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 같던 나를 말랑말랑하게 변화시킨 너
[[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엄마, 안아주고 뽀뽀해 줘.”
벌써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를 꽉 끌어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면 늙은 어미의 볼과 입술에 뽀뽀를 퍼붓는다. 어쩌다 하루 종일 한 번도 안아보지 않은 날은 잠자기 전에 꼭 확인한다. “엄마, 오늘 한 번도 안 안아 봤잖아, 안아주고 뽀뽀해 줘.” 작고 말랑말랑하던 엉덩이에 살이 붙어 이젠 한 손에 들어오지도 않고, 무릎에 앉혀 안고 있으면 무게에 짓눌린 다리가 아파 오래 안고 있기도 힘들다. 그러나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는 이 편안하고 따뜻한 순간이 아직도 허락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엄마의 품과 입술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아마도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에 학교 앞에 내려주면 “엄마 운전 조심히 해, 전화기 끄지 마, 알러뷰”를 녹음기처럼 반복하며 차에서 내려 엄마가 유턴을 하고 돌아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다. 백미러로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에 신발주머니를 들고 한 쪽 손을 흔들고 있는 조그만 아이를 보면 가끔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막 오십이 되었다. 입양기관의 소장님은 엄마 나이가 오십이라는 말에 마음이 급해지셨다고 한다. 아이들 다 키우고 이미 힘든 시절 다 지나 노후를 준비하던 친구들이 모두 난색을 표했다. 오래 전부터 내 생각을 반대해 오던 남편을 겨우 설득해 놓은 터였지만, 나는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나이도 체력도 주름진 얼굴도 어느 하나 엄마가 될 자신 있는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걸리는 것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없는 직장인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입양을 하지 말아야 할 경제적, 심리적, 현실적인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는 입양을 추진한 이유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곁에 있어 주는 엄마의 사랑 하나면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은 오래전부터 마음으로 발원한 바가 있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와서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아이의 성장을 돕는 엄마라는 이름을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음에도 사실상 출산을 포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입양에 대해 보수적인 한국 남자였고 쉽게 내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직장 때문에도 결심의 순간을 미루다 결국 오십이 되어서야 실행을 할 수 있었으니 많이 늦긴 했다. 좀 더 결심을 빨리했으면 좋았겠으나 어느 스승의 말처럼 나는 밥을 태워 누룽지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었다. 후에 승겸이에게 그것이 좀 미안했다. 너무 늙은 엄마라서, 사람들이 자꾸 할머니라고 하는 엄마라서.
현실적인 이유로 부정적이던 친구들이나 남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가 승겸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응원과 축복과 지지를 보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아이가 처음 집에 오던 날, 문밖에 나와 기다리시다 아이를 소중하게 받아 안으시며 “아이구, 우리 애기 왔네.” 하시며 반갑고 눈물겹게 맞아 주시던 늙은 시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일이 있어 늦게 집에 오니 열이 펄펄 끓는 축 늘어진 아이를 등에 업고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 언제 오느냐며 우는 아이를 달래다 같이 울면서 나를 기다리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지금까지도 손자만 보면 꽃보다 더 보기가 좋다며 주름진 얼굴에 미소부터 떠오르는 손자바라기 시어머니. 가끔 어머니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도 아이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시는 마음을 생각하며 애써 서운함을 지워버리곤 한다.
엄마가 되면서 나의 삶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지와 동네 사람들의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어찌 우리 승겸이 뿐만이겠는가,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면 주변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며 세상을 바꿔놓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걸 승겸이를 키우며 배우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아이와 함께 다니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손주로 여긴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엔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었다. 생각없이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단정하는 사람들이 경솔하게 느껴지고 어린 승겸이가 엄마를 왜 사람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나 의아해할 때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더 마음이 불편했던 일은 내가 엄마라고 밝히면 대부분 놀라면서 그 나이에 아이를 낳은 대단한 여자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도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아 학교를 옮기거나 해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시작하게 되면 아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힌다. 그러면 또 불편한 반응이 나온다. ‘참 훌륭한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입양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훌륭한 일도 아니다. 내가 내 필요에 의해 선택한 삶의 한 방식일 뿐인데도 훌륭한 일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원래도 낯을 많이 가리고 앞에 나서는 걸 꺼리는 성격이었던 내가 입양을 하면서 유별난 사람으로 혹은 대단한 일이라도 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게 영 속이 불편했던 것이다.
처음 승겸이와 길에서 뽀뽀하던 날이 생각난다. 퇴근 후 유치원에 늦게까지 남아있던 아이를 데리고 나와 손을 잡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승겸이가 뽀뽀를 하자며 입술을 내밀었다. 집이나 차에서는 수시로 아이와 입을 맞추지만 길에서 뽀뽀를 한다는 건 생각을 안 해본 일이어서 잠시 당황이 되었다. 그날 그것도 용기라고 아이와 사람들이 보는 길에서 처음 뽀뽀를 하면서 나는 한 걸음쯤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직도 사람들이 있는 데서 승겸이가 내 얼굴에 입을 맞추면 여전히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이지만 그 마음을 누르고 일부러 더 진한 뽀뽀를 해준다. 어쨌든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통해 나는 한 발짝씩 아이와 함께 성장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엄마가 되면서 결심한 것은 다른 것은 못 해줘도 아이에게 사랑만큼은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 기르리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내가 자신 있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금세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랑에 빠지게 하는 눈부시고 사랑스런 존재였다. 그리고 내가 준 사랑보다 더 크고 벅찬 사랑을 매일 매일 늙은 어미에게 쏟아 부어 주는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고 피곤한 날이나 화가 나 있을 때면 승겸이는 내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묻는다. “엄마, 힘들어?” “엄마, 화났어?” 하면서 내 목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고 얼굴에 뽀뽀를 퍼붓는다. 좀 더 어릴 땐 자기를 따라 해보라며 입꼬리를 하해탈 같이 올리고 내가 웃을 때까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싸운 사람들처럼 말없이 밥을 먹던 식탁에 생기가 돌고, 가끔 개 짖는 소리나 들리던 조용한 마을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 낭창한 아이의 목소리로 동네에 활기가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마른 막대기처럼 뻣뻣하고 무뚝뚝하던 나란 사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를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자연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줄도 아는 말랑말랑한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하나님은 어쩌자고 나에게 이처럼 큰 선물을 주셨단 말인가. 이런 걸 바로 기적이라고 하는 거구나.’ 승겸이를 볼 때마다 하게 되는 생각이다.
글 원미연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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