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사람들-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들의 절규 [만화로 본 세상]

2021. 1. 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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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사람들은 ‘구의역 김군’이 죽어간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여 그를 애도했다. 아니, 애도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다짐의 발신인은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김군처럼 산업재해로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은 청년들이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피해를 만화로 그렸던 김성희·김수박 작가는 이 청년들을 ‘문밖의 사람들’로 명명한다. ‘안전과 연대의 문’ 밖에 있는 파견노동자 청년들, 〈문밖의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만화다.

‘문밖의 사람들’의 한 장면 / 보리출판사


2016년 2월 전후로 발생한 메탄올 중독 사고로 실명하거나 시력에 심한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이 〈문밖의 사람들〉의 주인공이다. 특히 네 번째 피해자 이진희씨는 만 사흘 반의 파견노동으로 시력을 모두 잃었다. 스물여덟 살 진희씨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습을 위해 상경했다. 서울 생활에는 돈이 필요했고, ‘단기 알바’ 삼아 대기업 휴대폰의 버튼 생산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다. 작품은 진희씨가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13일부터 혼수상태에 빠진 17일까지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재현한다.

휴대폰 버튼의 가공 공정에는 알코올이 활용된다. 알루미늄판 절삭 중 생기는 열을 식히고 버튼을 매끄럽게 가공하기 위해서다. 가공 후 에어건으로 알루미늄 가루를 털어낼 때 알코올도 공기 중으로 흩날린다. 그래서 공기정화장치, 마스크, 보안경 등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며 알코올은 독성이 적은 에탄올을 써야 한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메탄올은 영구 실명은 물론 심하면 사망까지 이른다. 진희씨가 일했던 공장은 메탄올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야간 파견근무자 진희씨에게 어떤 위험도 고지되지 않았고, 안전장구도 미비했다. 진희씨는 4일째 업무를 다 마치지 못했고, 이튿날 응급실로 실려 갔다.

피해에 대응한 활동은 〈문밖의 사람들〉의 또 다른 중심이다. 진희씨와 같은 사고를 당한 이들이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로 가시화됐던 배경에는 노동건강연대의 활동이 있었다. 진희씨와 또래인 활동가 박행은 이들의 피해가 왜 발생했고,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 따져물었다. 공장뿐만 아니라 원청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흩어져 있던 피해자들을 찾아 모았고, 서로 만나도록 도왔다. 먼저 사고를 당했던 현순씨는 박행을 통해 진희씨와 만났다.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면 안 돼.” 현순씨와 진희씨는 피해자로서 증언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 그리고 박행과 노동건강연대의 활동 덕에 메탄올 실명 피해자는 6명으로 그쳤다. 〈문밖의 사람들〉은 이들의 피해와 활동을 엮어내 꿋꿋하고 힘 있는 이야기로 담아내며 마무리한다. 이후는 책임 있는 사람들과 사회의 몫이라는 것을 명백히 한다.

4년이 지났다.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한국 사회는 지켜주었을까? ‘김용균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나왔지만, 법안을 따져보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진희씨를 비롯 피해자 3인이 제기했던 소송은 오는 2월 4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문밖의 사람들〉에 담긴 피해와 활동이 우리 사회에 새긴 의미를, 그 판결은 제대로 마주할까?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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