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전 고속도 좌우 1km를 태양광으로 꽉 채워봤자...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21. 1. 2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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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생산량은 이미 부지 닦아놓고 7900억원 투입한 신한울 3·4호기 수준
땅 부족 국가에서 원전 포기하겠다니
현 정부 출범 후 탈원전 정책에 따라 건설이 중단돼 방치된 경북 울진 신한울 원전 3·4호기 예정지. / 이진한 기자
작년 3월 상업 운전에 들어간 전남 해남의 '솔라시도 태양광단지'. 국내 최대 태양광 단지로, 면적이 축구장 220개에 맞먹는 158만㎡ 에 이른다. / 남부발전 제공 사진

월성 원전 단지 내 집수정에 고인 물에서 71만 베크렐 농도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뉴스가 한동안 논란이 됐다. 그러나 큰 동요 없이 수습되는 분위기다. 정용훈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월성 원전 인근 지역 주민의 삼중수소 1년 피폭량(被曝量)은 가장 많은 경우가 바나나 6개, 또는 멸치 1g 먹을 때와 같다”고 설명한 것이 주효했다. 두 차례 1426명의 소변 시료를 조사했는데 제일 농도가 높았던 것이 L당 28베크렐이었다고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고 해도 연간 총방사선량은 신체 위해도 단위(mSv·밀리시버트)로 따져 0.0006mSv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흉부 X레이 한 번 찍는 것의 100분의 1 수준이다.

‘베크렐’이나 ‘밀리시버트’ 같은 단위는 일반인에겐 난수표나 다름없다. 소변에서 28베크렐 검출되면 어느 정도 건강에 위해를 끼치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걸 ‘멸치 1g’, 또는 ‘X레이의 100분의 1’로 설명해주자 비로소 감각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다. ‘고인 물에서 71만 베크렐’도 얼핏 엄청난 방사선이 새어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71만 베크렐 오염수를 절차에 따라 10~20베크렐 수준으로 희석한 후 배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공연히 긴장할 필요가 없다. 삼중수소의 WHO 음용수 기준치가 1만 베크렐이고 원전 배출수 기준치는 4만 베크렐이다. 정 교수는 “4만 베크렐 짜리 물을 매일 2L씩 365일 마시더라도 연간 누적 방사선량은 흉부 CT 한 장 찍는 것(7mSv)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방사선이 공포(恐怖)를 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이 눈에 안 보이고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의료 방사선까지 포함해 연간 폭로되는 방사선량이 평균 6~7mSv 정도다. 그것의 100배, 방사선 600mSv에 한꺼번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아무 느낌이 없다고 한다. 난로에 손가락이 닿으면 깜짝 놀란다. 이때의 뜨거운 느낌 때문에 손을 움츠리는 방어 동작으로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수백mSv 방사선이 몸을 뚫고 지나가도 알아챌 수 없다면, 그건 우리한테 아무 대처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무서울 수밖에 없다.

방사선에 대한 과잉 공포를 막으려면 눈에 안 보이는 방사선을 보이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정용훈 교수가 했던 것처럼 ‘익숙한 리스크와의 대비’가 한 방법이다. 나 자신도 비슷한 시도를 해봤던 적이 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후 1년 뒤 ‘리스크 테이블’이라는 책을 냈다. 2008년 있었던 광우병 사태, 멜라민 과자 소동, 다이옥신 돼지고기 수입 등 세 가지 사건의 리스크를 평가해봤다. 그것들을 일반 시민이 익숙하게 잘 아는 리스크들을 정렬(整列)시킨 ‘리스크 테이블’ 표에 대비시킨 작업이다. 결론만 소개해본다면 미국 수입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크게 잡아도 ‘연간 10만명당 0.000002명’ 정도였다. 한국의 5000만 인구 중에서 ’1000년에 한 명' 인간광우병에 걸리는 확률이다. 이것은 항공기 사고로 죽을 확률의 6500분의 1, 화재 사망 확률의 30만분의 1 정도였다. ‘화재 사망의 30만분의 1’ 리스크에 겁을 먹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멸치 1g’ ‘X레이의 100분의 1’이라는 대비도 일종의 ‘리스크 테이블’을 활용한 방법이다. 이렇게 대비시켜 주면 시민들은 동요 없이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

현 정부가 건설을 중단시킨 울진 신한울 3·4호기가 2월 말까지 공사 계획 인가를 받지 못하면 4년 전 따낸 발전 사업 허가 자체가 취소된다고 한다. 법률적인 사망 선고다. 신한울 3·4호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설비인지를 기존 태양광단지의 전력 생산량과 대비시켜 설명해볼 수 있다. 국내 최대인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태양광단지는 1.58㎢(약 48만평) 규모인데 여기서 연간 129GWh의 전기를 생산한다. 1㎢(가로×세로 1㎞)당 82GWh다. 신한울 3·4호기를 합치면 2.8GW 설비인데 이용률을 90%로 잡을 때 솔라시도의 171배, 연 2만2075GWh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서울에서 출발해 136㎞ 달릴 때까지, 다시 말해 대전에서 7.5㎞ 못 미치는 지점까지 고속도로 좌우 양편에 폭 1㎞로 태양광 패널을 가득 채워넣어야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신한울 3·4호기를 지으면 그만한 크기의 태양광 땅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신한울 3·4호기는 이미 부지(0.85㎢)도 닦아놨고 건설 비용 7900억원을 투입한 상태다. 같은 면적 부지라면 태양광의 300배 이상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토지가 뭣보다 귀한 자산인 나라가 이걸 포기하겠다는 것은 거의 자폭(自爆) 행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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