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만 깨진 택배합의..분류인력이 과로사 해답일까?
택배업 계약방식 전환 필요하지만
임금 줄어들고 비용 증가 우려에
노사 모두 '과로사 조장 구조' 손 못대
택배 노조가 노사 합의를 6일 만에 뒤집고 파업에 나서는 이유는 분류 작업 인력 충원이지만 과로사의 근본 원인은 택배 업계의 계약 형태에 있다. 기사가 택배를 배송할수록 돈을 더 버는 특수근로형태종사자(특고) 계약이기 때문에 분류 작업이 제외된 시간 동안 택배를 더 이송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과 근로시간이 명확히 정해진 근로계약으로 전환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는 임금 삭감을, 택배사는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과로사를 조장하는 구조에는 손도 못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택배사들이 추가 분류 인력을 채용하지 않겠다며 각 대리점에 공문·지침을 발송했다’는 택배 노조의 주장에 대해 서울경제가 27일 CJ대한통운·한진택배·롯데글로벌로지스에 확인한 결과 세 회사 모두 “그런 공문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택배 기사의 과로사 문제가 논란이 되자 분류 인력으로 CJ대한통운은 4,000명, 한진·롯데는 1,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CJ·한진·롯데는 각각 3,500명, 300명, 980명 정도의 인력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노사의 주장이 ‘진실 게임’ 양상을 띠고 있지만 택배 논란의 핵심이 ‘분류 인력 증원’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택배 노조의 29일 파업 이유 역시 ‘지난해 약속한 인원 이상의 분류 인력을 뽑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택배 배송 과정은 터미널에 도착한 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한 뒤 택배차에 싣고 배송지로 나르는 3단계로 구성된다. 3단계 모두 택배 기사의 업무였는데 물류량이 늘면서 분류 작업이 전체 업무 시간 중 3분의 1 이상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동계는 분류 작업이 택배 기사 과로사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날 택배 노조는 “지난 21일 체결한 사회적합의문에서 택배 기사의 작업 범위를 집화와 배송으로 했으니 분류 작업은 별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분류 작업이 분리된다고 해서 택배 기사의 과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택배 계약은 임금과 근로시간이 정해지지 않고 택배를 나를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위·수탁 계약이다. 분류 작업이 제외된 후 택배 기사가 그 시간 동안 택배를 더 배송하면 돈을 더 많이 벌어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과로의 직접적 원인인 ‘과도한 업무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택배 기사가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게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분류 인력의 재원 문제를 두고 택배사·대리점주가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도 인력 비용을 택배사·대리점주가 모두 부담하면 과로사는 해결하지 못하고 택배 기사의 보수만 늘어나는 결과만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택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로사 해결과 분류 인력 재원 문제는 모두 택배 업계의 계약 방식과 얽혀 있어 전체 구조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과로사를 해결하기 위해 택배 기사의 계약 방식을 근로계약으로 전환하고 택배 기사를 더 뽑으면 되지만 노사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근로계약서에는 정해진 임금과 근로시간이 명시되고 주 52시간 근로제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택배 기사의 임금은 줄어든다. CJ대한통운의 경우 월 5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지만 근로계약이 원칙인 쿠팡의 경우는 인센티브를 더해도 연 4,800만 원을 넘기 힘들다. 택배사와 대리점주는 계약 변경 후 노무관리에 드는 추가 비용을 꺼린다. 근로계약 체결 이후에는 연장근로수당·연차휴가·퇴직급여 등의 부수적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택배 노조의 조합원이 약 5,000명으로 전체 택배 기사의 10%에 해당해 배송이 다소 늦어지겠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물류 대란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택배 노조 내에서도 사회적 합의의 이행 여부를 두고 이견이 많은 상황이라 파업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다만 택배 노조의 조합원이 증가세에 있고 택배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등 전선을 넓히고 있어 크고 작은 노사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택배사들은 노조와 직접적 사용자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으며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혹하는 마음에 땅 샀다 빚쟁이'…연소득 2천 이하 3명 중 1명
- 담뱃값 올리고 술에도 부담금 검토...정부 건강수명 3년 연장 위한 대책 발표
- 아파트 42채 갭투자 …한국 부동산 담는 외국인
- 머스크가 던진 트윗 하나에 17달러하던 '게임스톱' 147달러 폭등
- 이재명, 윤석열과 대선 양자 가상 대결서 우위…李 45.9% vs 尹 30.6%
- '이케아, 직원 임금·리콜 한국만 역차별'… 참다 못한 노조 '천막농성' 나섰다
- 마포구, 김어준 '턱스크' 과태료 부과 않는다
- 이마트가 품은 SK와이번스 새 이름은... ‘쓱야구단’ 유력
- 심상치 않은 IM선교회發 확산…확진자 열흘 만에 500명 대로
- '미친 집값'에...지난해 300만명이 '삶의 터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