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쁜 꽃다발, 친환경 플라스틱입니다

채민기 기자 2021. 1.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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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미 더해가는 친환경 디자인
주황색을 주제 색상으로 사용한 트래쉬버스터즈의 컵. '별거 아니야(It's not a big deal)'라는 문구를 넣어 일회용품 줄이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래쉬버스터즈

고스트버스터즈가 유령 사냥꾼이라면 트래쉬버스터즈는 일회용품 쓰레기 잡는 한국 스타트업이다. 축제 행사장에 출동해 일회용기를 대신할 그릇을 빌려주고 수거·세척하는 서비스로 2019년 출발했다가 지난해 코로나로 행사가 속속 취소되는 바람에 배달 음식 쪽으로 전략을 확대하는 중이다. 이르면 다음 달 단체 주문 도시락의 일회용기를 반영구적 플라스틱 그릇으로 대체하는 서비스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플라스틱 용액이 샌드위치의 녹은 치즈처럼 흘러 나온 손동훈의 가구들(위). 일회용기를 대체하기 위해 트래쉬버스터즈가 디자인한 주황색 테마 그릇들. /사진가 박현성·트래쉬버스터즈

디자인 회사가 아닌데도 전문지 ‘월간 디자인’이 이달 선정한 ‘올해 주목할 디자이너 14팀’에 들었다. 그릇부터 모자·티셔츠까지 자체 디자인한 물건에 주황색을 사용한다. 친환경의 색은 녹색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시도이자 사용자에게 건네는 일관된 시각 언어다. 유령을 유쾌하게 패러디한 로고는 쓰레기 봉투처럼 보인다. 최안나 이사는 “사용자들이 재미를 느끼며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친환경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 친환경 디자인이 예뻐지고 있다. 소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는 신세대들의 ‘미닝 아웃(meaning out)’ 성향을 공략하는 동시에 완성도 높은 조형미까지 추구하는 것이다. 이럴 때 친환경은 남다른 실천이 아니라 즐거운 참여의 대상이 된다.

알코올성 용액에 녹인 플라스틱 부스러기를 접착제처럼 사용해 만든 손동훈의 가구. 용액이 녹은 치즈처럼 흘러나오며 독특한 효과를 연출했다. BSP라는 작품 제목은 소재가 된 부산물(by-product), 솔벤트(solvent·용매), 플라스틱(plastic)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사진가 박현성

산업디자이너 손동훈은 새로운 방법으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공예처럼 재해석했다. 최근 그는 시제품을 만들 때마다 대량으로 나오는 플라스틱 부스러기를 고온에 녹이는 대신 알코올성 용액으로 용해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1년 반 넘게 연구한 끝에 얻은 성과다. 플라스틱 녹인 용액을 접착제 삼아 플라스틱 판을 이어붙이자 샌드위치의 녹은 치즈처럼 흘러나오며 독특한 형상을 연출했다. 손동훈은 “제작 방법을 달리하면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온다”며 “이를 새로운 조형미로 승화시켜 디자인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그의 가구는 미국의 갤러리에서 판매되고, 스페인의 갤러리에선 전시를 준비 중이다.

세계적 디자이너와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에비앙은 이달 초 루이비통 총괄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한 재생 플라스틱 생수병을 공개했다. 아블로의 소개에 따르면 “에비앙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100% 재활용 소재 생수병”이다. 살짝 구겨진 듯한 표면 처리는 다 마신 병을 재활용하기 위해 찌그러뜨린 모습을 상징한다. 노스페이스는 올해 제주도에서 100톤 분량의 페트병을 수거·재활용해 의류를 비롯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레고가 꽃을 주제로 선보인 블록 시리즈. 실제 꽃 장식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화려한 이 블록엔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 플라스틱이 사용됐다. 식물을 형상화한 블록에 사탕수수 원료 플라스틱을 쓰겠다고 선언한 2018년 이후 디자인이 한결 정교해졌다. /레고
레고가 꽃을 주제로 지난해 말 선보인 블록 시리즈. 실제 꽃 장식처럼 정교하다. 레고는 이 제품에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 플라스틱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레고

레고는 지난해 말 꽃을 테마로 한 제품을 발표하면서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블록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레고는 2018년 풀·덤불·나무 모양 블록에 사탕수수 플라스틱을 쓰겠다고 발표했었다. 이 블록들이 식물을 단순하게 표현한 범용(汎用) 부품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시리즈는 꽃다발을 만들고 꽃꽂이를 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한 것이다. 총천연색의 플라스틱으로 재현한 화초는 강철로 된 무지개만큼이나 역설적이다. 이럴 때 플라스틱은 친환경이라는 메시지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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