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다 한국행 원한다는 '거짓 신화' 깨야 탈북자 삽니다"

김보근 2021. 1.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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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독립피디 조천현 작가
최근 <탈북자>를 펴낸 조천현 독립피디. 김보근 선임기자

“‘탈북자는 모두 남한에 오려고 한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야 탈북자가 살 수 있습니다.”

독립피디인 조천현(55) 작가는 20여년 동안 계속해온 탈북자 취재기를 담은 책 <탈북자>(도서출판 보리 펴냄)의 주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그의 주장은 왠지 낯설다. ‘그럼 남한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 탈북자도 있다’는 얘기인가? 국내의 대부분 언론과 출판물들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탈북자 스토리는 ‘죽음의 고비를 넘은 탈북,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강제 송환의 위기’를 거친 뒤 ‘극적으로 한국행에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 피디는 자신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는 탈북자 중 단지 한 부분이라고 한다. 실은 중국에 남기를 원하는 탈북자와 북한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탈북자 숫자를 합치면 남한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보다 더 많다고 한다. 그의 책 <탈북자>는 이 세 부류의 탈북자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탈북자’ 이야기’다. 조 피디를 지난 22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조 피디는 1997년부터 최근까지 북중 국경과 연변 등을 중심으로 탈북자들을 만나왔다. 코로나로 중국 출입이 어려웠던 지난해를 빼면 20여년 동안 탈북자를 만나지 않은 해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만난 탈북자들은 한국 내에서 알려진 탈북자들의 이미지와 많이 달랐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 예로 조 피디는 2001년 8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3차례 이상 만난 탈북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때 한국에 가고자 하는 탈북자가 41명인 데 반해, 북한에 가고자 하는 탈북자는 34명, 중국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탈북자 21명, 기타 4명으로 한국행을 원하지 않은 탈북자가 59명이나 됐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 김련희씨는 2011년 남한에 온 이후 줄곧 “브로커의 꾐에 빠져 남한에 오게 됐다”며 북송을 요구하고 있다.

조 피디가 2004년에 만났던 당시 탈북생활 4년째인 장경철(가명·32살·함남 함흥)씨도 한국행을 바라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탈북자도 6개월 전에 한국 갔슴다. 그런데 그 사람 부럽지 않슴다. 우리 아버지가 굶어 죽고 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계셔서 내가 맏이라 살려 보겠다고 중국땅에까지 나왔슴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버리고 한국 가서 나 혼자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조 피디가 만난 탈북자들은 ‘탈북자’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승환(가명)씨는 “나는 탈북자라는 말을 듣기 싫습니다. 북조선 정치가 싫어서 반대하자고 나온 게 아니라, 돈 벌자고 나온 거고 돈 벌어서 들어가는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중 국경 등서 20여년 탈북 취재
최근 취재 기록 모아 ‘탈북자’ 출간

“한국행 바라는 탈북자 절반 안 돼
상당수는 ‘아메리칸드림’ 교포처럼
중 체류나 돈 벌어 북 귀환 희망
‘기획 탈북’ 최대 피해자는 탈북자”

조 피디는 2014년 연길시에서 만난 박경화(가명·68살·함북 온성) 할머니도 “근데 죄짓고 나온 사람, 가면 처벌 받을 사람은 (북한) 가자는 소리 못 해도 우리네처럼 이렇게 들어온 사람은 돈만 빨리 벌어 가지고 간다”고 말하는 등 인터뷰를 했던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돈 벌어 고향 간다’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마치 197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미국에 간 한국인이나, 1990년대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온 조선족 동포들을 연상하게 하는 발언이다.

조 피디는 또 2005년 중국 훈춘에서 만난 김영미(가명·33살·함북 새별)씨의 경우 “중국에서 잘사는 게 한국에서 못사는 것보다 낫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조선족 남편과 사이에 5살 아들을 두고 있었다. 당시 김씨의 남편은 한국에 돈 벌러 간 상태였고, 김씨는 남편이 부쳐준 돈으로 중국 국적도 만들었다.

조 피디는 “일부 브로커·엔지오·선교단체가 ‘일부 탈북자의 남한행’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하거나 확대하고, 이를 한국과 일본 등의 극우·보수 언론이 받아쓰거나 혹은 함께 기획하면서 탈북자 문제가 정도를 벗어나게 됐다”고 진단한다. 이런 행동들의 1차 피해자는 결국 탈북자들이다. 기획탈북 사건이 일어나면 북중 국경의 경계가 강화되는 등 중국에 남고 싶어 하거나 북한에 돌아가고자 하는 탈북자들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탈북자 신화’를 이용해 일부 탈북자나 엔지오·선교단체들은 사기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조 피디는 대표적 사례로 2008년 대법원에서 사기 판결을 받은 예량선교회 사건을 소개한다. 이 선교회는 2000년대 초부터 ‘죽음을 각오한 북한 선교’, ‘북한 주민들의 순교와 탈북’ 등을 소재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 후원금 20여억원을 모아 가로챘다. 하지만, 2006년 신도에 의해 고발돼 재판을 받으면서 그가 올린 글의 대다수가 거짓임이 밝혀졌다.

조 피디는 궁극적으로는 ‘탈북자 신화’와 이를 이용한 정치적 활동의 피해자가 남북한 국민 모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탈북자 신화 만들기’와 관련된 상당수 활동이 북한을 ‘악마화’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는 “남한에 오고자 하는 탈북자는 가급적 조용히 오는 게 최선”이라며 “한국이나 국제사회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탈북자 문제에 개입할수록 분단을 더 고착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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