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친 집값' 만드는 '미친 정책'

기자 2021. 1. 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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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고문

노동자 연소득 3400만원으론

서울 25평 아파트 매입 36년

노동소득이 어린이 용돈된 셈

빈부격차·계급갈등 해소 위한

현실성 있는 부동산정책 절실

보유세로도 실현 가능한 해법

얼마 전 집값 폭등에 분통을 터뜨리는 네티즌의 댓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10년 일해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일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있겠지만, 평생 고생해 봐야 집 한 채 구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저축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지난해 집값에 고삐가 풀려 버리자 많은 젊은이가 막차라도 타겠다며 ‘영끌’이니 ‘빚투’니 하며 부동산 구입 열풍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영끌이든 빚투든 이마저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의 연평균 소득 3400만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 25평 아파트 매입에 36년이나 걸린다. 결국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 있어야 연립주택이나마 구할까 말까다. 이 나라에서 피땀 어린 노동소득은 이제 어린아이 용돈 취급당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누가 이를 정상적인 사회라고 하겠는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얼마 전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더 높은 비율로 과세하는 게 합당하다”며 “더는 땅(아파트)을 사고팔면서 부자가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필자는 그의 바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불로소득으로 인한 빈부 격차 확대는 국민 통합을 저해함은 물론, 사회 정의(正義)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유 이사장을 비롯,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들이 기본 철학으로 삼는 헨리 조지의 담론 역시 불로소득이 근로소득을 멸시하는 세상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우리가 헨리 조지의 문제의식까지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의식이 옳다고 시대적 합리성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부동산 관련 세는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토지 가치 상승분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대신 모든 세금 형태를 폐지하자는 조지의 일원론적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데도 우리나라 좌파 정부는 그의 부동산세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려 든다.

이들의 비뚤어진 종교적 확신은 요즘 우화에 나오는 개구리 배처럼 부풀어 가고 있다. 올해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전년보다 2∼3배 부과되고, 하반기부터는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마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집을 가진 자 특히 다주택자들은 집을 보유하기도, 팔기도 어렵게 만든 다음 지옥을 맛보게 하자는 ‘원념(怨念)의 정치’가 그들의 두뇌를 지배한다. 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주택에 대한 재산세와 양도소득세는 전세가나 집값에 전가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처럼 하지 않더라도 헨리 조지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보유세에 초점을 맞추면 가능하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세계적 추세 또한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낮추는 정책을 지향한다. 주택을 매입한 후 10년간 보유세를 내왔다면 10년 차 매각 시에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거나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 지난 10년간 오른 만큼을 보유세로 반영해 세금을 납부해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중과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며,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公正)의 길이기도 하다. 그때 비로소 주택 소유자들이 매각에 나설 것이고, 시장에서는 ‘수요에 어울리는 공급’이 시작될 것이다.

현재의 ‘미친 부동산 정책’은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를 계급 갈등으로 치닫게 할 뿐이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지난해 3월 기준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공제한 액수) 보유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11억2481만 원으로 하위 20%(675만 원)보다 11억1000만 원 이상 많았다. 순자산 5분위 배율이 166.64배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만 해도 이 배율은 99.65였다. 그런데 상위 20%의 자산 분포를 보면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이다. 지난 4년간의 부동산 가격 급등이 상·하위 자산 격차를 벌리는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말해준다. 명백한 정책 오류로 판정이 났음에도 똑같은 어리석음이나 실수를 반복하려 든다면 이는 더 이상 단순한 정책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들의 머릿속에 또 다른 저의가 작동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저들은 왜 빈부 격차 확대를 방조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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