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만이 말해주는 것들[사진기자의 '사談진談']

홍진환 사진부 기자 입력 2021. 1. 27. 03:06 수정 2021. 1. 2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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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셀프환송식을 마치고 플로리다로 가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홍진환 사진부 기자
퇴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전 세계에 실시간 보도됐다. 트럼프다운 퇴장이었다.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한 그는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셀프 환송식을 열었다. 환송식장에서 대선 불복은 물론 4년 뒤 재도전까지 거론하며 ‘뒤끝’을 남겼다.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는 그의 뒷모습에는 고집과 불통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언론에 보도된 이 장면에 사진기자의 주관적 의도가 담겼는지 아니면 그것이 트럼프의 진짜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한국에서는 청와대 홈페이지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최고 지도자의 뒷모습이 제공되기는 해도 사진기자들이 직접 촬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뒤편에 사진기자가 서 있어야 하는데 경호 또는 의전 프로토콜상 엄격하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권력자의 뒷모습을 촬영한다는 것은 의도가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다. 특히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퇴임하는 대통령을 거리낌 없이 ‘뒷모습’으로 처리했다. 사진 한 컷만으로도 그동안 트럼프와 언론이 얼마나 불편한 관계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그의 얼굴조차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언론의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얼굴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문에 게재되는 사진은 인물의 앞모습이 주를 이룬다. 이에 비해 다소 밋밋한 뒷모습은 선택지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신문 제작기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뒷모습과 연관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신문지에 인쇄된 검은 머리카락은 디테일이 살지 않고 색이 뭉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어두운 색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한 잉크가 제대로 건조되지 않아 신문의 양면이 붙어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검은 피사체는 기피 대상으로 굳어졌고 ‘뒤통수 찍기’는 하나의 금기 사항이 되었다.

하지만 회화의 영역에서는 좋은 소재가 되기도 했다. 많은 화가들이 인간의 뒷모습이 드러내는 독특한 정서를 화폭에 담아냈다.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대표적이다. 그는 웅대한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풍경 속 인물의 뒷모습을 주로 그렸다. 덴마크의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프랑스의 귀스타브 카유보트, 툴루즈 로트레크도 일생 동안 뒷모습을 주제로 삼아 작품 활동을 했다.

사진 예술 분야에서도 뒷모습에 천착해 인상적인 작품을 쏟아낸 작가가 있다. 피사체의 뒷모습을 사랑하는 사진가들은 사람의 앞보다는 뒤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프랑스 사진가 에두아르 부바는 ‘뒷모습이 수만 가지 얼굴 표정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서로의 허리에 손을 두른 어린 두 소녀, 쟁기를 지고 가는 농부,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파도를 바라보는 가난한 여인 등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그의 작품에 짧은 글을 곁들인 사진 에세이집 ‘뒷모습’이 국내에 출간되기도 했다.

최근 보도사진의 영역에서도 ‘뒤통수’가 찍혀 지면에 인쇄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간과하기 쉬운 인물의 뒤편에 사진기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쏠려 있다.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으로 검찰에 출두하는 정치인, 자녀 입시비리와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으러 나온 대학교수 등도 뒷모습으로 기록됐다.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며 정의와 공정을 목소리 높여 외쳤지만 그들의 뒷모습에 숨어 있는 침묵은 스스로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몽니를 부리며 플로리다로 떠났던 트럼프 전 대통령. 그의 뒷모습에 비치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반면 트위터에 공개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바이든 신임 대통령이 서로의 등을 토닥이는 뒷모습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했다.

매일 언론에 등장하는 인물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역사의 한 장면이 된다. 시끄러운 뉴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떻게 기록될까? 아름다운 퇴장일지, 추악한 퇴장일지. 평소에 보였던 뒷모습이 그들의 마지막을 결정할 것이다. 뒷모습도 그 사람이 만들어 온 삶의 이력서이기 때문이다.

홍진환 사진부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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