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