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송경동이 시를 쓰기 힘든 시대 2 / 노순택

한겨레 2021. 1. 2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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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김진숙은 복직투쟁

노순택 ㅣ사진사

시인이 실려 갔다.

전화기를 타고 “송경동이 실려 갔다”는 다급한 말들이 꿈틀댈 때,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부고로 들렸다. 메마른 시골길을 걷다 내 이렇게 시인의 죽음을 듣는구나 싶었다. 이제 할 일은 저 빌어먹을 시인을 용서(그는 나를 많이 괴롭혔다)하고,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일들과 절연하는 것뿐이리라. 그의 죽음은 타살이겠으나, 자살임에 틀림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그를 내 안에서 다시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간곡한 내 경고를 묵살한 응답으로.

한데 잘못 들은 거였다. 시인의 숨이 끊어진 게 아니라, 숨넘어가기 전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얘기였다. 죽더라도 굶겠다던 미련한 시인의 목구멍에 억지로라도 음식을 밀어 넣을 거라는 얘기였다.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진저리 나는 그자를 시인이라 불러야 할까.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고상한 시인 반열에 낄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한 적도 있었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들판에서, 철창 안에서 되는대로 싸질러놓은 수많은 문장들만 살뜰히 건져도 번듯한 시집 몇권 펴낼 거라 군불을 지피기도 했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송경동은 마치 ‘악다구니야말로 내 몸뚱이로 써 내려간 시’라 우기는 것만 같다. 15년 전, 늙은 농부들을 내쫓고 미군기지가 강행되던 대추리에서 그는 현수막으로 목을 묶고 국방부가 파헤친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12년 전, 살려고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이 다섯이나 죽어 내려온 용산에선 그을린 잿더미 아래서 지냈다. 11년 전, 동료의 ‘죽음들’을 가슴에 묻고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위태로운 투쟁을 이어갈 땐 차마 눈감을 수 없어 희망버스를 띄웠다. 절망을 쥐어짠 기름으로 달린 버스였다. 같은 해, 피눈물 나는 복직투쟁을 벌이던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초라한 천막에 사측 포클레인이 덮쳤을 땐 하필 거기에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위에 기어올라 맨몸으로 삽날을 막고 있었다. 괴물을 멈춰 세웠지만, 곧 경찰이 들이닥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포클레인 위에서 그가 매달린 건 전깃줄이었다. 이어 고함을 낭송했다. “너희가 다가오면/ 나는 손을 놓는다/ 손을 놓는 건 나지만/ 나를 죽이는 건 너희들이다.” 경찰이 물러가고서도 그는 내려오지 않았다. 하염없는 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다 떨어져 목숨 대신 발목을 부수고서야 끝내 내려왔다. 7년 전, 304명의 산목숨이 바다에 가라앉고 책임마저 침몰할 땐 유족처럼 울부짖었다. 광화문광장이 시인의 진도 앞바다였다. 5년 전 겨울광장에선 넉달 반을 노숙했다. 박근혜가 내려온 날까지. 4년 전, 파인텍 노동자들이 75m 굴뚝 위에서 426일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이어갈 땐 그 아래서 굶었다. 사력을 다해 굶었다. 그 사이사이, 수배의 그늘에서, 철창 안에서, 법정에서도 악다구니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쳤다. 그도 친구들도. 나는 물었다. 전깃줄에 매달렸던 시인이여, 시는 대체 언제 쓸 텐가.

그러더니 세밑에 다시 굶기 시작한 것이다. 까무잡잡한 낯이 검게 말라버렸다. 김진숙이었다. 부당해고를 인정받고도 35년째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참담한 정년을 맞은 김진숙이 “꿇느니, 하루라도 떳떳이 노동자로 서려고” 말기 암 치료를 멈추고 부산에서 걷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들은 함께 걸었다. 어떤 친구들은 굶으며 기다렸다. 한달 넘게 걸었고, 한달 넘게 굶고 있다. 이제 곧 청와대 앞에서 만나려 한다. 거기 미련한 시인이 있다. 겨우 버티고 있다. 실려 가지 않았다 한다. 내게 걸려온 전화는, ‘아직은’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였다.

※ 11년 전 <한겨레>에 칼럼(‘송경동이 시를 쓰기 힘든 시대’)을 썼다. 히틀러 시대를 살았던 극작가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변주한 제목이었다. 세월이 흘렀다지만 어떤 현실은 그대로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향해 글로 무슨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나는 다르게 쓰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같은 말을 내뱉는 것이다. 나는 11년 전 글을 베껴 썼다. 그래도 말이 통하다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세상인가. 다른 세상 만들겠다며 표를 달라던 저 입들에선 예나 지금이나 정의가 흘러넘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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