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타락한 사회 [이 한권의 책]

2021. 1. 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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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벼락부자 대신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아파트가격이 몇 달 새 갑절로 뛰고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돌파하면서 순식간에 자산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난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는 유학의 가르침처럼 상대적 박탈감은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한스러움을 일으킨다. 앉은 자리에서 절로 횡재를 만난 사람들도 ‘운빨’이 다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마음에 숨어 있다. 부자나 빈자나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이다. 인간에게 최고의 하인이거나 최악의 주인이 되는 돈을 위대한 작가들은 어떻게 파악해왔을까.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외 지음 김난령 외 옮김·에디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는 단편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서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재물욕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제시하고 있다. 평소 부를 자랑하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주인공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호사를 누리지만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대한 다이아몬드 산을 숨기기 위해 사람들을 속여 노예로 부리거나 감금하고 죽여버린다. 비밀 유지를 위해서라면 가족까지 없애버리는 판이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자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벨다인 부자의 돈’도 횡재수에 부정적이다. 우연히 낀 노름판에서 끗발이 올라 판돈을 싹쓸이했지만 어디에 숨겼는지 기억을 할 수 없다. 불운을 한탄하며 가난에 찌들다 임종 직전에 떠오른 장소를 아들에게 알려주지만, 유산을 받은 자식의 운명 또한 비슷하다.

평생 돈에 시달렸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구차한 신세의 하숙생이 죽은 후 그의 이불 속에서 거액의 루블 다발이 발견된 상황을 보여준다. ‘프로하르친 씨’는 가난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돈이 목적이 되면서 생을 잃어버린, 그래서 불안과 공포와 죄책감 속에서 벌벌 떨다 숨을 거둔 비극이 박진감 있다.

돈을 종으로 부린 사례는 없을까.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라는 악동 캐릭터를 만들어낸 마크 트웨인의 ‘백만 파운드 지폐’를 보자. 빈털터리의 이방인이 런던에서 거액의 지폐 한장만 갖고 한푼도 쓰지 않고 한달간 버티는 시험에 들어간다. 계산하려고 돈을 꺼내기만 하면 식당, 양복점, 호텔 어느 곳에서나 사양이다. ‘셀럽’으로 언론이 다뤄주고 공관에서 초청하는 유력인사가 되어 나중엔 사업보증을 서주는 대가로 거액을 벌어들이며 사랑마저 얻는 해피 엔드다.

하지만 이 중·단편소설 모음집 〈돈〉에 실린 대다수 작품은 금전에 부정적이다. 중세 사회에서는 돈이 융통되면서 신분질서를 흔드는 위험을 경계했다. 고리대금업을 백안시하고 사농공상으로 천시한 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돈의 전능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마르크스는 돈이 모든 것을 교환하고 대체 가능하게 만들면서 인격과 생명까지 상품화시키기에 비판적이다. 교환은 사람의 생존과 협력을 위한 최고의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교환수단인 돈이 물신화돼 버리면 인간과 사회는 타락하고 인격 대신 가격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소외가 전면화할 수밖에 없다. 작가들이 돈의 위협을 경계하는 사이렌을 울리는 까닭을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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