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크는 한약 좀 지어주세요"

2021. 1. 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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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성장 문제는 아이 탓이 아닙니다

[김형찬 다연한의원 원장(windfarmer@hanmail.net)]
"지금도 작지는 않은데, 요즘 애들이 원체 크잖아요. 키 크는 데 도움 되는 약을 좀 지어주세요."

"이 나이에 이 정도 키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진단결과를 보면 장 기능에 문제가 있고, 나이에 비해 신체에너지 수준이 너무 낮아요. 먼저 장 건강을 회복시켜보죠."

종종 아이들 성장 때문에 상담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소아·청소년을 전문으로 하진 않지만, 어려서부터 봐오거나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건강이 좋아지면서 생긴 신뢰 관계, 때론 비용 부담 때문에 동네한의원을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약을 복용하면 아이 키가 얼마만큼 클 겁니다."와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하고, "건강하면 되지 않느냐, 피카소나 나폴레옹의 위대함이 키에서 오진 않죠. 너무 큰 키는 장수시대에 불리할 수도 있어요."라고 하면 분위기는 묘해집니다. 하지만 모두가 키가 커져도 그 중에는 또 작은 사람이 생길 터이니, 저는 큰 키에 대한 환상을 깨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 환상이 어쩌면 아이를 아프게 만들 수도 있고요. 그래도 뭔가를 바라는 경우에는, 아이의 건강을 살피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몸과 마음이 튼튼하면 키도 잘 자랄 테니까요. 실제로 뜻하지 않게 키가 급격히 커버린 아이들도 꽤 있고요.

모든 병이 그렇지만 아이고 어른이고 건강한 음식을 잘 먹고, 충분히 깊이 자고, 마음이 편안하고, 적당히 몸을 움직이면 건강할 확률이 큽니다. 아이들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면 키는 필요한 만큼 큽니다. 병이 있으면 그것을 치료하는 것을 우선하고, 생활습관의 개선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아이들을 살핍니다.

1. 잔병치레형
감기에 자주 걸리고, 만성비염이나 계절형 비염을 앓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병을 낫는데 에너지를 소모하고, 병 때문에 복용하는 약물들이 아이들의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폐의 기능과 관계가 깊습니다.

2. 흡수불량형
음식을 잘 먹지도 않고, 또래마다 적게 먹거나 편식 경향이 있습니다. 배 아프다고 잘하고, 대변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웬만큼 먹는대도 체중이 잘 늘지 않기도 합니다. 위장기능과 관계가 깊습니다.

3. 대기전력형
주눅이 들거나 긴장한 표정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때론 직장생활에 지친 어른의 모습도 보입니다. 잠을 늦게 자거나 많이 자도 아침에 피곤하다고 합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주변에서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심장과 간의 기능과 관계가 깊습니다.

4. 허약체질형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고 발달이 좀 느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소변도 늦게 가리고, 체력도 약해서 쉽게 지쳐 합니다. 조금 활동하고 나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고, 코피도 잘 납니다. 신장 기능과 관계가 깊습니다.

분류는 이렇게 하지만 실제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 가지가 혼재된 상황입니다. 그 증상들의 하나씩 갈래를 터서 가장 급하고 중요한 것을 찾아 잘 회복시켜 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일종의 성장클리닉인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성장의 문제는 아이들 탓이 아니라는 겁니다.

잔병치례와 흡수불량은 아이들이 태어나서 만나는 외부 세상과의 문제입니다. 호흡기와 위장은 공기와 음식이라는 생존에 필요한 물질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미세먼지와 화학물질 같은 공기의 유해요소와 함께 충분히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 됩니다. 열량만 있고 좋은 영양은 갖추지 못한 식사와 자연의 맛을 인공합성물질로 대체한 먹을거리들이 아이들의 위장을 망가뜨립니다.

대기전력과 허약체질은 주로 부모가 만들어 낸 가정환경과 유전적 요인들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첫 번째 선생님이자 아이들의 성향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환경요인입니다. 부모를 통해 만나는 세상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아이들의 건강은 위태로워집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충분히 성장하길 바란다면 아이가 만나는 환경을 잘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일상의 생활습관과 부모입니다.

아이가 크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병든 환경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합니다.

[김형찬 다연한의원 원장(windfarm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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