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탈가정 청년을 아십니까? / 김선기

한겨레 입력 2021. 1. 27. 18:06 수정 2021. 1. 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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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김선기 l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자신을 ‘탈가정 청년’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연구참여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탈가정 청년은 가정폭력, 가정불화, 성폭력, 아웃팅, 파산 등의 원인으로 원가족과 단절을 실행한 청년들을 뜻하는 말로, 여기에서 단절은 주거 분리와 경제적 지원 단절은 물론 적극적으로 관계 자체를 차단하는 정서적 단절을 포함한다.

연구참여자들이 꼽은 탈가정의 이유를 종합하자면, 핵심은 부모가 자신을 평등한 인격적 존재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성인인 자녀의 행동과 선택을 존중하지 않으며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가하거나, 명의를 빌려 채무를 대신 지게 하거나, 자녀가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경제적 지원을 빌미로 과도하게 간섭하는 등 부모로부터 물질적 또는 정서적으로 착취당했다는 인식은 이들이 탈가정을 결심하게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처한 탈가정이라는 상태가 청년기의 생애주기 과업으로 이야기되는 독립(자립)과 매우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청년의 이행은 의존 상태에서 독립 상태로 이행을 뜻한다. 이때 독립의 대표적인 지표는 노동 이력을 시작으로 경제적 자립, 원가족과 분리된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 즉 정서적 자립과 원가족과 주거 분리 등으로 탈가정의 지표와 거의 중복된다.

그러나 탈가정 청년의 독립은 다른 청년들의 그것과 비교해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청년의 독립과 이행이 점점 더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한 장기간의 프로젝트로 변화되고 있는 데 비해, 탈가정 청년에게는 매우 갑작스럽고 긴급하게 실행된다. 다수의 청년은 독립 상태로 이행하더라도 각자의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부모를 포함한 원가족과 다양한 자원을 상호 이전할 수 있다. 비빌 언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탈가정 청년이 절연된 원가족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원가족과 다시 연결되었을 때 경제적, 정서적으로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탈가정 청년과 대화가 내게 소중했던 큰 이유는 청년을 연구한다는 나조차도 듣지 못하고 있었던 청년의 목소리를 알게 되었다는 데 있다. 대책 없이 탈가정 후 대학 학생회실에서 몰래 몇 달을 살았다거나, 혼자만의 힘으로 학업을 마치기 위해 휴학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번다거나, 부모와 통화하는 것만으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탈가정 청년의 서사는 세상에 숱하게 존재해 왔는데도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아니면 과거에 대한 재현에서나 볼 수 있었지 논문이나 일간지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어려웠다.

참고로, 이번 연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0명 중 44명(22%)이나 되는 청년이 자신이 탈가정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 중 절반 정도는 가정 폭력·불화·갈등·파산 등을 탈가정 실행의 이유로 꼽았다. 표본의 통계적 대표성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절대 탈가정이 극소수의 청년에게서만 일어나는 희귀한 일이 아니라는 점만은 명확하다.

지난 한 해, 언론에는 많은 청년의 모습이 등장했다. 부모의 돈까지 ‘영끌’ 해서 주택 매매에 나선 청년, 주식 열풍에 빠져 ‘한탕’을 노리는 청년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열악한 주거환경,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청년의 모습도 여전히 자주 나왔으나 그들의 배경에 있는 부모의 얼굴, 그리고 청년의 어려움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전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탈가정 청년의 분명한 존재는 기울어진 재현 체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어 있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을 통해 이행을 준비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청년을 정책의 기준으로 상상하기에, 탈가정 청년은 정책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정책은 억압적인 가족으로부터 뛰쳐나온 탈가정 청년들에게 ‘부모 동의’를 받아올 것을 요구해 왔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모든 청년의 독립을 원한다면, 그 독립이 가장 절실한 이들에게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탈가정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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