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칼럼] 우리 세대가 깨닫지 못한 것

박찬수 2021. 1. 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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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를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한국 사회를 이만큼 바꿨다는 역사적 자부심은 크지만, 정서적으로는 특히 젠더 문제만큼은 <미성년>의 김윤석처럼 성숙하지 못한 건 아닐까. 그걸 깨닫지 못했기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는 말만 되뇌는 것은 아닐까.
최근 성추행 사건으로 직위해제된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1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새해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김종철씨가 정의당 대표로 선출되기 전, 그를 만나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김종철씨는 위기에 처한 진보정당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진솔하게 생각을 밝혔다. 그것이 마법의 탄환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으로 진보정당이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나는 동의했다. 86세대의 마지막이면서 새로운 세대 시작임을 자부했던 그가 정의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는 정말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다.

그날 대화 중엔 젠더 문제와 페미니즘에 관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성추행 소식을 들은 뒤의 충격은 이전 사건들과는 전혀 달랐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이 났을 때는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누구나 자기 유리한 쪽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기자 생활을 하며 수없이 봐왔던 터라, 차기 유력 주자였던 안 전 지사가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파장은 훨씬 컸다. 평생을 공적 가치를 위해 살아온 박 전 시장이 성희롱 사건으로 생을 마감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이후 ‘미투’ 운동으로 젠더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 되었는데, 또다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지금도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안희정, 박원순 사건을 겪고도 지금 이 시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의아해한다.

나는 이번엔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보다 이게 우리 세대, 이른바 86세대가 갖고 있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젠더 문제가 진보·보수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맞는다. 그러나 과거엔 보수정당에 집중됐던 사건이 요 몇년 새 진보정당에서 잇따라 터져나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 여러 분야 권력의 상층부에 진보 인사들이 많이 포진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변했다는 뜻이고, 더이상 ‘운동의 대의’라는 허울로 이런 문제를 덮고 넘어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또한 여기엔 그동안 자각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문제, 우리 세대 모두에게 공통된 어떤 문제가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김종철 전 대표 사건이 공개된 날 저녁, 대학을 갓 졸업한 딸의 반응은 이랬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오른 사람이 어떻게 이런 미성숙한 행동을 할 수가 있지?” ‘미성숙’이란 단어가 가슴을 때렸다. 정말 우리 세대는 사람을 대하는 데서 미성숙했던 게 아닐까. 우리가 믿었던 가치와 지향에 가려서, 여성을 대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경시했고 젠더 권력관계에 무감한 걸 당연시한 게 아니었을까. ‘페미니즘은 더이상 계급운동의 하위개념이 아니다’라는 말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선 어떻게 상대방을 대해야 하는지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장혜영 의원이 던지는 “누구든 동료 시민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왜 눈앞의 여성을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라는 물음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다.

영화 <미성년>에 나오는 배우 김윤석씨는 사회에서 나름 성공한 중년 가장이다. 그는 중견기업 부장으로 부하 직원들에겐 존경을 받고(어쩌면 존경받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에서는 믿음직한 아빠고 남편이다. 그런 그가 외도를 하고, 상대 여성(배우 김소진)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후엔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한다. 배우 김소진씨가 아이를 조산했는데도 병원에 단 한번도 찾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철이 든 건 아이들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윤석·김소진의 두 딸은 처음엔 서로 미워하고 싸우지만, 너무 일찍 태어나 결국 숨진 갓난아기 동생의 장례를 함께 치러주려고 할 만큼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에서 진짜 성숙한 건 아직 미성년인 두 딸뿐이다.

우리 세대도 그랬던 건 아닐까 싶다.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를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한국 사회를 이만큼 바꿨다는 자부심은 크지만, 정서적으로는 특히 젠더 문제만큼은 <미성년>의 김윤석처럼 여전히 성숙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젊은 세대가 우리를 보는 눈이, <미성년>의 두 고등학생 딸이 어른을 바라보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걸 깨닫지 못했기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는 말만 되뇌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슴이 아프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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