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수리족의 양대 파벌 '이글파'와 '벌처파' 집중해부
시체 먹고 사는 '벌처'..환경지킴이에 '신의 메신저' 추앙도
우리나라 겨울철새 독수리는 '이글'이 아닌 '벌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취임했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수도 워싱턴 접근이 엄격히 제한된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로 경비가 삼엄해지면서 행사는 이전 취임식보다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임식장 곳곳은 이 새들의 그림 천지였습니다. 미국의 나라새 흰머리수리입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사를 한 연단에도, 백악관 테라스에도, 식장 주변을 뒤덮은 공식 현수막에도 날개와 발을 활짝 편 흰머리수리들의 문양이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흰머리수리는 미국의 나라새입니다. 1782년 공식적인 국가 상징으로 지정된 이래 대통령과 정부 각 기관 문양에 모습을 드러내왔습니다. 인간이 수리 무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흔히 맹금류라고 하면 수리·매·부엉이 등을 일컫습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수리류는 맹금류 중의 맹금류라고 할 수 있죠. 인간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약한 동물에겐 공포의 대상인 수리는 크게 양대 파벌로 나뉩니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에서 뉴욕의 뒷골목을 ‘샤크파’와 ‘제트파’가 양분하는 것처럼 이글(eagle)파와 벌처(vulture)파가 꽉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리’라고 부르는 새들의 영어 이름이 대개 ‘이글’ 아니면 ‘벌처’로 끝나는 까닭입니다.
◇눈매가 이글거리는 이글파
흰머리수리의 영어 이름은 ‘bald eagle’입니다. 머리와 목 주변의 흰 털이 미국인들에게는 민숭민숭한 민머리(bald)로 보인 모양입니다. 이글들은 끝이 날카롭게 벼려진 갈고리 같은 발톱, 무엇이든 씹어 끊을 듯한 단단한 부리에 공중 비행에 급강하 능력까지 갖춘 살아있는 살상 병기입니다.
작은 설치류, 물고기, 물새와 뱀, 개구리 등을 잡아먹는데, 덩치와 먹잇감 크기는 대체로 비례합니다. 이글 중에서도 대형종인 필리핀수리나 부채머리수리는 원숭이·나무늘보·사슴·염소까지도 손쉽게 사냥합니다. 이들이 잡아온 짐승을 북북 찢어 뼈나 너덜거리는 근육 채로 새끼들에게 꾸역꾸역 먹이는 모습에선 헌신적인 자식사랑과 야수의 섬뜩한 본능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생뚱맞은 아재개그같지만, 이글파들의 눈빛은 정말 이글거릴 듯 타오릅니다. 이런 강인한 인상 때문에 이글들은 무기나 스포츠팀 마스코트로 즐겨 애용됩니다. 한국 해군의 고속정 참수리호, 대전과 충청도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글파의 또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암컷이 수컷보다 덩치가 큽니다. 조류 전문가인 경희대 생물학과 유정칠 교수는 이를 “역 성적 크기 이형성(reverse sexual size dimorphism)”이라고 설명합니다. 보통 수컷이 암컷보다 더 크지만 정반대인 것은 성별 역할과 관련 있다는 설명입니다. 암컷은 보통 둥지에서 새끼들을 돌보고 수컷은 사냥해서 가족을 먹이는데, 이 역할에 최적화됐다는 것이죠. 수컷은 암컷보다 몸집이 작은만큼 더 날렵해서 먹이를 잘 잡아 가족 부양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암수 모두가 알을 품지만 암컷이 더 오랫동안 둥지에서 머물기 때문에 덩치가 더 큰 암컷의 포란이 새끼를 부화시키는데 더 효과적이고 둥지로 접근하는 포식자들을 막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이글들은 힘에서도 다른 맹금류보다 압도적입니다. 검독수리는 자기 몸무게의 열배 넘는 먹잇감까지 거뜬히 사냥할 수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육식동물인 여우와 늑대까지 사냥할 정도입니다. 이곳의 유목민들은 이런 점을 활용해 오랫동안 검독수리를 사냥꾼으로 훈련해 활용시켰습니다. 어린 새끼를 둥지에서 ‘납치’한 뒤 10여년정도 키우면서 사냥을 시키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줍니다. 검독수리를 포함해 우리나라에서는 흰꼬리수리·참수리·독수리 등 4종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가장 용감무쌍하고 위풍당당할 것 같은 ‘독수리’는 이글파 소속이 아니고 다음에 얘기할 ‘벌처파’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어둠속 우수어린 눈빛의 벌처파
벌처(vulture)는 이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 무딘 발톱, 다소 퀭하지만 우수어린 눈빛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의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죽거나 죽어가는 것들을 찾아 공중을 비행합니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뼈와 힘줄, 살점을 뜯어먹도록 진화하다보니 이글처럼 살상무기 수준의 발톱과 부리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그 대신 기생충과 병원균이 우글거리는 썩은 고기속으로 머리를 파묻을 일들이 많으니 하나같이 밍숭밍숭한 민머리거나 짧다란 머리털을 하고 있습니다.
벌처 중 유명한 것은 사자나 하이에나 등이 먹고 남긴 초식동물 사체를 처리하는 청소부로 유명한 아프리카의 대머리수리들입니다. 위풍당당한 풍채와 날갯짓에 어울리지 않는 수줍고 온순한 성격으로 알려진 남아메리카대륙의 대형 맹금류 콘도르도 벌처파의 일원입니다. 시체를 뜯어먹는 습성에 때문에 같은 수리임에도 불구하고 벌처에 대한 이미지는 대개 부정적입니다. 부실기업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을 ‘벌처펀드’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벌처는 1993년 악명을 떨쳤습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굶주려 쓰러진 어린아이를 멀찌감치 지켜보는 대머리수리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세계를 경악시킨 것입니다. 이 사진은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아이를 구하는 것보다 특종이 중요했느냐”는 도덕적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사진가는 이듬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디즈니 만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서도 악독한 마귀할멈의 반려새로 대머리수리 두 마리가 등장합니다. 이처럼 나쁜 새들로 그려지지만, 벌처들은 지구 환경을 지켜주는 소중한 지킴이입니다. 벌처들이 앞장서 시체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지구촌은 각종 기생충들이 일으킨 감염병으로 몸살을 앓았을테니까요.
한편으로 벌처들은 죽은 자의 육체를 처분하는 습성 덕에 신성한 존재로 떠받들어지기도 합니다. 조장(鳥葬) 풍습이 남아있는 티베트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대머리수리들이 죽은 자의 시신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메신저로 여겨집니다. 고대 잉카 문명에서도 콘도르는 신성한 정령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일부 벌처파들은 독특한 습성도 보입니다. 이집트 대머리수리는 딱딱한 타조알에 돌을 부딪쳐 깨뜨려먹을줄 아는 지능적 식사법을 자랑합니다. 야자대머리수리는 맹금류라는 말이 무색하게 야자나무 열매를 주식으로 삼는 ‘비건 맹금류’입니다. 이맘때쯤이면 겨울철 들녘 무리지어 까맣게 내려앉는 천연기념물 독수리의 영어 이름은 ‘유라시안 벌처(vulture)’입니다. 앞글자 독(禿)이 대머리라는 뜻입니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지닌 맹금류의 제왕을 통칭할 때 쓰는 말은 ‘독수리’가 아닌 ‘수리’라고 하는게 옳은 까닭입니다.
◇외롭고 매혹적인 또 하나의 수리들
모든 수리들이 ‘벌처(콘도르)’나 ‘이글’은 아닙니다.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 고독한 존재감이 때문에 더 매혹적인 소수의 ‘이글도 벌처도 아닌 수리’가 있습니다. 우선 물수리(osprey)가 있습니다.
여느 수리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과 짧은 부리, 초롱초롱한 눈매 때문에 수리와 매를 반반 섞어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물수리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물고기 사냥의 귀재입니다. 나뭇가지에서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응시하다 발톱을 쭉 뻗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큼지막한 물고기들을 나꿔챕니다. 이들의 사냥장면을 보면 미군이 운용하는 수직이착륙기 이름에 왜 이 새의 이름을 갖다붙였는지 납득이 됩니다.
그런가하면, 신비한 동물 사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 생김새의 수리도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서식하는 뱀잡이수리입니다. 황새나 두루미가 저리갈만한 쭉 뻗은 긴 다리에, 왕관같은 머리깃털과 창처럼 쭉 뻗은 꼬리깃털을 달고, 길다란 속눈썹까지 가진 이 기이한 새를 생물학자들이 ‘수리’로 분류할지를 두고 공방이 일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몸구조가 다른 수리들과 확연히 다르거든요. 머리 부분이 마치 비서가 펜대를 귀에 꽂은 것 같다고 해서 영어 이름도 비서새(secretary bird)입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무시무시한 발길질로 악명높습니다. 이름대로 주식은 뱀인데, 어린 아이 키를 훌쩍 넘는 높다란 발에 체중을 실어 뱀을 밟아뭉갠 뒤 국수가락 넘기듯 꿀떡꿀떡 삼켜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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