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수싸움.."자리비울 수도 있지" vs "네 꼼수 모를쏘냐"

이유섭,강인선 2021. 1. 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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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vs 회사, 쫓고 쫓기는 '홈오피스' 공방전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최 모씨는 눈뜨자마자 노트북 컴퓨터를 켠다. 그러곤 회사 전산망에 접속해 출근도장을 찍은 다음 바로 한 유틸리티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이름은 '자리안비움'. 사용자가 설정한 시간 동안 마우스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게 해준다. 그러면서 화면보호기가 꺼지거나 사내 메신저에 '자리 비움' 표시가 뜨는 걸 막아준다. 최씨는 "회사 상사가 모니터링하든 안 하든 열심히 일하는 건 당연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피치 못할 상황으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때가 자주 생긴다"며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사용하게 됐고, 주변에도 많이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 직원들의 '자리안비움'에 대응하려는 정부기관과 기업 수요에 맞춰 정보기술(IT) 전문기업 '제이니스'는 재택근무 관리 솔루션인 '엠오피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집에 근무하는 직원이 일정 시간 동안 마우스를 비정상적으로 많이 움직이면 관리자가 사용자 기록을 사후에 따로 분리해 볼 수 있다. 진화된 감시 기능을 장착한 것이다. 키보드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놔 이석 여부를 숨기는 것도 알아낼 수 있다. 제이니스 관계자는 "솔루션 도입 기업 중 이석 관리 기능을 사용하는 비중은 2019년까지만 해도 22%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51.5%로 대폭 증가했다"고 귀띔했다.

# 회사가 비정상적 마우스 움직임을 포착하자 '자리안비움' 유틸리티 개발자는 성능을 개선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제 마우스 이동 범위와 위치를 맞춤형으로 할 수 있다. 이동시간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설정된다. 회사 보안 때문에 유틸리티 실행이 안 되는 직장인을 위해 '자리안비움-엑셀 버전'도 선보였다.


◆ 어리바리 회사, 스마트 관리 시작

코로나19 사태 1년. 한국 사회는 전에 없던 변화를 곳곳에서 겪었고 현재 진행 중이다. 업종·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수백만 대한민국 직장인이 겪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재택근무다. 전부터 시행했던 기업과 직원들은 혼란 없이 재택 모드에 들어갔지만 상당수는 그러지 못했다. 특히 회사, 그중에서도 인사·조직 관리 담당자들은 효율적인 직원 관리 방안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택근무를 가동했다.

혼란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새 회사는 스마트해졌다. 직원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를 포착한 '제이니스' 등 여러 업체들이 다양한 관리 솔루션을 기업에 판매 중이다. 소프트웨어 업체 '굿인벤트'의 근태 관리 서비스 '티:트리'를 사용하면 근무 시작과 종료 때 위치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직원 동의를 받아야 한다. 키보드나 마우스 움직임이 없으면 관리자 화면에 알림이 뜬다. 일부 PC 보안 프로그램 업체와 인터넷TV(IPTV) 채널 기업 등이 이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티:트리' 매출은 전년보다 2배 증가했다.

한 보안 전문기업이 만든 근무관리 솔루션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한다. 여기에 위치정보시스템(GPS)과 QR코드를 활용해 '근무 인증'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재택근무지 GPS를 미리 입력하면 허용된 위치의 100m 이내에서만 출퇴근 인증이 되는 방식이다. 인테리어 제품을 판매하는 중소기업 등이 최근 도입했다.

원시적이거나 논란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직원을 관리하는 회사도 있다. 한 무선통신장비 제조사 인사 담당자는 직원의 모니터 화면을 원격으로 볼 수 있다. 원래 30분간 모니터에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으로 인사 담당자에게 메일이 오도록 했는데, '자리안비움' 같은 유틸리티로 이를 무력화한 직원들이 나타나자 극단적인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또 한 화장품 판매사는 영상회의 때만 활용했던 '구글 미트'를 재택근무 내내 켜놓도록 했다. 근무일지 보고 주기를 주간에서 하루 단위로 바꿔 직원들 원성을 듣는 기업 사례는 수두룩하다.


◆ 재택근무자 '자유 수호'에 올인하다

하지만 자유가 무엇인가. 애당초 주어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그 달콤함을 맛본 이상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가치다. 상대가 월급을 주는 회사라도 말이다. '자리안비움' 같은 유틸리티는 이러한 재택근무자들의 염원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회사가 하루 단위 업무보고를 요구하면, 1~2시간 집중해서 미리 일일 업무보고서를 여러 개 만들어놓고 이를 여러 날에 거쳐 제출한다. 사내 메신저 로그인도 PC가 아닌 모바일로 해서 공간의 자유를 얻는다. '자리안비움' 유틸리티 개발자에게는 지금도 부가 기능 추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한국보다 재택근무가 보편화된 미국 회사원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직장인 플랫폼 '블라인드' 미국 버전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실시된 적이 있다. 5740명의 미국 회사원이 참여한 설문조사 질문은 '재택근무 때 영상회의에 당신은 얼마나 참여하십니까'였다. '적극적으로 들으면서 실시간으로 의견을 개진한다'는 답변은 18.7%에 불과했다.

'다른 일 하면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지에만 귀 기울인다'(28.0%)가 가장 많았고, '주의 깊게 듣지만 침묵한다'(26.7%) '자리에서 벗어나 있다'(26.6%) 순이었다.


◆ 원인은 '나인투식스' 업무 평가 방식

회사와 직원 간 승자 없는 공방전이 이어지는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의 직원 관리 및 업무 평가가 '오프라인'과 '나인투식스(9~6시 근무)'라는 전통적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일부 IT·플랫폼 기업에만 한정됐던 재택근무는 앞으로 보편화된 근무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회사와 직원 간 보이지 않는 싸움을 끝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려면 홈오피스 꾸미기에 적게는 100달러에서 최대 1000달러까지 지원해주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FAANG'으로 불리는 글로벌 IT 기업의 직원 관리 방식을 주목해야 한다. 한 기업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이 모씨는 "오히려 일하는 것을 티내기 위해 하나라도 더 메일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정해진 월급 외 업무에 대한 보상체계가 미비한 국내 기업과 달리, 일 잘하는 직원에게 주식을 한 주라도 더 주는 글로벌 IT 기업 회사원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을 티 내기 바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인적자원관리(HR) 전문가이자 '스마트워크 바이블'의 저자인 최두옥 베타랩 대표는 "업무 시간에 의존했던 채용과 평가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며 "아직도 출퇴근 시간에 집착하고 시간 단위 업무 내용만을 중시하는 회사가 있다면, 이제는 구성원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유섭 기자 /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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