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호루라기'를 부수겠다는 법무장관 후보
‘휘슬 블로어’라는 말이 있다. 휘슬은 휘파람, 호루라기, 라는 뜻이고, 블로어는 부는 사람이나 장치를 뜻한다. 휘슬 블로어를 곧바로 번역하면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을 뜻하는데, 19세기 영국에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서 시민과 동료들에게 위험 상황을 알렸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요즘은 어떤 조직 내부에서 은밀하게 벌어진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공익신고자, 공익제보자, 이런 말로 부르고 있다.
조직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 부패, 불법, 비리 같은 불합리한 일들은 여간해서 밖에 있는 사람이 알기 어렵다. 특히 조직원들끼리 서로 담합해서 저지르는 비행은 밖으로 새나갈 수가 없다. 이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내부 고발자, 즉 휘슬 블로어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최근 신임 법무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폭로한 공익신고자를 수사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사기밀 유출 혐의를 씌우겠다고 벼르는 모습이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5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익제보라는 이름으로 야당이 받아서 야당 발(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수사 자료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야당에 출입국 당국의 비리를 제보한 사람을 엄중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본부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사 관련자가 민감한 수사 기록을 통째로 특정 정당에 넘기는 것은 공무상 기밀 유출 죄다. 고발을 검토 중이다.” 차규근 본부장은 공익신고자를 ‘검찰 관계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라는 것은 검사 혹은 검찰 수사관을 지칭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법무부 당국자와 집권 여당 의원이 공익신고자를 잡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박범계 법무장관 후보자는 이렇게 맞장구쳤다. “소위 공익 제보 여부나 수사자료 유출 문제, 출국에 대한 배후 세력까지 포함해 장관으로 일하게 된다면 살펴보겠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법무장관 후보자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셨습니까. 아니면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심정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법무장관 후보자라면, 아무리 여당 의원이 공익신고자를 공격하는 발언을 하더라도 그것을 저지하거나 바로잡았어야 했다. 최소한 이렇게 말했어야 옳다. “수사 자료 유출 문제를 살펴보겠으되 공익 제보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일 또한 없도록 철저히 보호하겠습니다.”
박범계 의원은 다른 자리도 아니고 법무장관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도둑’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경찰관’을 잡겠다는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국민 앞에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공익신고자보호법을 한 번이라도 곁눈질했다면 하나같이 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제14조 3항은 이렇게 돼 있다. ‘공익신고 등의 내용에 직무상 비밀이 포함된 경우에도 공익신고자 등은 다른 법령,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따른 직무상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 ‘설령 공익신고에 직무상 비밀이 포함됐더라도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법에는 명시돼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민주당 김종민 의원, 법무부 차규근 출입국 본부장, 박범계 법무장관 후보자는 자신들의 발언을 취소하거나 해명해야 한다. 그 사람들을 포함해서 이 정권 사람들은 마치 법 위에 살고 있거나 법밖에 살고 있는 ‘치외법권 인간’처럼 행동할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다.
특히 김종민 의원은 “공익제보라는 이름으로 야당이 받아서 야당 발(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공익신고자가 야당 의원에게 제보한 것이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김종민 의원이 뭔가를 몰랐거나 오해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발언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령 제5조는 공익신고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적시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신고 기관으로 ‘국회의원’을 지목하고 있다. 즉 공공기관의 내부비리 고발이든, 아니면 민간 조직의 비리 고발이든, 무엇이 됐든, 가장 먼저 국회의원에게 달려가 그 비리를 고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6조는 이렇게 돼 있다. ‘제6조(공익신고): 누구든지 공익침해 행위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 공익신고를 할 수 있다. 1 기관의 대표자, 2 감독기관, 3 수사기관, 4 국민권익위원회, 5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자 그렇다면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령 제5조는 이렇게 돼 있다. ‘제5조(공익신고 기관 등) ① 법 제6조 제5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1. 국회의원, 2. 공익침해행위와 관련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공사ㆍ공단 등의 공공단체’
그렇다. 관련 법규는 여당이 됐든 야당이 됐든 구별하지 않고 어떤 기관의 비리를 국회의원에게 신고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2조는 이렇게 돼 있다. ‘제12조(공익신고자등의 비밀보장 의무) ① 누구든지 공익신고자 등이라는 사정을 알면서 그의 인적사항이나 그가 공익신고자 등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또는 보도하여서는 아니 된다.’
우리 관련법은 공익신고자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사 기자도 철저히 지켜야 하고, 국회의원도 법무장관도 지켜야 하는 법령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물론 법질서 확립과 인권 옹호가 주 업무인 법무부의 장관 후보자와 출입국 본부장 같은 고위직까지 공익신고자 공격에 가세했다니 “개탄스럽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차규근 본부장은 이번 ‘불법 출국금지 사건’의 피고소인, 즉 수사 대상이다. 누구보다 자중해야 할 장본인이요 당사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오히려 공익신고자를 고발하겠다, 검토하겠다, 하면서 운을 띄우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든다는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인 것이다.
박범계 후보자는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정윤회 문건’ 사건을 두고 박범계 의원은 야당의 진상조사단을 이끌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 문건에 담겨 있는 내용의 진위, 진상규명이 제일 먼저다.” 당시 청와대가 문건 유출 사건으로 몰아간 걸 지적하고 비난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집권 여당 의원에서 장관이 되려는 상황이 되자 ‘문건 유출을 살펴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론 봤을 때는 지금 여당 사람들의 이중성이 문제다. 자기들이 야당이었을 때는 제보자들을 마치 ‘의인(義人)’처럼 추앙했었다. 집권해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보자들은 감싸고돌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캐나다로 도피해 있는 윤지오씨와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의 제보자 X다. 당시 민주당 사람들이 무슨 모임까지 만들어 윤지오씨를 감싸고돌았지만, 고(故) 장자연 씨와 절친이었으며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였다는 윤지오씨는 지금 온갖 비리와 사기 혐의로 인터폴 적색 수배 대상자가 돼 있다. 민주당 사람들 때문에 ‘장자연 사건’이 오히려 ‘윤지오 사건’이 돼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사람들은 해명 한마디 없다.
저 사람들은 과거에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주장을 하는 공익신고자를 대놓고 매도했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을 제기한 당직 사병을 ‘단독범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으로 몰아가기도 했고,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을 ‘나쁜 머리를 쓰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참으로 편리하고 몰염치한 이중성 앞에서 혀를 내두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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