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과 연주.. 내 몸에는 불이 두 번 들어온다"

김성현 기자 2021. 1. 27.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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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독주회.. 공연 당일 10시간 동행 인터뷰

연주자는 무대라는 호수 위의 백조와 같다. 우리는 두 시간 내내 그들의 우아한 동작과 표정을 바라보면서 경탄하고 환호를 보낸다. 하지만 수면 위에 계속 떠 있기 위해서 과연 물 밑에서는 어떤 발버둥을 치고 있을까.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 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 2017년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2)의 독주회가 열렸던 26일, 10시간 동안 동행 취재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앞두고 마지막 리허설을 하고 있다. 이날 연주곡인 모차르트와 쇼팽을 최종 점검하듯 한달음에 내달렸다. /김연정 객원기자

낮 12시 서울 강남구 숙소

선우예권은 늦잠꾸러기다. 연주회 당일엔 더욱 그렇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린 26일에도 아침 9시쯤 눈을 떴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눈을 붙였다가 11시 반쯤에야 일어났다. “본래 야행성이기도 하지만, 연주회 시작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려면 조금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 좋아요.” 그는 15세 때 미 커티스 음악원으로 이른 유학을 떠나서 줄곧 혼자 살았다. 올해로 독일 베를린 생활도 3년째. 안양의 부모님 곁을 떠나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긴 셈이다. 그는 “자립심과 외로움이 모두 커진다는 점에서 장단점은 있다”고 말했다.

2008년 플로리다 콩쿠르를 시작으로 2017년 반 클라이번까지 콩쿠르 우승만 8차례. 음악계에서 ‘최다 콩쿠르 우승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2018~2019년에는 국내외에서 한 해 100여 차례의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연주회 당일에는 떨린다. “처음 연주하는 곡이 있거나, 요즘처럼 코로나로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속으로는 더 떨리죠.” 이날은 중식당에서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생선 조림을 먹은 뒤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로 향했다.

낮 3시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를 ‘동반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재미난 건 연주회장이 바뀔 때마다 그 ‘동반자’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26일 독주회를 앞두고 선우예권은 공연장의 피아노 4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느라 30분 이상 시간을 소비했다. “다른 악기와 달리,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를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악기 상태를 미리 알 수가 없죠. 그래서 언제나 스트레스가 있는 편이에요.” 그는 연주 악기를 고를 때 묵직한 저음과 가볍고 화려한 고음 사이의 균형감을 중시한다.

오후 3시쯤 그는 연주회장에 도착한 뒤 곧바로 마지막 리허설에 들어갔다. 이날 연주할 모차르트와 쇼팽의 피아노 곡들을 한달음에 내달렸다. 그는 “연주회 직전까지 쉼 없이 연습하는 선후배 피아니스트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곡을 딱 한 번씩만 쳐보는 편”이라고 했다. 오후 5~6시쯤 리허설을 마치고 나면 연주회 직전까지 대기실에서 15~20분씩 일부러 눈을 붙인다.

선우예권은 지난해 연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첫 음반으로 발표했다. 화려한 쇼팽이나 서정적인 슈베르트, 중후한 베토벤이나 브람스에 비하면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를 양면성을 지닌 작곡가라고 불렀다. “모차르트라고 하면 천진난만하고 쾌활한 개구쟁이만 떠올리기 쉽지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유년 시절부터 유럽 전역을 떠돌면서 연주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면적으로는 외로움과 슬픔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에도 오페라 아리아 같은 드라마틱한 면모가 깃들어 있다”고 했다. 이번 음반에서도 밝은 장조곡과 어둡고 내면적인 단조곡들을 두 장에 나눠서 실었다.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콘서트 당일, 연주자는 하루 종일 기획사와 공연장 직원, 취재진과 팬들에게 둘러싸여서 지낸다. 하지만 정작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피아니스트는 언제나 혼자가 된다. 선우예권은 불빛이 켜지고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의 긴장과 고요함을 즐긴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오로지 음악만이 남기 때문”이다. 전반 모차르트와 후반 쇼팽의 곡을 연주한 이날 독주회는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그는 “연주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조금은 더 힘들다”면서 “오늘 밤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늦잠 잘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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