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비닐하우스 법당 스님을 만났습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1. 1.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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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 비닐하우스 법당엔 연등이 50개쯤 걸려 있다. /김한수 기자

“아이고, 보여드릴 것도 없는데 여기까지...”

지난 12일 오후 경남 산청의 한 야산 기슭, 한 중년 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입주한 지 보름쯤 됐다는 새 집 뒤 언덕에 큰 비닐하우스가 보였습니다. 도정(52) 스님이 6년간 부처님 모시고 산 비닐하우스 법당이었습니다. 법당 이름은 ‘행복한 우리 절’. 내부엔 연등이 50~60개쯤 걸려 있었습니다. 제가 산청으로 도정 스님을 만나러 간 첫번째 동기는 비닐하우스 법당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비닐하우스 법당?

도정 스님은 최근 ‘향수해’(담앤북스)란 책을 펴냈습니다. ‘향수해(香水海)’는 화엄경에 나오는 표현으로 ‘연꽃 피는 향기로운 바다’란 뜻이랍니다. 불교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에 3년간 연재한 내용을 묶어서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불교신문에 연재하던 때부터 그의 글 속에 ‘비닐하우스 법당’이란 표현이 더러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비닐하우스 법당이 뭐지?’ 궁금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비닐하우스 법당이라니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책이 나왔기에 펼쳤더니 역시 곳곳에 ‘비닐하우스 법당’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스님께 전화를 걸어 “비닐하우스 법당이 아직 있나요?” 물었더니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산청을 찾았던 것입니다.

도정 스님이 6년간 살아온 경남 산청 비닐하우스 법당 '행복한 우리 절'. /김한수 기자

비닐하우스 법당은 문자 그대로 비닐하우스에 부처님(불상)을 모신 곳이었습니다. 20평쯤 돼 보이는 비닐하우스 북쪽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가운데는 화목 난로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여기서 6년째 부처님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 작년말에 주변의 뜻있는 분들이 도와주어서 법당 아래에 새 집을 지었다고 했고요. 처음 이곳으로 찾아온 이유는 ‘머물 데가 마땅치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경북 울진 출신인 스님은 경남 하동 쌍계사로 출가해 10년 정도 한 암자에 살았는데 거기서 나오게 되면서 산청에 비닐하우스를 쳤다고 합니다. 연등이 50~60개란 것은 1년 고정 수입이 250만~300만원 정도란 뜻입니다. 보통 불자(佛子)들은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 절에 연등 다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등 1개에 5만원씩 잡으면 250만~300만원이란 숫자가 나오지요. 물론 그 외에 때때로 시주하는 불자들도 있지요. 그런 덕에 스님은 근근이 아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앞엔 늠름하게 생긴 풍산개 두 마리가 스님을 보고 격하게 꼬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각각 이름이 ‘행복’과 ‘우리’라 했습니다.

경남 산청에서 비닐하우스 짓고 6년간 부처님을 모신 도정 스님. 난초 화분은 스님의 중앙승가대 학보사 동문들이 책 출간을 축하하며 보내온 것이다. /김한수 기자

◇커피 생두를 볶아서 내려주는 스님

새로 지은 집에서 신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산청까지 찾아간 이유가 비닐하우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비닐하우스에서 길어올린 스님의 에세이가 진솔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직접 프라이팬에 커피콩을 볶아 그라인더로 갈아서 커피를 내려줬습니다. ‘볶은콩은 비싸서’ 생두를 직접 볶아 먹는다고 했습니다. 책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경전 구절, 오른쪽 페이지엔 구절과 어울리는 일상을 적은 스님 에세이입니다. 그러나 길어야 200자 원고지 석 장 분량의 에세이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등단 시인답게 각각이 한 편의 시 같습니다.

가령, ‘무릇 선법(善法)을 행함에는 반드시 선한 과보가 있나니 맑고 깨끗한 행을 하면 반드시 깨끗한 과보가 있으리라’는 ‘불설장아함경’ 구절의 맞은편 페이지에는 ‘복을 빌어주는 아이’란 글이 실려 있지요. 할머니 따라 온 절에서 불상마다 찾아다니며 “부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비는 어린 소녀 이야기입니다. 스님은 “대부분 사람들이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졸라대는데, 그 아이는 부처님께 복을 빌어드리더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 꼬마에게 감동해 그는 법회 때 ‘남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인심이 금심’이란 글에서는 ‘금리 마을 이장님 부부’ 사연을 소개합니다. 평생 건설 현장을 다닌 이장님은 환갑이 지나자 아내 챙기기에 나섰답니다. 트럭에 아내를 태우고 전국의 맛집과 유명 축제를 찾아다녔고, 수시로 동네에 짜장면, 통닭을 나눴다지요.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 이장님 부부를 본받기 시작했고 마을 전체가 화목해졌는 이야기입니다. 문자 그대로 ‘인심(人心)이 금심(金心)’이 됐다는 것이죠. 이처럼 스님은 경전 구절이 책 속에 화석(化石)처럼 굳은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닐하우스 법당 앞에서 풍산개 반려견 '우리'가 도정 스님을 반기고 있다. /김한수 기자

◇불사가 집 짓는 것뿐일까요?

슬며시 미소짓게 만드는 글도 많지요. 스님이 차를 몰고 가는데, 한 할머니가 차도에 나와 “구원이라예, 구원”이라며 히치하이킹을 했답니다. 어리둥절해 하며 태워드리고 보니 할머니가 이야기한 것은 ‘구원(救援)’이 아니라 지명(地名) ‘구원 마을’이었답니다.

‘밥 세끼가 과분한 이유’란 글에선 현 불교계 세태를 풍자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 스님은 “난 애초에 큰스님 될 종자는 아니었다”며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상좌가 없고, 큰절 주지 못 되고, 하버드 박사는 고사하고 일반 대학교 박사도 안 되고, 선방 선원장(禪院長)도 안 되고, 나이가 50대이니 아직 젊고, 더 늙은들 돈 없을테고, 점이나 사주 볼 줄 모르고, 키까지 작으니 죽을 때까지 더 클 일도 없다’고요.

비닐하우스 법당을 보고나서 다시 글을 음미하니 생활에서 우러난 내용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가난한 살림이지만 매년 동짓날엔 넉넉하게 팥죽을 쒀 마을에 가져다 드리는 등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성껏 동네 어르신을 공경하고 있답니다. 읍내 나가는 길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탄 경운기를 만나면 경적 울리지 않고 그냥 뒤에서 졸졸 따라간답니다. 그런 풍경을 보며 경전 구절을 떠올리고 에세이를 붙인다는 것이지요. 스님에겐 “불사(佛事)는 건물 짓는 것만이 아니라 부처님 섬기는 모든 일”인 것이지요.

스님은 “출가할 때부터 경전을 쉽게 글로 옮겨보겠다는 원력(願力)을 세웠다”며 “스쳐지나는 일상 속에 삶의 의미를 찾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님에게 ‘향수해’는 언젠가 도달해야 할 피안이 아니라 바로 여기 비닐하우스 법당과 마을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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