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의 힘 [오십, 길을 묻다 (37)]

2021. 1. 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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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누구나 살면서 좋은 일이 있기만 바란다. 불가능한 소원이다. 한 50년 살다 보니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차선으로 좋지 않은 일을 겪더라도 잘 이겨내길 바랄 수밖에 없다.

행복은 성공이나 성취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내면적 결단에서 오는 것이다. 지난해 성탄절,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이 기도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 ‘역경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의 비밀’. 커뮤니케이션 학자 김주환이 2011년에 낸 〈회복탄력성〉 표지에는 이런 글귀들이 적혀 있다. 시련을 행운으로 바꿀 수 있고, 역경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니, 더 바랄 게 없다. ‘회복탄력성’이란 말에 사로잡힌 까닭이다.

회복탄력성은 ‘탄력’, ‘회복력’ 등을 뜻하는 ‘resilience’의 우리말 번역어다. 김주환이 어려움에서 적응적 상태로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인 ‘회복’과 정신적 저항력의 향상, 즉 역경을 딛고 다시 튀어 오르는 성장을 뜻하는 ‘탄력성’을 합쳐서 옮긴 개념이다. “강력한 회복탄력성의 기반이 되는 진정한 행복감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서 오는 것이지 외부적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성공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믿어지지 않는다. 행복을 외부적 조건에서 찾는다면 그 조건이 오히려 불행을 가져온다고 김주환은 말한다. 내가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채워지지 않는 돈 때문에 불행할 거다. 권력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채워지지 않는 그 권력으로 역시 불행을 느낄 거다. 욕망이란 원래 이런 거 아닐까.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키는 부정적 정서가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행복의 조건이라고 믿는 것을 얻지 못할까봐, 이미 가진 것을 잃어버릴까봐 걱정하는 데서 생긴다. 행복은 성공이나 성취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내면적 결단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아야 이런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김주환은 말한다.

행복이 정말 내면적 결단만으로 가능할까. 내면의 결단이 아니라 층층이 쌓인 성공과 실패의 경험으로 행복을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내면적 결단과 외적 조건이 결합된 실제의 경험이 아무래도 더 중요할 것 같다.

“위인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사실 역경 ‘덕분에’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발언에 이르면 나의 의심은 더욱 커진다. 우선 이런 주장이 과연 실제에 부합하는지 믿기지 않는다. 설령 부합하더라도 보통 사람에겐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김주환은 보통 사람에 대한 연구로 하와이 카우아이섬 종단 연구를 소개한다. 이 연구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취약한 카우아이섬에서 1955년 태어난 모든 신생아를 어른이 될 때까지 추적하는 연구였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회복탄력성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를 내놨다. 워너에 따르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아이 중 3분의 1은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역경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지켜줬던 걸까. 워너는 그 원인이 ‘회복탄력성’에 있음을 발견했다.

위즈덤하우스
워너의 결론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이 회복탄력성에서 인간관계가 핵심적 요인이라는 점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아이들 곁에는 그 아이를 이해해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명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한사람의 사랑을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아존중감을 길러가며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회복탄력성〉은 독자들이 스스로 회복탄력성을 알아볼 수 있는 질문지를 싣고 있다. 김주환이 개발한 ‘한국형 회복탄력성 지수’다. 자기조절능력, 대인관계능력, 긍정성의 53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자기조절능력은 감정조절력, 충동통제력, 원인분석력으로 이뤄져 있다. 한편 대인관계능력은 소통능력, 공감능력, 자아확장력으로, 긍정성은 자아낙관성, 생활만족도, 감사하기로 이뤄져 있다.

몇 문항에 답을 적다가 그만두었다. 성적표를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아무래도 높은 점수가 나올 것 같지 않으니 회복탄력성을 높일 방법부터 빨리 찾고 싶었다.

역경 ‘덕분에’ 위대한 업적 이루다

김주환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긍정성의 강화를 제시한다. 긍정성을 강화하면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을 모두 높일 수 있다. 긍정성을 습관화하면 뇌 자체를 긍정적인 뇌로 바꿀 수도 있다. 배운 지식 말고 익힌 지식이 ‘암묵적 지식’인데, 이 암묵적 지식은 ‘뇌에 새겨지는’ 것으로 뇌에 새로운 신경망을 남긴다. 김주환은 3개월 정도의 긍정성 훈련을 통해 강한 회복탄력성을 지닌 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회복탄력성〉에서 내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심리학자 다니엘 캐니만의 대장내시경 실험이다. 캐니만은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검사를 하고 곧바로 내시경을 제거했고, 다른 그룹은 한참 있다 제거했다. 조사에 따르면 후자 그룹이 검사를 덜 고통스럽게 기억했고, 재검사 의향도 훨씬 높았다. 전자그룹과 후자 그룹 사이에는 고통에 대한 기억이 달랐다.

다시 말해 경험은 기억에 따라 달라진다. 기억하는 자아, 즉 ‘기억 자아’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자아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이 기억 자아가 역경과 고난에 긍정적인 의미와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기억이 결국 자아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회복탄력성 담론은 심리학적 휴머니즘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이 회복탄력성이 늘어난 건지 줄어든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예기치 않는 일에 부딪힐 경우 젊었을 때만큼 크게 낙담하지는 않는다. 회복탄력성이 삶에서 획득되는 일종의 내성이라고 한다면, 내게도 약간의 내성이 형성된 것 같기도 하다.

김주환은 행복의 수준은 일차적으로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행복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더하여 우리 머리는 평생 굳어지지 않고, 뇌세포는 80세까지 만들어진다고 격려한다. 50대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의미이니,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이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는 주장은 여전히 100퍼센트 믿지 못하겠다. 하지만 외적 사건은 어차피 통제 불가능한 거고, 비록 어렵더라도 내면적 변화를 통해 행복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소식이다. 좋은 소식은 토를 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젊은 시절에는 없었던 이런 태도가 나의 회복탄력성이 높아진 증거라고 믿고 싶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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