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그리 가볍게 처벌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11)]

2021. 1. 2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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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재판 중에서 판사 혼자 피고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형사단독재판이 가장 어렵고 부담스럽다. 29년 전 춘천에서 형사단독을 맡으며 양형 추세를 알아보려고 〈사법연감〉을 뒤져보다가 깜짝 놀랐다. 강원도 소재 법원은 춘천을 비롯해 원주, 강릉, 속초, 영월에 있는데,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집행유예를 붙이는 비율이 지역에 따라 몇배 차이가 있었다. 비슷한 지역에서 집행유예 비율이 크게 다른 이유는 죗값에 대한 판사들의 생각 차이였을 것이다.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2020년 7월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형위원회 제103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보통 사람들의 법감정과 형법의 이념

양형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판사들보다 판사와 시민 사이에서 더 심하다. 성폭력범죄, 정치인의 뇌물범죄나 재벌 회장의 횡령·배임죄에 대해 형이 선고될 때마다 언론은 시민의 성난 목소리를 전하며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한다. 형이 높다고 비난하는 예는 상습절도범이 사소한 물건을 훔쳐 실형을 받은 ‘한국판 장발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보지 못했다. 판사의 온정주의를 탓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보도하는 것도 일상화됐다. 국회도 여론을 반영해 형벌의 상한을 올리고 형을 정하는 데 판사의 재량권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을 만들거나 바꾸었다. 처음 형사재판을 맡을 때와 비교하면 형이 많이 올라갔는데, 여전히 시민은 판사가 ‘낮은 형’을 선고한다고 생각한다.

죄인에 대한 형량은 사회윤리적으로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 즉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 사람들의 보통 법감정은 분노와 응보, 즉 그가 저지른 만큼 똑같이 죗값을 치르게 하라는 것이다. 세계 최초 성문법인 함무라비법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처벌하는 탈리오 법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국가 형벌권을 신중하게 행사하는 방향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적용돼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후 올바르게 생활하도록 교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형법학자와 판사들은 동해보복(同害報復)의 법감정을 극복했다. 형법 제51조는 판사가 형을 정할 때 (범죄의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①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② 피해자에 대한 관계 ③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④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고 규정한다.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고의로 살해한 사람에 대해서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사형에 처할 것이 아니라 여러 양형 사유를 따져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형법의 이념과 역사를 배우고 양형감각을 익히며 판사들은 ‘낮은 형’을 선고했다.

사람들은 무겁게 처벌하면 범죄가 줄어들 텐데 처벌이 가벼워 범죄에 노출되는 위험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범죄로부터 안전하다. 인구 10만명당 살인건수를 보면 미국은 5건, 프랑스는 1.2건, 독일은 0.9건인데, 대한민국은 0.6건에 불과하다. 1000만명이 사는 대도시에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시내를 걸어다녀도 큰 문제가 없는 곳이 서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범죄를 매우 두려워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언론이 강력범죄를 자주,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도 문제다. 범죄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범죄 수법이나 살해 현장, 유기 방법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온 동네에 나쁜 놈만 있는 것처럼 비추면,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의 어떤 잘못도 용서하지 않게 된다. 단 자기와 가족은 예외다.

‘엄벌주의’가 안전 사회 보장 못 해

판사가 일벌백계로 무겁게 처벌하면 안전한 사회가 되리라는 ‘엄벌주의’는 어느 나라, 어떤 사회에서도 입증되지 않았다. 흔히 미국의 사례를 들어 가볍게 처벌한다고 주장한다. 그 말은 맞다. 그런데 미국은 우리뿐만 아니라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 형벌이 무거우며 수감자의 비율도 엄청나게 높다.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1993년 범죄에 대해 ‘톨레랑스 제로(무관용)’ 정책을 폈으나, 그 효과는 잠깐에 그쳤을 뿐 범죄율은 장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사회가 그만큼 불안전해 형량이 올라갔고, 그랬음에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현실의 반증이 아닐까. 보통 죄인은 자기는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판사도 미리 가늠할 수 없는 죗값까지 따져 나쁜 마음을 조절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처벌받을 확률을 높이는 ‘필벌주의’가 범죄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다만 공권력이 늘어나고 적법절차를 가볍게 볼 위험성이 있다.

판사의 주관에 따라 형량의 차이가 컸던 문제는 2009년부터 도입된 ‘양형기준제도’로 많이 시정됐다. 다만 형을 정할 때 대법원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지만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피고인은 갑남을녀 중 한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인생사를 살아온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살인죄를 비롯한 강력범죄의 형량도 유기징역형의 최고 상한이 50년으로 늘어나면서 적절하게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성폭력범죄는 범죄의 죄질과 피해자에 미치는 트라우마의 심각성에 비추어 더 올라가야 한다고 본다.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말해서 판사가 범죄의 충격을 피해자 시각에서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에게 설명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횡령이나 배임죄를 저지른 재벌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적절한지는 ‘기업이 사회에 기여한 바와 회장이 보여준 리더십을 양형요소로 고려할 것인지’를 공론화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시민은 집행유예를 판사가 베푸는 은혜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기준은 더 자세해져야 한다. 피해자와 합의는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했는지, 합의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꼼꼼히 따진 뒤 감형요소로 검토돼야 한다.

형사재판에서 유·무죄는 판사에게 익숙한 사실인정과 법리의 영역이지만, 양형은 판사가 잘 알지 못하거나 꺼리는 감정과 윤리의 영역이다. 그럴수록 판사는 죗값이 얼마인지 성찰하고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죄질이 무겁다’는 식의 틀에 박힌 법률 용어가 아니라 시민이 쓰는 말로 쉽게 적어야 한다.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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