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비토] 메이저 우승 점지한 지리산 할머니

2021. 1. 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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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US여자오픈에서 행운의 벙커샷으로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김주연.

#2005년 US여자오픈에선 무슨 일이
마지막 세 홀의 버디로 US여자오픈을 우승하는 것은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이런 만화에 나올 법한 일을 김아림이 해냈다. 3번 우드로 경쟁자들의 드라이버 거리를 압도하며 화려한 버디 쇼를 펼친 것이다. 2005년 US여자오픈은 김주연이 우승했다. 성적이 안 좋다가 메이저 대회에서 깜짝 우승한 것이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김주연이 한 벙커 샷은 조금 강하게 맞았는데 깃대의 정 중앙을 맞고 버디를 했다. 만약 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린 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인 로레나 오초아가 뒤에 있는데 또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오초아가 안전하게 3번 우드로 한 티 샷이 뒤땅을 쳐 바로 앞의 워터 해저드에 빠진 것이다. 세계랭킹 1위에 장기간 있던 오초아의 3번 우드 티 샷 뒤 땅. 좀 강하게 맞은 벙커 샷이 그대로 홀인 되어 메이저 대회를 우승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런 불가사의한 우승을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것은 지리산에서 온 할머니다.

주연이 엄마가 하는 가게에 이상한 포스의 할머니가 나타나 다짜고짜 만원을 달라고 했다. 특별한 기(氣)에 눌려 만원을 주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네 아이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생하는데 여름이 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그 해 여름 김주연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그 후 주연이 부모가 지리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 할머니를 찾을 수 없었고 효녀로 소문난 김주연은 우승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김주연 아버지와 친해 가끔 이런 말을 듣곤 했다. “그 할머니만 찾았어도 몇 승은 더 하고 은퇴하는 건데 아쉽네요.”

#캐디의 손을 물다
기분에 따라 거리를 잘못 불러주고 라인을 반대로 말하는 캐디도 있다. “135미터에요”라고 말하고 선배가 그린을 훌쩍 넘기자 “165미터”라고 미안해 하던 캐디가 있었다. 전발 홀 내내 선배는 캐디와 관계가 좋지 않았고 스코어는 점점 더 망가져 갔다. 후반 첫 홀에 단말마의 비명을 들었는데 선배가 캐디의 손을 물고 있었다.

평판이 좋은 그 선배는 OB를 세 번 내고 운 적도 있다. 분하고 억울하다며 드라이버의 헤드를 잡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평생 실패를 모르던 그는 골프를 통해 수많은 좌절과 슬픔을 겪었다. 그의 눈물 속에 골프의 모든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캐디를 물었던 이빨 속에 있던가.

몇 년 후 그 선배의 소식을 들었다. 드라이버를 치기 전에 양발을 조금씩 움직이며 균형을 잡곤 했는데 지금은 살살 걷다가 조금씩 뛰면서 티 샷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잘 믿지 않았지만 필자는 선배의 행동에 한 치의 의문도 없다. 볼이 잘 맞는다면 100미터 달리기 속도로 뛰면서도 칠 수 있는 분이니까

#게으른 캐디를 깨운 용
잘 나가던 조폭이 머리를 올리러 갔다. 여름인데도 문신이 많아 긴 팔 티셔츠를 입고 라운드를 시작했다. 외모가 곱상한 그는 첫 티샷부터 OB가 났고 헤매기 시작했다. 경험 많은 캐디는 카트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몇 번 클럽을 가져가라고 도도하게 말했다. 2번 홀에서도 그는 계속 뛰어 다녔고 캐디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뛰었다. 캐디가 무시하는지도 모르고 달리기 선수처럼 공까지 뛰어가 샷을 했다. 2번 홀 그린에 오면서 조폭의 하얀 티셔츠가 땀에 젖었고 등에서 용과 호랑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컬러로 된 용의 다리를 본 캐디는 “고객님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며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용은 정말 상서로운 동물이다. 라운드가 끝나고 조상들이 왜 그렇게 용을 숭배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허망한 달리기란 것도.

#미국투어에서 5년, 유러피언투어에서 1년간 뛰었다는 캐디
우연히 동호회의 빈 자리에 끼어 라운드를 했다. 동반자 셋은 모두 여자고 다 세면 140개 정도 치는 수준이었다. 누구에게 골프를 배웠는지 홀 아웃은 꼭 해야 하고 수리지의 맨 땅에 있는 볼도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무식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무식한 사람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 대형사고가 터진다. 상황을 지켜본 캐디가 자신은 KPGA 투어프로고 미국에서 5년, 유러피언 투어에서 2년을 뛰었다고 했다.

이름표도 없었고 마스크도 절대 벗지 않았다. 140개를 PGA 룰로 치던 아줌마들은 레슨을 해달라고 애원하며 캐디의 말에 절대 복종했다. 캐디의 자랑은 계속 되었는데 아내가 의사고 할아버지는 대기업의 회장을 했다고 했다. 조건이 좋은데 왜 캐디를 하냐고 묻자 자신은 독립심 빼면 시체고 레슨 하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했다.

라운드가 끝나갈 무렵에 여러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룰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상식적인 대회의 구조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140개를 치는 언니들은 캐디의 말에 마냥 감동하며 팁도 줬다. 뒤 팀의 캐디에게 우리 캐디에 대해서 묻자 “정신병원에 다시 들어가야 할 애”라고 했다. 140개를 PGA 룰로 치며 팁을 주던 언니들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내기는 평등하다
내기골프 중 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룰을 어긴 사람은 영향력 있는 인사였는데 계속 실수를 했다. 선배가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자신의 배경과 힘을 이용해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선배는 모자를 벗고 예의바르게 말했다. “대표님, 내기골프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합니다. 계급도 사회적 지위도 필요 없습니다. 대표님이 조폭이든 대통령이든 신이든 상관없습니다. 내기골프는 그 자체로 신성한 거니까요” 내기가 신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유명인사의 플레이는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많은 재산을 도박으로 전부 탕진하며 배운 것이 “모든 내기는 평등하며 신성한 것”이란 선배의 깨달음이 결코 얇다고 폄하할 순 없다.

#내공이 높은 할아버지
아마추어 시절 선배들의 내기에 선수로 뛴 적이 있다. 말로 참전한 건데 판이 점점 커지며 다양한 선수들이 찾아 왔다. 경기도에서 선수로 온 분은 등도 좀 굽었고 흰머리도 많아서 통칭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드라이버 거리도 안 나고 스윙이나 샷도 보잘 것 없었지만 한 번도 그를 이겨 본적이 없다. 그는 마치 바위와도 같았다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작은 흔들림도 없었다. 정중하게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이런 조언을 해줬다. “내기골프는 내가 잘 치는 것보다 상대가 못 치면 이기는 것.”“말을 조심해라, 말과 생각이 싸우면 늘 말이 이긴다.” 할아버지를 만난 후 몇 년이 지나자 골프장에서 약을 먹여 사기를 치는 골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분은 우리보다 애초에 세 수 이상 앞서 있었다.

#드라이버가 무슨 죄
드라이버 문제로 새로운 용품이 나올 때마나 클럽을 교체하는 골퍼가 있었다.거리가 많이 난다는 소문이 돌면 계속 바꿨는데 OB도 계속 났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페어웨이를 향해 절을 하고 티샷을 하기도 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도 절을 두 번 반 하는데 세 번이나 정중하게 절을 한 후 티 샷을 날렸다. 좌로 개 훅이 나면서 OB가 나자 새로 산 드라이버를 그냥 물속으로 던졌다. 그리고 전반도 끝내지 않고 집에 간다며 백을 뺐다.

나인 홀을 끝냈는데 그가 골프백과 함께 서 있었다. 프로샵에서 새로운 드라이버를 샀는데 니들 다 죽었다며 득의양양했다. 하지만 몇 홀 만에 다시 OB가 났고 그는 카트에서 백을 내려 연못에 버리며 다시 골프를 하면 개자식이라며 돌아갔다. 그러나 정확하게 3일 후 레슨을 해주던 프로에게 그가 왔다고 한다. 백화점에 같이 가 거리가 많이 나는 클럽을 골라 달라면서.

#현명한 캐디
초보 캐디와 라운드를 하는 중 유틸리티를 달라고 했다. 캐디가 잘 모르는 것 같아 우드 두 개 중 조그만 거라고 설명했다. 캐디는“아, 고구마”라며 가져왔고 다음 홀에서 캐디가 말했다. “사장님 따라해 보세요. 고구마” 우린 고구마로 통일했고 내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11번 홀에서 담배가 떨어져 우왕좌왕하는데 캐디가 볼 박스를 하나 꺼냈다. 거기엔 시중에 파는 대부분의 담배가 들어 있었다.

“저는 초보 캐디라 고객님들에게 해줄 것이 이런 것 밖에 없어 준비했어요.”버디를 할 때마다 팁을 줬는데 겸손은 어떤 각도로 봐도 아름답다. 서 있는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그들 사이에 적당한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캐디와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도 좋은 라운드를 위한 조건이 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골프와 인생은 소름이 돋도록 닮았으니까.

*어부(漁夫) 비토(Vito)라는 필명을 갖고 있는 김기호 프로는 현재 K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동중인 현역 프로입니다. 또한 과거 골프스카이닷컴 시절부터 필명을 날려온 인기 칼럼니스트로 골프는 물론 인생과 관련된 통찰로 아름다운 글을 독자 여러분께 선사할 것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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