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백신·치료제 개발 산 너머 산

이다해 입력 2021. 1. 27. 15:31 수정 2021. 1. 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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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3월 대구에서 신천지 신도들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코로나19 대규모 집단감염을 기억하실 겁니다. 신도 명단을 은폐하는 등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국민의 분노를 샀죠.

역설적이지만 이들이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에는 한몫을 했습니다. 현재 조건부 허가 신청을 앞두고 있는 녹십자의 혈장치료제 얘깁니다.

<혈장치료제 연구, 혈장 확보·공동IRB로 임상 속도>

혈장치료제를 만들려면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이 많이 필요한데요, 천여 명의 신도가 대규모로 혈장 공여에 나서면서 임상 연구의 첫번째 필요조건인 치료제의 '재료'를 충분히 모을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임상 참여 기관의 연구윤리심의(IRB)를 통과해야 하는데, 당시 연국에 공동으로 참여했던 대구지역의료기관들이 뜻을 모아 일주일만에 통과시키면서 연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전 맞닥뜨리는 두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하는데요, 바로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과 연구 심의를 통과입니다.

임상시험에 대한 국민 인식이 부족하다보니 임상시험 참가자 모집은 쉽지 않습니다.

2상을 마친 뒤 긴급승인 신청을 앞두고 있는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 임상 시험도 참가자 모집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시험 규모가 200여 명 되는데 국내에서 30명밖에 모집이 안됐다"며 "대부분 해외에서 진행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용진 경북대 교수와 인터뷰 중인 이다해 기자

<임상시험, 여러 의료기관서 동시 진행...IRB도 제각각>

우리나라 제약사들은 주로 임상시험을 여러 의료기관에 의뢰합니다. 임상시험 대상자를 많이 모으고, 폭넓은 임상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장점 때문입니다. 대신 의료기관마다 제각각 기준을 갖고 있는 연구윤리심의를 통과해야 해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듭니다. 중복된 행정절차가 임상시험을 지연시키는 겁니다.

임상시험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관 20곳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경우 접수하는 비용만 5천만원 정도 된다"며 "각 기관에서 한번 씩만 시정 사항을 요구해도 한 달 걸릴 게 서너 달 늦어진다"고 토로했습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기존에 1~2개월 걸리던 심의 절차가 일주일 정도로 대폭 줄게 되면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관련 언급을 하면서 관계 정부부처들도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식약처에서 의료기관에 “윤리 심의를 우선 차리해달라”고 보낸 공문


<식약처, 의료기관에 우선 심의 촉구하기도>

지난해 3월 식약처가 의료기관들에 보낸 공문 2건을 입수했는데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치료제, 백신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연구윤리 심의를 면제할 수 있다"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의 경우 긴급회의를 개최해 우선 심의해달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개발의 속도를 내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이보다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개별 의료기관을 압박하는 것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한 기관에서만 심의를 통과했을 때 다른 기관에서도 인정되게 한다면 진전이 빠를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의료기관마다 실시해야하는 심사를 1번의 심사로 갈음할 수 있는 공동 IRB 제도가 일반화돼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개별 의료기관을 하나로 모을 동력이 없다는 게 차이점입니다. 식약처는 지난해 9월 '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계류 상태입니다.

<김용진 교수 "민간 공동IRB 위한 제도적 뒷받침 필요>

대구 지역 의료기관의 공동IRB를 추진하고 있는 김용진 경북대 교수는 '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 같은 정부 기관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민간 기관 중심의 공동 IRB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용진 / 대구지역 공동IRB위원장]
"(정부 기구를 만들면) 신약 개발이나 이런 게 정책적으로 나가고 의도대로 끌고 갈 수 있으니 의구심이 생길 거예요. 정부는 중앙IRB를 만드는데 행정적이라든지 예산같은 걸 지원하고, 만드는 건 민간 기구가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이 의료기관들의 동의를 얻기에, 신뢰를 얻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다해 기자
can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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