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 慶會樓-연못에 떠 있는 仙界
제일 오래된 것, 제일 큰 것, 하나밖에 없는 것 등으로 세상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름과 피조물의 지속성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누각이다. 당연히 국보로 지정되어있다.
경회루는 정면 7칸, 측면 5칸 총 3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큰 누각이다. 현판은 태종의 장남 양녕 대군이 썼지만 지금은 중건 당시 추사 김정호의 제자 위당 신관호가 쓴 글씨가 걸려 있다. 경회루는 건축 양식에서 ‘선계仙界’를 표방하면서도 유교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경회루 1층은 네모난 전돌로 바닥을 깔았고 2층은 장마루를 썼다. 2층은 세 공간 즉 외진, 내진, 내내진으로 구분되는데, 관료들은 품계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제일 안쪽 내내진은 세 칸이다. 이는 ‘천지인天地人’, 즉 ‘삼재三才’를 뜻하며 그것을 둘러싼 8개 기둥은 ‘주역의 8괘’를 의미한다. 또 내진은 12칸으로 1년 12달을 의미했고, 매 칸마다 4짝씩 달린 총 64개의 문짝 역시 주역의 64괘를 뜻한다. 외진 24칸은 24절기와 24방을 의미한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를 표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바깥 기둥은 네모기둥, 안쪽은 원기둥을 세웠다. 1층은 돌기둥, 2층은 나무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들은 모두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민흘림 기둥이다. 경회루 안으로 들어가려면 세 개의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중 남쪽의 다리가 다른 두 개보다 폭이 넓은데 이 다리는 임금이 건너는 어도御道다.
조선 시대에 왕가나 백성 할 것 없이 제일 무섭고 두려운 것은 호환, 마마와 더불어 화재였다. 대부분 건물을 목재로 지어 불이 나면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해서 경회루를 지을 때도 ‘물의 신’인 용에게 화마를 잠재워 달라는 기원을 담았다. 근정전에는 ‘용龍’ 자를 무려 1000개를 사용해 큰 ‘물 수水’ 자를 쓴 부적을 넣기도 했다. 1867년 경회루를 중건하면서는 한 쌍의 청동 용을 못에 가라앉혔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1997년 경회루 준설 작업 때 하나가 발견되었다.
경회루는 단순히 임금의 유희 공간이 아니다. 물론 임금에게는 정서적 힐링을 제공하는 장소였지만 가뭄이 들면 기우제도 지낸, 역대 군왕이 실현하려 했던 신선들이 사는 세상, 즉 선계의 살아있는 증표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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