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망망대해의 새로운 소리 [문화프리뷰]

2021. 1. 2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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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그간 휴관했던 서울 소재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재개관을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은 1월 19일부터 사전예약을 통한 전시장 운영을 재개했다. 지난 연말부터 전시장 문이 닫혀 있었기에 그간 밀렸던 전시를 확인하느라 마음이 분주해진다.

아르코미술관 1층 전시장 전경(여덟 마리 등대, 2020. 스피커 8대: 사운드 13분 1초, 가변크기)


‘보트’ 위에 실제로 관객이 올라앉을 수 있다. / 필자 제공


아르코미술관도 1월에 운영을 재개하고 홍이현숙 작가의 개인전 ‘휭, 추-푸’(3월 28일까지)를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은 의성어인데, 휭은 동물이 날아가는 소리, 추-푸는 그 동물이 날다 물에 풍덩 뛰어들거나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라고 한다. 이 생경한 제목처럼 전시장에 입장하면 조금은 낯선 감각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500㎡(약 150평)의 광활한 1층 전시장은 텅 빈 채 조명이 꺼져 어두운데, 작은 평상 같은 구조물에만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다. 바닥에는 아련하게 파란 조명이 있어서 마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주인공 파이가 된 듯, 작은 보트를 타고 태평양을 표류하는 기분이 든다. 마치 파도가 쳐서 뗏목이 흔들리듯,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감각세포는 시각에서 청각으로 옮겨간다.

어두운 망망대해 가운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고래가 내는 소리다. 8채널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밍크고래, 부리고래, 참고래 등 총 여덟 종류의 고래가 내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때로는 고래끼리 대화하듯이 주거니받거니 들려온다. “고주파와 저주파 음역대를 오가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온전히 들을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소리다. 이 소리는 태평양 심해에서 서식하는 고래의 소리를 채집한 것으로, 막대기로 치는 것 같은 소리, 높은 피치로 지저귀는 소리, 웅웅대는 소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등 차마 뭐라고 확정하기 어려운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어떤 소리는 강한 진동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소리에 의해 앉아 있던 ‘보트’의 표면이 미세하게 떨리기도 한다. 특히 범고래의 소리가 인상적인데, 15초간 어떤 소리를 내지만 인간의 가청범위를 벗어나는 소리라 ‘소리를 내고 있으나 우리 귀에 들리지는 않는’ 소리가 난다.

사실 이 ‘보트’의 크기는 작가가 현재 살고 있는 방에서 가구면적을 뺀 작가가 실제 움직여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 사이즈와 일치한다. 그러니까 이 ‘보트’는 ‘방’인 셈이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환하게 시야가 트여 있던 이전과 달리 현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혀 다른 어둠의 시간대를 통과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과의 원활했던 만남의 순간이 잠시 멈춘 이때, 내가 서 있는 이곳에는 전에는 잘 간파되지 않던, 조금은 낯설고 새로운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로 작가는 전시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이 되어 ‘명상’을 해도 좋겠다고 말했다. 명상과 함께 2층에도 마련된 작가의 영상, 설치 등 작업을 관람하다 보면, 1시간으로 제한된 관람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진다.

정필주 문화예술기획자·예문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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