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층 마천루에서 50층 트리플타워로?.. 현대차의 GBC 설계변경 득실은
"105층짜리 마천루가 될까, 50층짜리 트리플 타워가 될까."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지을 예정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설계 변경 가능성을 두고 업계와 학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초고층 빌딩을 짓는 것이 ‘상징성’과 ‘신기술 적용’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보니 결정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2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짓기로 한 GBC 설계를 50층짜리 3개동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현대차그룹의 GBC 설계 원안은 높이 569m·105층 1개동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GBC 설계를 두고 건설업계와 학계에서는 고도화한 최첨단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는 ‘초고층 빌딩’으로 짓는 게 더 적합하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투자비용과 단기 수익성 등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면 ‘트리플 타워’가 낫다는 평가도 있다.
◇ "실용성은 50층 트리플 타워"
현대차그룹이 마천루 건설 계획 변경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세계 경제 불안과 투자 대비 수익성 등 경제적 판단이 있다. 당초 GBC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건축비는 3조7000억원으로 예상됐다. 건설업계에서는 설계를 변경하면 공사비를 약 1조5000억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70층 이상 건물은 일반 건물보다 건축비가 30% 이상 더 든다. 100층 이상은 비용이 더 추가된다. 빌딩이 높을수록 하부 구조를 튼튼히 하는 보강 작업 등 때문에 부담이 급증하고, 바람의 하중을 최소화하기 위한 특수 설계도 필요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발주처 입장에서 초고층 빌딩은 돈은 돈대로 들어가지만 실익은 크지 않다"면서 "통상 100층짜리 하나를 짓는 비용이 50층짜리 2~3개 짓는 비용보다 많이 든다"고 했다. 그는 "쉬운 예로 초고층은 안전성을 위해 기둥을 최대한 두껍게 해야 한다"면서 "기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드는데 시설 운영비는 훨씬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앞서 롯데그룹이 서울 송파구에 555.6m 높이의 123층 규모로 지은 국내 최고층 건물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4조2000억원이 투입됐다. 이 중 건축비는 약 3조8000억원에 달한다. 2010년 11월 착공해 2017년 2월 9일 서울시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기까지 만 6년3개월이 소요됐다.1987년 사업지가 선정된 것을 감안하면 완공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다.
◇ "기술력 과시하려면 105층 초고층건물"
물론 초고층 빌딩을 짓는 경우 장점도 여럿 있다. 먼저 105층 초고층 건물을 세우면 서울 한복판에 랜드마크 건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건설 입장에서는 시공사의 기술력이 우월하다는 점을 자랑할 수도 있다.
이명식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장(동국대 건축공학부 교수)은 "공사비 대비 공간의 효율성 및 유지관리 측면에서 보면 ‘초고층 싱글 타워(1개동)’가 ‘50층 이하 트리플타워(3개동)’에 비해 비용이 더 들 수는 있다"면서 "다만 현대차그룹이 단일 건물에 모든 조직을 배치했을 때와 3개동으로 분리했을 경우 조직의 소통과 업무 효율성 등이 또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기술 측면에서도 초고층 빌딩이 장점을 가졌다고 했다. 이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최첨단 기술을 도시에 가장 먼저 적용할 수 있는 게 초고층 건물"이라며 "세계 여러나라에서 초고층 건물을 짓는 것은 단순히 ‘높이’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어 "초고층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공간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공사비와 에너지를 절감하고 유지 관리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적용하게 된다"면서 "건축적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첨단적인 기술과 디자인, 아이디어로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초고층 싱글타워"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롯데월드타워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건축물을 조국에 남기겠다"는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뜻을 실현했고, 초고층빌딩 건설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알리면서 해외 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있다. 반면 부채와 공실로 인한 적자 등 수익성을 놓고보면 아직 실속을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각종 규제가 제동… 창의적인 트리플타워도 랜드마크될 수 있어"
각종 제도가 GBC 원안 추진력에 제동을 걸었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는 △전투 비행 방해 △집값 상승 우려 등의 이유로 현대차의 GBC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어왔다.
국방부는 GBC가 260m 이상 높이로 신축될 경우 군 레이더가 일부 차단돼 표적을 제대로 탐지하지 못한다며 레이더 설치와 관리 비용을 현대차가 부담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여기에 법규 상 ‘초고층 건물’의 기준은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건축물이다. 초고층 건축물을 신축할 경우 각종 법규의 제한을 받다보니 사업 기간이 지체되고 그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떠안게 되는 부담이 워낙 크니 국내에서는 시도를 49층까지만 하는 것"이라며 "규제가 건설업계의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떨어뜨린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49층짜리 3개동으로 지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지역 경제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GBC 원안 유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강남구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건설업계를 비롯한 재계에서는 랜드마크 효과를 위해 마천루를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해외 유명 호텔과 빌딩 건립 공사를 진행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축 및 도시공학적 관점에서 랜드마크는 높이가 아니라 건축물의 차별화한 디자인과 첨단 기술화, 도시사회와의 상호작용 등이 성패를 가르는 시대"라고 했다.
이명식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장도 "초고층빌딩과 트리플타워의 장·단점은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름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면서 "트리플타워로 짓는다면 주목받을 수 있는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상징성을 키워야 하는 숙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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