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미래]⑾최고 전문가들이 쌓은 고품질 데이터, 소재개발 플랫폼으로 이어졌다

조승한 기자 2021. 1. 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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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찬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설립한 10개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기반 미래소재연구단에서 소재 개발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남윤중 제공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일은 사막을 헤매며 바늘을 찾는 것에 종종 비유되곤 한다. 힘든 실험을 거쳐 소재를 합성하고 물성을 평가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해야 원하는 소재를 찾아낼 수 있다. 소재 개발에 긴 시간과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는 이유기도 하다. 최근에는 여러 소재를 결합하면서 새로운 물성을 찾아내는 연구가 주목을 받으면서 소재 개발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소재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데이터를 다시 분석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MGI) 국가전략계획을 수립했다. 인간 게놈지도를 만들어 생물학 연구에 획기적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소재도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어 첨단 소재를 찾아낸다는 전략이다. 유럽도 2015년 ‘희귀 소재 발견(NOMAD)’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빅데이터 분석 도구와 소재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목표다.

한병찬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도 인공지능(AI)과 양자역학을 활용해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소재의 설계 방법을 찾아내는 소재 개발 플랫폼을 구축했다. 한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내기 위해 설립한 10개 글로벌프론티어사업단 중 하나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기반 미래소재연구단에서 연구자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고성능 소재 개발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이브리드 경계면 기술을 활용하는 연구자들이 어떤 소재를 연결해 새로운 기능을 얻을 수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한 교수는 “사막을 헤매는 연구자들에게 실험에 앞서 주목해야 할 변수를 먼저 제안하는 것”이라며 “바늘을 찾고 싶은 연구자들에게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을지 좌표를 제공해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화학 소재를 만들 때 확인해야 할 물성은 크게 기계, 전기, 자기, 광학 등 네 가지다. 이 네 가지 물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느냐가 소재 설계의 핵심이다. 단일 소재의 물성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섞었을 때 소재의 물성이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이 어렵다.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이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소재를 원자 단위까지 들여다보는 양자역학을 이용해 소재의 특성을 원자 단위에서 계산하면 물성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에 데이터와 AI가 결합하면서 정확도가 한층 높아졌다. 한 교수는 “예전에는 계산에서 나온 소재를 특허 내는 게 거의 불가능했는데 최근엔 가능해지는 추세”라며 “계산을 통해 발견한 소재가 상업화 직전까지 연결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양자역학을 활용해 소재의 물성을 예측하는 소재 개발 플랫폼을 구축했다. 양자역학 연산을 위해 연구실에는 개인용 컴퓨터 2000기 성능의 서버를 구축했다. 남윤중 제공

연구팀은 응용 방향에 집중한 소재 개발 플랫폼을 구축했다. 경계면을 이용하는 소재들도 어떤 곳에 활용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물성이 다르다. 접착 소재라면 접착력이 뛰어나야 하고 촉매라면 반응력을 높여야 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플랫폼은 어떤 소재를 개발할지를 입력하면 계산과 함께 기존 소재 연구에서 갖춰진 실험 결과들을 종합해 특정 소재 개발에 필요한 ‘핵심 물성 지배인자’가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촉매를 예로 들면 3개 이상의 물질을 다양한 조성으로 조합하는 것은 거의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진다. 하지만 조성에 따른 촉매 활성도를 양자역학으로 계산해 확인하면 촉매로 사용이 가능한 조합 범위를 알 수 있다. 일일이 여러 물질을 조합하는 대신 조합의 범위를 대략 예측해 실험실에서 진행할 실험의 수를 줄인다. 이 조합을 실험실에서 검증해보면 실제로 촉매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 성능이 나온다.

플랫폼의 강점은 양자역학을 잘 알지 못해도 현장에 필요한 숫자를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은 두 소재를 3대 1의 비율로 섞는다거나 한 소재에 다른 소재를 막 형태로 입힌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소재 설계 방법을 제시한다. 한 교수는 “합성에 필요한 조성, 소재의 크기, 원소 조합을 제시해 누구나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다”며 “실험과 이론 사이 경계가 플랫폼으로 허물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 개발 플랫폼은 연구단 내 다양한 소재 개발에 쓰였다. 대표적인 예가 촉매다. 물질의 반응을 돕는 촉매는 반응 에너지를 계산해야 해 원자의 에너지를 분석하는 양자역학 활용에 유리하다. 연구팀은 수소와 산소가 반응해 물을 만들며 에너지를 내는 수소전지에 쓰이는 비싼 백금 촉매를 10분의 1 가격으로 줄인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한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시도한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촉매의 특성을 결정하는 인자를 찾았다”며 “현대자동차와 함께 차세대 촉매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소재연구단에서 개발한 차량용 접착제도 소재 개발 플랫폼을 통해 성능을 높인 예다. 연구단 소속 최영선 부산대 화공생명공학부 교수와 함께 접착제 분야 1위 기업이던 독일 헨켈의 접착제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접착제를 찾았다. 그 결과 개발된 접착제는 현재 현대차 생산라인에 적용됐다.

전기차로 주목받는 배터리의 화재 위험을 낮추는 소재도 찾아낸다. 연구팀은 정보기술(IT) 소재 및 부품기업 솔브레인과 함께 전기차용 배터리에 쓰이는 전해질과 첨가제를 개발했다. 한 교수는 “불이 나지 않는 소재를 개발해달라고 해서 1년 6개월 만에 후보군을 찾아내 이번 주 중 보고할 예정”이라며 “분석 과정에서 실험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여야 하는 이슈를 찾아내 이를 해결하자 폭발적으로 새로운 소재가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실험이 어려운 소재를 찾아내는 데도 유용하다. 연구팀은 불을 끄는 데 쓰이는 방재제를 개발하는 데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유해물질이 공기 중 누출됐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위험성이 커 실험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대신 이를 플랫폼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한국화학연구원과 함께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중화제를 개발하고 상용화에 들어갔다고 지난해 6월 발표했다.

한 교수는 소재 설계 플랫폼을 '차세대 활자'로 표현한다. 플랫폼이 소재 연구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활자로 활용되면서 소재 혁명을 이끌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윤중 제공

한 교수는 소재 개발 플랫폼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이유로 미래소재연구단이 오랜 기간 정부의 투자를 받으며 국내 소재 연구를 이끌고 나간 점을 꼽는다. 양질의 데이터는 연구자들의 노하우인 만큼 얻기 쉽지 않다. 한 교수의 지도교수인 거브랜드 시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이끄는 미국의 MGI도 연구자들이 자신이 찾아낸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미래에는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점차 자산화될 것이란 예측이다. 각국이 쌓아 올린 소재 데이터베이스를 파는 공유하는 데 비용을 내는 형태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이 데이터를 선점해 잘못된 데이터를 주면 한국의 연구 피해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며 “소재 데이터베이스가 국가가 관리해야 할 자산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미래소재연구단 내 연구자들이 소재 연구 최전선에 있는 양질의 실험데이터를 공유한 덕에 이를 활용하는 소재 개발 플랫폼의 신뢰도 또한 높아졌다. 한 교수는 “7년간 소재 개발 연구자들의 전담마크를 하며 노하우가 쌓였다”며 “처음에는 소재 플랫폼에 의문을 가지는 외부의 시선도 있었으나 지금은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는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개발되는 소재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형태의 대형 사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AI 기술 등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기술은 갖춰진 상황”이라며 “이제 정확도를 높이고 검증한 소재 데이터베이스로 전산 플랫폼을 만들면 엄청난 신뢰도가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소재 개발 플랫폼이 미래소재연구단 과제 후에도 남게 되는 유용한 자산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남윤중 제공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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