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이 2-3-5를 쓰는 이유, 설사커의 디테일

유현태 기자 2021. 1. 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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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 감독(경남FC). 한국프로축구연맹

[풋볼리스트] 유현태 기자= 포메이션은 사전적으로 '팀의 특색 있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정한 수비 및 공격의 대형'이라는 의미다. 즉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전체적인 콘셉트를 그리는 밑그림이다.


지난해 경남FC는 몇몇 전술을 시도한 뒤 2-3-5를 플랜A로 삼았다. 2021시즌에도 2-3-5를 중심으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의 빅리그를 봐도 좀처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전술이다 설기현 감독은 실험적인 포메이션을 꺼내들고도 "확신이 있다"고 말한다.


설 감독은 2021시즌을 앞두고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보강했다. 이제 전술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전지훈련에서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조금 이른 시점이지만 지난 20일 경남이 준비하는 2-3-5 포메이션의 '디테일'을 설 감독과 경남 선수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 공격수를 5명까지 늘린 이유


설 감독이 2-3-5를 플랜A로 삼은 것은 공격에 무게를 싣기 위해서다. 경남은 K리그2에서 선수 구성이 좋은 팀이다. 수비적으로 내려서는 상대가 많아 '선 수비 후 역습'에 대응해야 했다. 설 감독은 "비기기보다 승리를 더 많이 따내려면 골을 넣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상대 팀들이 우리를 만나면 수비적으로 플레이해요. 특히 파이브백을 많이 서요. 포백이면 그래도 측면 공간이 있는데, 파이브백을 세우면 좌우로 공간이 잘 안 나요. 그래서 공격적인 선수를 많이 기용해야겠다고 생각했죠. " - 설기현 감독


경남을 만나는 팀은 좌우 공간을 촘촘히 좁힌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공격 배치를 하면 공격수들이 노릴 만한 공간이 부족하다. 설 감독은 선수 배치로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5명의 공격수를 좌우로 넓게 배치하면 수비도 넓게 방어할 수밖에 없다. 또 '공격적인 수비수' 대신 아예 '공격수'를 배치하는 것이 낫다고 봤다. 공격진 가장 바깥쪽엔 주로 황일수, 도동현처럼 빠르고 1대1이 강한 선수들이 배치해 훈련하고 있다. 영입이 임박한 윌리안과 에르난데스 역시 비슷한 임무를 할 수 있다.


"저도 (선수 시절엔) 윙이라서 직선적으로 돌파하고 크로스를 올리고 했죠. 요즘엔 벌려서는 윙포워드가 잘 없고 (안쪽으로) 들어와서 플레이하죠. 그러니까 좌우로 공격은 측면 수비수가 올라와서 돌아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공격수는 아니고 수비수에요. 전형적인 윙포워드들이 넓게 벌려서서 공격하고, 풀백들이 중앙에 들어와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 설기현 감독


또 하나 디테일은 공격수들의 움직임이다. 설 감독은 전지훈련에서 공격수들의 연속적인 침투와 빠른 방향 전환을 강조한다. 침투 자체가 공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파생 효과도 있는데, 침투하는 공격수를 따라 수비가 움직이면 공간이 난다.


좌우로 넓게 5명을 배치한 것이 공간을 '좌우'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연쇄적인 침투는 수비진을 '전후'로 흔들기 위한 노력이다. 그래서 설 감독은 움직임이 좋은 이정협의 영입을 간절히 원했다.


"밀집 수비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비 뒤 공간을 노려야죠. 사이드가 없으면 앞뒤로는 공간이 있고, 앞에서도 간격을 좁혀버리더라도 그래도 뒤엔 공간이 있으니까요." - 설기현 감독


"각 선수들이 포지션에서 전술적인 역할이 있어요. 그걸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키 크고 헤딩 좋고, 크로스 올라오면 마무리 잘하는 선수를 원하진 않았어요. 움직임을 많이 해줄 수 있고, 다른 선수들이 공간을 만들면 그곳으로 침투할 공격수가 필요했어요." - 설기현 감독


이정협(경남FC). 한국프로축구연맹

◆ 후방을 '2-3'으로 꾸리는 이유


보통 빌드업 시엔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풀백들이 넓게 벌려서면, 상대의 뛰는 거리를 늘리면서 시간적 여유도 있다. 문제는 상대의 압박 강도가 아주 높을 때다. 풀백들이 넓게 벌려섰을 때 압박을 당하면 고립될 수 있다. 패스 길이가 길어져 플레이 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설 감독은 이 패러다임을 깨뜨렸다. 빌드업 땐 최후방에 중앙 수비 2명만 남기고, 풀백들은 수비형 미드필더 옆으로 올라가 3명이 나란히 선다. 2-3으로 최후방을 꾸리면 5명의 간격이 조밀해져 빠른 패스가 가능하고, 선택지를 늘릴 수 있다. 측면 공격은 윙포워드들이 깊은 곳까지 내려오면서 해결한다. 빌드업이 중앙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윙어에 대한 견제도 그리 강하지 않고 패스 길도 확보하기 좋다.


"선수들이 볼을 잡을 때 넓게, 깊게 서라고들 많이 하죠. 넓게 서면 상대가 뛰는 거리를 늘린다는 장점도 있지만, 저는 선수가 고립되기 쉽다고 봐요. 좁혀서 플레이하면 협력할 선수가 있고, 옆에 있는 선수는 내가 못 본 패스 각도를 볼 수가 있어요. 또 벌려 있으면 윙까지 갈 길을 다 막게 되는데, 좁혀서 있으면 풀백, 윙백,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길이 잘 나오니까 위치를 그렇게 잡는 것이죠." - 설기현 감독


일반적인 통념을 깬 전술의 장점은 탈압박 시의 효과다. 5명이 중앙에 옹기종기 모이는 만큼, 상대 수비 역시 중앙으로 밀집된다. 이것만 잘 풀어나오면 오히려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


"선수들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실수가 아무래도 적어지죠. 상대도 뭉쳐서 압박을 하기 때문에, 위에서 공간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면서 훈련하고 있어요. 좁혀서 하는 것만의 장점이 있죠." - 이광선


후방의 2-3 구조는 역습 대처에도 효과가 있다. 경남이 5명의 공격수를 두기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 혼자서 중원을 모두 커버할 순 없다. 풀백들의 중앙 이동으로 최전방과 중원의 간격을 더 좁게 유지할 수 있다. 역습을 수비 지역이 아닌, 최전방 그리고 중원부터 차단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된다.


"역습에 취약하기 때문에, 지난 시즌의 경험을 되짚어보면서 변화를 줬죠. 수비수들은 오버할 필요가 없고, 공격수들을 믿고 맡기라고 해요. (수비수들은) 수비에서만 적극적으로 하고 집중적으로 할 수 있게요. 자리를 지키면서 역습을 안 주는 형태를 두는 거죠." - 설기현 감독


◆ 전방 압박을 펼치는 이유


경남이 공격에 무게를 두고 경기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전방 압박보다 잘 어울리는 수비 형태는 없다. 포메이션 자체도 2-3-5로 앞에 무게가 쏠려 있다. 수비 부담을 앞에서 덜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공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없다. 축구는 공격을 펼치다가도 공을 빼앗기면 곧장 수비로 전환된다. 반대로 공을 빼앗으면 수비에서 즉시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우선 공을 빼앗겼을 때 역습을 주지 않는 것이 목표다. 최전방 5명은 공을 빼앗기는 순간 즉시 압박을 가해 속도를 늦춘다. 중원과 후방은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위치를 바꿔가며 압박한다.


설 감독은 실제로 공을 돌리면서 그때그때 발생하는 상황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잡아준다. 설 감독은 "수비는 지역이든, 전방 압박이든, 내려서든 약속이 있다. 그 디테일을 선수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격적으로도 장점이 있다. 재역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밀집 수비를 펼치는 팀도, 역습으로 나오는 순간엔 간격이 벌어진다. 전방 압박으로 공을 다시 빼앗는다면 밀집 수비를 해결하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장단점이 있죠. (구사하기) 까다로운 전술인 것도 맞지만, 앞에서 공을 탈취하면 골대와 가까이 있어요. 뒤에서 빼앗아서 다시 빌드업할 필요가 없이 앞에서 빼앗으면 쉽게 골 넣을 수 있어요. 선수들이 따로 가게 되면 뒤가 열린다는 위험도 있긴 하죠. 체력 소모도 크지만 장점은 확실한 전술인 것 같아요." - 백성동


백성동(경남FC)

◆ 경남이 '설사커'를 믿는 이유


이른바 '설사커'는 공수 양면에서 조직적인 움직임이 핵심이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설 감독은 자신의 축구 색을 확실히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려운 길을 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결과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우선 조직적인 전술이 있으면, 선수 개개인 능력에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개인 플레이가 뛰어난 선수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부상일 땐 팀에 기여할 수 없다. 하지만 확고한 전술이 있다면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후보 선수가 들어왔을 때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공격수들이 매 경기 모든 수비수들을 상대로 활약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죠. 한 명은 우습게 제칠 수 있고, 수적 우위를 만든다고 하면 좋을 거에요. 그렇지만 지난번엔 이겼던 선수라도, 오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둔하다면? 그런 상황에선 조직적인 축구가 필요하죠. 또 밀집된 수비들을 상대할 때도 동료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고요." - 백성동


'설사커'를 구상한 설 감독은 조금 더 크게 그림을 그린다. 경남이 K리그2에선 비교적 큰 규모의 예산을 쓰지만 K리그1의 기업 구단에 비해선 부족하다. 승격 이후 선수 개인 역량에선 우위를 잡기란 쉽지 않고, 경쟁력을 발휘하려면 지금부터 확고한 전술과 스타일을 갖춰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축구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전 선수들이 쉽게 축구하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요. 수비수들이 강하고 조직적으로 수비할 때, 어렵게 하고 괴롭히고 실수를 유도해서 역습하는 거죠. 상대가 어려운 점들을 계속 공략하고 흔들 거에요. 압박이 들어왔을 땐 역이용해서 풀고 나가면, 상대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거든요. 그게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죠. 팬들도 즐겁고, 선수들도 즐겁고. 내용과 결과가 좋으면 저도 좋고요. 어렵지만 지향점을 그런 축구에 두고 노력해야죠."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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