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합의=인간적 용서?"..성범죄 피해자 합의의 딜레마

고동명 기자 2021. 1. 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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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형사사건 선고에서 볼 수 있는 재판부의 양형 사유다.

처벌불원이란 양형 기준에서 특별감경인자로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합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피해자에게 상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항소심에서도 1심 재판부가 합의한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 처벌의사를 재확인하고 양형의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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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교수 제자 강간 사건, 피해자 합의 쟁점 눈길
"합의한 피해자 법정 진술은 재판부 권한"..피고인 상고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내부 모습.2020.2.18/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죄질이 무겁지만 피해자와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

종종 형사사건 선고에서 볼 수 있는 재판부의 양형 사유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합의가 처벌을 다소 완화하거나 항소심에서 감형 사유로 작용하는 판례는 적지않다.

그렇다면 형사사건, 특히 성범죄 사건의 경우 합의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않는다는 합의의 진정성은 어떻게 판단할까?

금전적 합의를 이유로 처벌을 완화하면 돈으로 형량을 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재판부가 합의를 등한시한다면 피고인도 굳이 합의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피해자는 최소한의 물질적 보상을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합의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합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처벌불원이란 양형 기준에서 특별감경인자로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합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피해자에게 상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가 처벌불원의 법적·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여야 한다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 이례적으로 합의한 피해자 처벌 의사 재확인

최근 성범죄 피해자와의 합의 문제를 곱씹을만한 판결이 제주에서 나와 눈길을 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자를 유사강간한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제주대학교 교수 A씨(62)가 최근 대법원에 상고했다.

© News1 DB

해당 사건이 발생한 날은 지난해 10월30일 저녁이다. A씨는 한 노래주점에서 200회 이상 거부 의사를 표현한 제자를 유사강간한 혐의다.

A씨는 1심 재판 이전에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주고 처벌을 원치않는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 상황이었다.

A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첫 공판에 출석했지만 공소사실을 본 재판부는 죄질이 나쁘다며 직권으로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례적으로 피고인과 합의한 피해자를 법정 증인으로 불러 합의가 진심이었는지를 물었다.

피해자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합의금을 받았지만 진심으로 피고인을 용서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A씨측은 반발했다. 합의를 마친 피해자를 굳이 법정에 불러 피해상황을 진술받고 처벌 의사를 재확인한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A씨측은 재판부가 망신주기 재판을 하고 있다며 이 사건이 구속할만한 사건이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지난해 9월17일 이 사건 선고기일에서 1심 재판부는 "합의 여부는 적절한 양형을 위한 중요한 요소지만 합의가 형을 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의 변호인이 협의를 거쳐 합의했고 대학생인 피해자가 처벌불원의 법적·사회적 의미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인다"며 양측의 합의를 인정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법정에서 한 진술은 금전배상을 받고 법적인 의미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긴 했지만 인간적인 용서까지 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받아들인다"고 판단했다.

1심 형량은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이었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A씨는 항소심에서도 1심 재판부가 합의한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 처벌의사를 재확인하고 양형의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2심 재판부는 "원심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처벌의사를 명확히 확인하는 것은 양형 판단을 위한 고유의 권한"이라고 반박했다.

합의한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 불리한 재판을 받았다는 피고인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나마 합의가 인정돼 더 무거운 양형을 피할 수 있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원심은 피해자와의 합의를 인정하고 이를 고려해서 판결한 것으로 합리적인 재량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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