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김종철 성추행, 왜 고소하지 않느냐고? / 임재성

한겨레 2021. 1. 2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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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새해 기자회견에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임재성 변호사·사회학자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지난 25일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혔다. 같은 당 김종철 대표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당 내부에서 조사절차를 진행한 배복주 부대표는 이 사건은 ‘다툼 없는 성추행’이며, 당대표가 징계절차에 회부되었다고 공개했다. 장혜영 의원의 용기에 연대한다. 장혜영 의원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차별과 혐오에 맞서온 빛나는 입법 활동을 이어가길 바란다.

배복주 부대표는 기자회견 마지막 흐느끼며 말했다. “정의당을 아끼고 사랑해주신 당원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치명적인 상처를 드렸습니다.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녀는 옹색할 수밖에 없는 기자회견 자리를 쉽게 끝내지 않았고, 기자들의 모든 질문에 자신의 목소리로 답변했다. 최근 그 어떤 정당이, 그 어떤 고위 공직자나 선출직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나 싶다. 정의당의 책임 있는 징계절차 진행을 기대한다.

본질에서 벗어난 두가지가 논란이 있다. 하나는 왜 고소를 하지 않느냐는 것. 다른 하나는 왜 성추행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느냐는 것.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명하다. 필요하지 않아서다. 진실 확인, 피해 회복, 가해자 책임을 위해 여러 절차가 있을 수 있다.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가 그 절차를 감당할 수 있고, 피해자가 그 절차를 신뢰하며 충분하다고 느낀다면 굳이 수사기관에 고소할 필요는 없다. 추행 사실을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해? 가해자가 사실을 부인하지도, 피해자가 공개를 원하지도 않는다. ‘현직 대표 성추행 사건’이기에, 정의당은 이미 사건이 발생한 날짜와 시간, 장소, 맥락까지 특정해 공개했다. 궁금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야 자유지만, 그런 감정과 ‘성추행 행위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두 논란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해석해보고 싶다. ‘폭력 해석’과 ‘폭력 재현’이라는 차원.

폭력은 언제 권력이 되는가? 폭력을 해석할 권한을 누군가 독점하면서부터다. 무엇이 폭력이고 무엇이 폭력이 아닌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피해자가 아닌지 해석할 권한이 독점될 때 폭력은 권력이자 구조로 작동한다. 성폭력이 대표적이다. 주류가 정한 ‘피해자다운 피해자’가 아닐 때, 폭력은 폭력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2차 가해는 폭력이 권력으로 유지되게 하는 핵심 구조다. 피해자를 공격해서 피해자의 해석을 무력화시키고, 주류의 해석이 유지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피해자로서는 자신의 해석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 권력 없는 무기력한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장혜영 의원이나 정의당이 김종철 대표를 고소·고발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폭력에 대한 해석 권한을 스스로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수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경찰, 검찰, 법원이 아니라 피해자가 참여하는 공동체(정당)가 폭력을 해석하겠다는 것. ‘가해자다운 가해자’도 ‘피해자다운 피해자’도 없으며,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전제 위에서 폭력을 해석하겠다는 것. 장혜영 의원과 정의당의 ‘고소·고발하지 않겠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태도)은,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독점해왔던 폭력 해석 권한을 책임 있게 나누려는 시도이다. 스스로 폭력을 정당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공동체는, 그 과정을 통해 이전과 분명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의당이 성추행 범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폭력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가해자 중심주의’를 극복한 결정이다. 폭력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피해자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 따라서 피해자를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전혀 아니다. 폭력 묘사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가해자의 모습일 뿐이다. 음주 여부를 포함한 가해자 서사가 사건의 본질을 압도하게 된다. 이 구조에서 피해자는 오로지 가해자의 폭력성을 입증하기 위한 사례, 대상으로 고정된다. 피해자의 피해자화다.

피해자가 폭력이 행사된 양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극히 제한된 절차를 제외하고는 불필요하다. 대중적으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흉악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피해자나 수사기관에 흉기나 상처 부위, 범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왜 성폭력 사건에서만 그런가? 이번 정의당의 태도가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으로 남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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