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없다' 이시백 "까막눈 조부가 줄줄 외던 이야기의 즐거움 만나고 싶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1. 1. 2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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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대한 건 고민하지 않고 단숨에 읽고 행복해 하는 것이었어요. 작정하고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지요. 주제나 정신이 그렇더라도 이야기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싶었어요.”

3대에 걸친 민초들의 이야기를 ‘환상적 리얼리즘’ 방식으로 풀어낸 장편 ‘용은 없다’(삶창)를 최근 펴낸 소설가 이시백은 ‘이야기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읽는 즐거움’을 극대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이야기’라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요. 요즘 많은 작가가 나왔지만, 이야기가 사라졌다는 말이 많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이야기책을 많이 읽어줬는데, 그런 이야기책의 어떤 즐거움을 우리 소설에서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소설은 산업화를 배경으로 부모 세대와 몽룡-아지 부부, 그들의 자식인 금룡과 은룡, 말희 등 용꿈을 꾸지만 결국 좌절하는 3대 민초들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그물을 걷으러 강에 나간 틈에 잠깐 눈을 붙였던 몽룡이 하늘에서 떨어진 미꾸라지 대열을 쫓다가 퍼붓는 비를 만나 산막으로 피했다가 선머슴 같은 아지를 만난다. “피차 허전한 처지”였던 아지와 몽룡은 함께 살을 섞으며 아들 금룡과 은룡, 딸 말희를 차례로 낳는다.

힘이 장사였던 몽룡은 도박에 미쳐 시간과 재산을 모두 탕진한 뒤 장맛비에 용을 타려다가 사라진다. “하나를 버려야 살 것”이라는 시주승의 말에 따라 굶어 죽은 은룡은 입을 다문 채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노래를 잘 부르던 말희 역시 제 몸의 피를 다주고 떠난다. 뼈가 부러져도 아픈 것을 모르는 첫째 금룡도 부러진 놋숟가락을 주머니에 꽂고 평생 허황된 용꿈만 꾸다가 땅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살아온 아지의 곁에 남은 것은 있으나마나 한 자식과 실을 꿰기 힘들 정도로 닳아버린 바늘뿐이었다. 그녀는 시커멓게 입을 벌린 밤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너희는 어디로 갔느냐. 네가 찾으려던 보물과 네가 듣지 못한 아름다운 노래와,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들려다오. 너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306쪽)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비루하고, 비겁하며, 거짓말도 밥 먹듯이 잘하고, 이(利)에 매우 민감하다. 시대의 흐름에 크게 흔들리면서도 강인하고, 하나의 꿈을 품고 있으며, 노래를 잘 부르고, 슬픔에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희극이 아닌 서늘한 비극이다.

“사람들은 용이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하늘에서 떨어진 미꾸라지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들에겐 이미 기어 올라갈 하늘이 없었다…하늘이 사라지자 용도 사라졌다. 있다 해도 올라갈 하늘이 없어졌기 때문이다.”(342쪽)

‘읽는 즐거움’ 측면에선 꽤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종횡으로 질주해 ‘제1호 독자’ 가운데 하나인 기자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낙오 없이 끌고 갔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읽는 내내 쉼 없이 웃음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시인 유용주 역시 ‘추천사’에서 “아프면서 웃긴다. 나는 함부로 자주 웃었다...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어찌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돌이 된 소금 땀과 흙으로 이루어진 소금 글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자고로 이야기는 힘이 세다. 밤을 꼬박 새운다”고 말했다.

특히 실제 문헌은 물론 가상의 문헌까지 동원하고 다양한 현대사 사건과 에피소드를 해학적으로 교직해 이야기를 극단으로 끌고가 ‘마술적 또는 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작품이나 마르께스(Gabriel Garcia Márquez)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다시 읽는 느낌이었다.
‘용코로 걸렸다’거나 ‘오리발을 내민다’ 등 많은 표현을 해학적으로 설명한 대목이나 ‘낙장불입’을 전국두뇌스포츠협회에서 제정한 규정이라고 한 대목, ‘롬드발디 인명사전’, 천변족과 고산족 이야기, 빈 술병에서 들리는 청년의 한숨 소리, ‘고도의 법칙’ 등의 설명에선 너무나 신박해 포복절도할 지도.

농익은 사투리와 토속적인 언어가 풍성한 농촌소설을 선봬 ‘제2의 이문구’라고 불린 이 작가를 지난 22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자식마저 묻어야 하는, 배부름이나 풍요에 의해 희생된 가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서 이번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의 모티브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대국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데 ‘어떻게 자살률은 OECD 1위인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생명을 끊는가’ 하는 모순에서 출발했어요. 소설 속 아지가 묻어야 했던 자식에 대한 가치, 이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자식마저 묻어야 하는, 배부름이나 풍요에 의해 희생된 가치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서 쓰게 됐지요. 이전에는 이데올로기라든가 사회 부조리 등에 집착했는데, 그런 것은 성숙 사회로 접어들면서 해결됐어요. 가장 지난한 싸움은 돈과의 싸움입니다. 저 자신도 그렇지만, 돈과 욕망에 매몰돼 있는 비극적 참상들을 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어려운 싸움이 시작됐지요.”

―소설에선 몽룡과 아지, 금룡과 은룡, 애꾸왕과 거울왕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데.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하기 위해 명시는 안했지만, 여주를 배경으로 강가에서 고기를 잡아 사는 어부가 1대이고, 용꿈을 꿔서 태어난 아기가 2대 몽룡입니다. 몽룡이 술치기 딸 아지를 만나 금룡과 은룡, 딸 말희를 얻는데, 이들 3남매 이야기가 핵심이지요. ‘애꾸왕’은 경제 중심주의의 왜곡된 지도자를, ‘거울왕’은 자아도취에 빠진 지도자를 각각 상징하고요.”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에 매달려 얻은 것도 적지 않겠지만, 잃어버린 가치를 우화적으로 다뤄보려 했어요. 땅굴에 들어간 자식을 찾으러 간 아지가 현실을 깨닫고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자식을 묻어야 했던 회한이 나오는데, 물질적 풍요를 위해, 돈을 위해 희생했던 가치 등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즐거움은 상상력에 있고 독자의 몫이라고 보기 때문에 1960, 70년대 사건을 에피소드로 사용했지만, 적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다분히 신화적이고 상징적이지만 배경과 맥락은 현실적인 에피소드, 사건을 담아냈어요.”

―이야기를 정말 극단까지 끌고 갔는데.

“제가 이번에 가장 기대한 것은 고민하지 않고 단숨에 읽는 것이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보르헤스적 기법으로, 인문학적 교양이나 주석을 이용해 환상적인 이야기에 개연성을 뒷받침하려 했어요. 주석을 보면 실제 있는 책도 있지만 없는 책도 적지 않아요. 현실과 환상, 꾸며진 이야기와 현실을 막 뒤섞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싶었죠. 혼란스럽고, ‘이야기가 진짜입니까’ 하는 질문 자체를 무력화하고 싶었지요. 소설은 역사가 아닙니다. 혼란스럽고, 환상적인 느낌을 강화하려고 의도적으로 했지요.”

―‘작가의 말’에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뒤 ‘천일야화의 첫 이야기’라고 했는데(그는 민초들의 현대사를 담되 이야기 가락으로 그리고 싶었다며 “역사나 학문이 아니라, 까막눈인 조부가 줄줄 외던 그 이야기의 즐거움을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6, 7세 때이던 1960년대 초 시골에 내려가면 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주무셨는데, 혼자 자면 춥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같이 자라고 해서 가면, 할아버지는 ‘유충렬전’을 읽으셨어요. 최근에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까막눈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할아버지는 그걸 외우셨던 것이죠.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어요. 소설의 모체는 문자 이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이 원형이 아니겠느냐, 글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매료시킨 이야기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한 걸 이번 작품에서 처음 시도한 것입니다.”

1956년 여주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을 졸업하고 1988년 ‘동양문학’ 소설부문에 소설 ‘재회’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언제 어떻게 문학에 ‘필’을 받은 것인가.

“어려서부터 원래 꿈은 화가였는데, 준비가 덜돼 있었어요. 중·고등학생 때 말썽을 많이 부린 친구와 가까이 지내 반성문을 많이 썼는데, 선생님에게 반성문을 잘 썼다고 칭찬을 받았어요. 달리 칭찬받은 기억이 없고요. ‘글을 쓰는 재주가 있구나’라고 생각해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가게 됐어요.(반성문을 왜 쓴 건가) 그때에는 개구쟁이였는데, 빵집에서 여학생을 만났다고 혼났습니다(웃음).”

그는 등단 이후 장편 ‘종을 훔치다’(2010), ‘사자클럽 잔혹사’(2013), ‘나는 꽃도둑이다’(2013)를, 소설집으로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 ‘갈보 콩’(2010) 등을 펴냈다. ‘종을 훔치다’는 교육소설, ‘사자클럽 잔혹사’는 1970년대 개인 성장 소설이고, ‘나는 꽃도둑이다’의 경우 청계천을 중심으로 도시 노점상을 다룬 작품이었다. ‘누가 말을 죽였을까’와 ‘갈보콩’ 등은 농촌소설. 권정생창작기금(제1회), 아르코 창작기금(2012), 거창평화인권문학상(2014), 제11회 채만식 문학상(2014)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 나온 단편 소리소설 ‘전태일전’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사실은 임진택 선생이 먼저 전태일 작업을 제안했어요. ‘자네 소설 속에 가락이 있다, 사설에도 엮음사설도 있고, 자네가 전태일전을 소설 작업을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제안해 작업을 했지요.”

―소리 등을 배운 것인가.

“저는 소리를 공부한 적이 없어요. 아마 제 몸에 무의식적으로 내재돼 있다면, 그건 할아버지가 이야기했던 독특한 가락이 어린 시절부터 제 내면에 배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제 친구 가운데 여수나 순천 등 남도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몸에는 본래적으로 어떤 가락이 있더라고요. 문학적으로 복 받은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문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문구 선생 때문이었어요. 모자라지만, 이 선생의 문체를 바탕으로 몇 권의 농촌소설을 썼지요. ‘제2의 이문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선생의 문체적 요소를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아 만족합니다. 농촌소설에서 토속어와 구어체를 적극적으로 썼는데, 남도적 정서가 있는 사람은 이런 문체에 쉽게 접근하지만, 고등학생들은 ‘제2외국어’라며 어려워하더군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저는 보수적으로 ‘소설은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문자 이전에 노래나 가락 속에 있다, 그것이 우리 정서를 이끌어낸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설화나 민담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려고 해요. 만연하고 유려한 문체를 보여준 이 선생도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판소리 가락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직에 몸담았다가 남양주 수동 광대울로 귀농했는데.

“구리와 남양주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어요. 전교조 활동을 조금 했지만, 해직 동료 교사에 대한 채무감이 있어서 한 것으로, 운동성은 없고 낭만적이고 허무주의적 경향이 있었어요. 1995년 남양주 광대울로 귀농했지요. 주경야독에 매료돼 들어왔는데, 주경은 흉내 냈지만 야독은 불가능하더라고요. 저녁상을 받으면 그냥 졸렸어요(웃음).”

―몽골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하더라.

“2005년 시인인 김진경 선배를 따라 몽골에 갔다가 매료돼 무려 스물다섯 번이나 드나들게 됐지요. 산문을 2권이나 펴냈고요. 유목문화의 매력은 결핍이라고 봅니다. 유목 문화에는 없는 것이 많은데, 돈, 창고, 시장이 없어요. (‘몽골 바이러스’의 숙주로 불리던데) 한 번 몽골에 빠지면 헤어지지 못하는 병을 ‘몽골 바이러스’라고 하는데, 제가 주변 사람들을 꼬드겨서 많이 드나드니까 그렇게 표현했어요.”

―‘이야기 보부상’을 표방했는데.

“제가 유목문화에 빠져 있는데, 유목민은 보통 양을 길러 먹고 살지만 그렇지 않는 이들도 있어요. 이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두 줄짜리 악기를 가지고 떠돌아다니며 유목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고기를 얻어먹고 삽니다. 몽골 시인의 어머니이죠. 더 위로 올라가면 샤먼 같은 존재가 있겠지요. ‘초원을 떠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보부상이 소설의 원형 아닌가, 우리 장터나 마을마다 돌아다니는 소리꾼이나 약장사의 이야기적 요소를 우리 소설이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그것을 복원하려는 취지로 이야기 보부상을 표방했지요.(생각해보니 옛날 약장수들은 약을 팔기 전에 공연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제가 조금 공부를 해보니, 소설은 시장에서 생겼더라고요. 서양에서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장르가 소설이었어요. 장터, 시장이라는 공간이 소설의 태생적인 공간이죠.”
―글 쓸 때 습관이나 징크스 같은 게 있는지.

“제가 참여했던 ‘리얼리스트 100’ 동인 가운데에는 르포 작가들이 많았어요. 현실을 취재하고 기록하고 자료들을 풍성하게 해왔죠. 저는 현실적 자료보다는 인물에 집착합니다. 인물을 굴리고 다니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제게 들어오고 순간이 있는데, 막연한 이름의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이 제 몸에 들어오면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작업하기 쉬워요. 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채록하기만 하면 되지요. 인물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정지영 감독과 영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초기에 같이 했는데, 사모펀드 사람들의 캐릭터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상당히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인물의 첫 대사가 있는데, 대사가 하나 툭 튀어나오면 그것으로부터 서사가 굴러갑니다.”

―앞으로 10년 후의 모습, 어떨 것 같은가.

“저는 독자들이 많은 건 아니지만, 늘 쓸거리가 많아 스스로 행복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2개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앞으로 설화나 민담 작업을 하려고 해요. 기법상으론 환상적, 마술적 리얼리즘적 요소를 상당한 기간 작업하려고 합니다.(황석영 선생도 최고의 소설 양식으로 설화 민담을 꼽기도 했다) 제가 황 선배의 초기 작품을 매우 좋아했어요. 우리 문단에 불만스러운 건 원로가 되면 안주하고 대학 교수로 가면 조로하고 절필하는 것인데, 황 선생은 여전히 그 나이에도 현역으로 쓴다는 점에서 존경스럽습니다.”

혹시 빠진 이야기가 있는가라고 묻자, 그는 한국 문학이나 문단, 출판사와 유통업계 등에 대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한국 문학이 거대한 이야기의 숲으로, 세계문학의 대해로 나아가자는 취지였다. 그의 볼과 산발한 머리는 바야흐로 천일야화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한 한국문학의 증인으로 더욱 불콰해지고 부풀어오르는데.

“소설이 최근 많이 위축됐는데, 한 가지 반가운 것은 등단이라는 제도를 굳이 거치지 않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다만 그쪽으로 너무 고착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다양한 세대와 생각들이 갖춰주고 담보되면 좋겠어요. 작가들이 저마다의 생각이나 경향을 자유롭게 쓰고 책을 낼 수 있도록 출판계와 독자들이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도 자기 색깔과 정체성을 가지고 가야 하고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 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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