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 慶會樓-연못에 떠 있는 仙界

2021. 1. 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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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오래된 것, 제일 큰 것, 하나밖에 없는 것 등으로 세상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름과 피조물의 지속성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누각이다. 당연히 국보로 지정되어있다.

조선 왕조는 창업과 동시에 정궁인 경복궁을 지었다. 이때가 1395년이다. 광화문을 세우고 임금이 정사를 보는 근정전과 침전인 강녕전 등 수많은 전각을 지었다. 그때 근정전 서북쪽에 작은 연못을 팠다. 지하에서 샘이 솟고 궁의 배수로 역할을 했다. 그러다 1412년 태종은 공조판서 박자청에게 연못을 크게 확장하고 누각을 세우라 명했다. 연못의 크기는 남북 113m, 동서 128m고 못 가운데 삼신선도를 상징하는 인공 섬 세 개를 만들었다. 못을 파면서 나온 흙을 옆에 쌓았는데 바로 아미산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인공 섬 위에 2층 누각을 세우고 이름을 ‘경사스런 연회’라는 뜻의 경회루로 지었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임금이 신하들과 연회를 여는 장소로 쓰였다. 그 후 성종, 연산군 때 크게 증축했다. 성종 때는 구름 위를 나는 용을 조각한 48개의 기둥이 있어 당시 ‘조선의 3대 장관’으로 꼽혔다. 연산군은 경회루를 풍류를 즐기는 데 사용했다. 연못에 만세산을 쌓고 산 위에 작은 모형의 봉래궁, 일궁, 월궁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온갖 화초를 심었고 금, 은, 비단으로 장식했다. 또 황룡주라는 배를 타고 연산군은 기생들과 그야말로 흥청망청 주지육림에 빠졌다. 경회루는 임진왜란 때 불타 돌기둥만 남았고 이를 1867년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애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경회루는 정면 7칸, 측면 5칸 총 35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큰 누각이다. 현판은 태종의 장남 양녕 대군이 썼지만 지금은 중건 당시 추사 김정호의 제자 위당 신관호가 쓴 글씨가 걸려 있다. 경회루는 건축 양식에서 ‘선계仙界’를 표방하면서도 유교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경회루 1층은 네모난 전돌로 바닥을 깔았고 2층은 장마루를 썼다. 2층은 세 공간 즉 외진, 내진, 내내진으로 구분되는데, 관료들은 품계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제일 안쪽 내내진은 세 칸이다. 이는 ‘천지인天地人’, 즉 ‘삼재三才’를 뜻하며 그것을 둘러싼 8개 기둥은 ‘주역의 8괘’를 의미한다. 또 내진은 12칸으로 1년 12달을 의미했고, 매 칸마다 4짝씩 달린 총 64개의 문짝 역시 주역의 64괘를 뜻한다. 외진 24칸은 24절기와 24방을 의미한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를 표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바깥 기둥은 네모기둥, 안쪽은 원기둥을 세웠다. 1층은 돌기둥, 2층은 나무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들은 모두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민흘림 기둥이다. 경회루 안으로 들어가려면 세 개의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중 남쪽의 다리가 다른 두 개보다 폭이 넓은데 이 다리는 임금이 건너는 어도御道다.

조선 시대에 왕가나 백성 할 것 없이 제일 무섭고 두려운 것은 호환, 마마와 더불어 화재였다. 대부분 건물을 목재로 지어 불이 나면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해서 경회루를 지을 때도 ‘물의 신’인 용에게 화마를 잠재워 달라는 기원을 담았다. 근정전에는 ‘용龍’ 자를 무려 1000개를 사용해 큰 ‘물 수水’ 자를 쓴 부적을 넣기도 했다. 1867년 경회루를 중건하면서는 한 쌍의 청동 용을 못에 가라앉혔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1997년 경회루 준설 작업 때 하나가 발견되었다.

경회루는 단순히 임금의 유희 공간이 아니다. 물론 임금에게는 정서적 힐링을 제공하는 장소였지만 가뭄이 들면 기우제도 지낸, 역대 군왕이 실현하려 했던 신선들이 사는 세상, 즉 선계의 살아있는 증표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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