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내 사람 챙기기’보다 인맥관리

조유진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세계유산담당관 2021. 1. 27.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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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동료가 이라크 모술의 문화재 복구 현장에서 일할 인력을 찾고 있었다. 채용 공고를 냈지만 위험 지역에 들어가야 하는지라 사람이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고 도움을 요청해왔다. 내심 나와 같이 일하던 교육생들을 연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적임자 리스트를 뒤적여봐도 마땅한 사람이 선뜻 생각나질 않았다. 사흘 정도 묵히다가 지인 중에서 찾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동안 같이 일해온 아랍쪽 기관에 연락을 돌렸더니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전문 분야, 활동 지역, 이라크 출입 가능 등의 조건을 적은 대여섯 명의 리스트가 속속 들어왔다.

인맥 관리, 다른 말로 네트워킹은 내 업무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누구를 아는지가 핵심이다. 내 계약서에 딸린 업무분장서에도 관련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유지하라고 명시돼있다. 한국을 인맥 사회라고 비판하지만 유네스코나 국제 문화재 보존 관련 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는 사람이 회의에 초대되고, 글을 요청받고, 각종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람 관리가 중요한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접근 방식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내가 알던 인맥 관리란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업무 외에 가외로 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정성을 들여 내가 남을 챙기면 그도 나를 챙겨주고 끌어주는, ‘내 사람’들의 관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경조사도 챙기고, 무엇보다 연락을 자주 하고…. 잘하면 정말 좋지만, 인맥 관리를 못한다고 마냥 나쁠 것도 없었다. 나는 인맥에 기대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처음엔 여기서의 네트워킹도 ‘내 사람’을 챙겨야 하는 일인 줄 알고 헤맸다. 그러다가 사람 자체를 관리하는 것으로 다가가니 한결 수월해졌다. 모술에 들어갈 인력을 찾을 때 처음엔 내가 챙겨주고 싶은 지인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필요한 조건을 꼽아보자 그들은 모두 마땅치 않았다. 고고학자인지 정책 전문가인지, 활동 지역과 문화권이 어디인지,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 등등 나와의 관계를 빼고 사람에 집중하니 이제야 인맥 관리가 진정한 업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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