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프로스포츠, 애증 얽힌 인연

이준목 2021. 1. 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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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지역 연고 스포츠팀, 시민의 동반자로 기억되려면

[이준목 기자]

2021년은 인천 스포츠 팬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의미로 기억에 남을 한 해가 될 것 같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가 올 시즌을 끝으로 운영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인천 연고의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구단이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매각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인천은 수도 서울과 함께 국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프로스포츠 리그 구단들을 보유한 연고지로 유명하다. 야구의 SK와 농구의 전자랜드를 비롯하여, K리그 남자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WK리그 여자축구 현대제철, 남자배구 V리그 대한항공-여자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여자농구 신한은행 에스버드 등이 모두 인천에 둥지를 틀고 있다. 각 종목에서 손꼽히는 위상을 보유하고 있는 명문팀들도 다수다. 지난 2014년 아시안게임을 개최했을 만큼 체육 인프라가 잘 구비되어 있고, 인구도 300만이 넘는 대도시이자 열정적인 팬덤까지 프로 스포츠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춘 도시다.

하지만 인천은 유독 연고팀들의 명운이 다사다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로야구는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를 시작으로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에 이르기까지 40년도 안 되는 역사속에서도 여러 팀들이 명멸을 거듭했다.

삼미, 청보, 태평양은 모두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다. 초창기인 80-90년대까지는 인천 연고 야구팀들의 성적이 대부분 좋지 못해 하위권을 전전하는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는 대기업답게 과감한 투자를 통하여 인천 연고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1998년)에 올리며 암흑기를 청산하는 듯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단행하며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이처럼 인천의 야구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팬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모습을 수차례나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인천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것은 전북을 연고로 했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하여 2000년 재창단한 SK 와이번스였다. SK는 프로야구 후발주자였음에도 무려 4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비교적 짧은 기간에 신흥명문으로 도약했다. 해태-삼성-현대- 두산 등과 함께 프로야구 '왕조' 계보를 잇는 팀으로까지 거론될 정도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인천 야구 역사의 절반 이상이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구단이 바로 SK였다. 

2000년대 이후의 인천 야구팬들에게 SK는 큰 자부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안정적인 대기업이었던 SK는 가난해서 문을 닫아야할 상황도 아니었고, 연고지를 배신할 이유도 없어보였다. 성적과 인기도 모두 좋았다. 하지만 SK마저 돌연 석연치않은 이유도 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매각되면서 또다시 응원하던 구단과 역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야구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선수단이 그대로 이마트에 인수되며 팀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팬들에 대한 이별의 예의는 아니었다.

남자농구 인천 전자랜드의 역사도 파란만장하다. 전자랜드는 프로 원년 신생구단인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라는 팀명으로 처음 출범한 이래 신세기 빅스(1999년-2001년) 인천 SK 빅스 (2001년-03년)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3년-09년), 그리고 지금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2009년-21년)까지 모기업과 팀명이 여러 차례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고성적은 정규리그-챔프전 준우승 각 1회로 모두 우승 기록이 전무한 유일한 프로농구단이다. 부산 kt와 창원 LG도 챔프전 우승은 없지만 두 팀은 정규리그 우승은 차지해본 일이 있다. 역대 한쿼터 최소득점, 신인드래프트의 저주 등 불명예스러운 기록과 징크스로 '개그랜드'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도 불렸다. 반면 끈끈한 팀워크와 도전자의 이미지 때문에 '프로농구의 언더독' '감성랜드'로도 불린다.

전자랜드는 과거에도 수차례 구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해체를 검토했던 전력이 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한 올해 5월 31일을 끝으로 인천 전자랜드라는 구단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KBL은 인수 기업을 찾고 있지만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수익성도 떨어지는 프로농구단을 맡을 기업이 단기간에 나올지는 미지수다. 

최근 SK그룹이 기습적인 야구단 매각을 결정하면서 또다른 스포츠단인 농구팀 서울 SK 나이츠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농구계 일각에서는 전자랜드의 해체 결정으로 인한 도미노 효과가 혹시 농구단을 소유한 다른 기업들에게도 연쇄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남자축구 K리그의 인천 유나이티드는 '생존왕'으로 유명하다. 시민구단인 인천은 K리그 수도권을 연고로 하고 있는 FC서울, 수원 삼성, 성남 일화 등 여러 명문팀들에 비하여 우승같은 화려한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농구의 전자랜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팀의 진가는 프로축구 출범과 승강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2부리그로 내려간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인천은 매년 1부리그 잔류를 놓고 강등권 팀들간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있다. 지난 2020년에는 시즌 중반까지 14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최악의 부진에 허덕였으나, 조성환 감독 부임 이후 잔여 13경기에서 7승1무5패 승률 6할이라는 거짓말 같은 대반전을 이뤄낸 끝에 시즌 최종전에서 다시 한번 극적인 1부리그 생존에 성공했다. 하지만 인천 축구팬들은 다음 시즌에는 강등권을 전전하다가 간신히 살아만 남는 패턴을 벗어나 좀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인천 스포츠의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오히려 여자 구단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축구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는 2013년 WK리그 출범 이후, 한번도 빠짐없이 무려 8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한 여자축구계의 절대강자다. 이민아, 장슬기 등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하다.

V리그 여자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현재 여자배구 최강팀이자 올해 인천연고팀의 첫 우승 1순위로 꼽힌다. '배구여제' 김연경을 비롯하여 이다영-이재영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흥국생명은 16승 3패 8할대(.842)가 넘는 승률로 압도적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남자배구 대한항공도 선두에 올라있어서 인천 연고팀의 남녀배구 동반 제패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인천이 앞으로 서울, 부산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스포츠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팬들의 충성도와 연고지 스포츠 인프라의 동반 발전, 지자체와 모기업, 구단간의 유기적인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스포츠의 문화적-역사적 가치에 대한 인식전환 등이 모두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프로구단의 자립성이 취약한 한국스포츠 문화에서 지역 연고 스포츠팀들이 시민의 자부심이나 함께하는 동반자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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