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아웃룩] 아동병원 폐업, 전문의 지원 반토막… ‘소아 의료’가 무너진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1. 1.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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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외래 500명 보던 아동병원, ‘코로나 직격’에 노인병원으로
소아과 작년 154곳 폐업… “저출산 극복하자며 의료 붕괴 방치
“칸막이도 못 세우는 중환자실 감염 위험 노출… “근본 대책 시급”

전남 여수·순천 지역 아기 엄마들이 즐겨 찾던 소아 전문 F아동병원. 이 지역서 가장 큰 아동병원으로, 외래환자가 하루 500명에 이르렀다. 소아과 의사 7명이 근무해 감염·발육·성장 등 분야별 전문 진료를 제공했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소아 환자 특성상 입원하면 아기와 엄마·아빠 등 보호자가 같이 지내야 하기에, 병원은 일반 침대보다 가격이 2배 비싼 특수 제작 대형 침대를 놓았고, 바닥은 온돌을 깔았다. 보호자들이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어 간병이 수월했다. 그렇기에 입원 병상 100개 가동률이 80%를 넘었고, 꽉 차는 날들도 많았다. 이른 새벽 순천 멀리서 엄마들이 열 나는 아기를 둘러업고 와 입원을 하기도 했다. 외래도 맞벌이 부부를 위해 밤 10시까지 열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중환자실 모습. 공간 부족으로 인해 중환자실에 병상마다 감염 예방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최소 칸막이가 없이 간이 커튼을 친 채 진료한다. 대부분 어린이 병원의 상황이 똑같이 열악하다. /사진=고운호 기자, 그래픽=박상훈

그러나 지금 이 아동병원은 사라졌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지난해 말 개원한 지 1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입원 환자가 5~6명으로 줄었다. 의료진 70여 명 인건비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 탓에 매달 2억원가량 적자가 났다. 박진실 원장은 “은행에서도 소아 아동병원은 위험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대출을 안 해준다”며 “어린이 병원 대신 노인 환자 재활병원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에 무너진 소아 의료 인프라

코로나 감염병 대처로 어린이 감기, 기관지염, 설사 등 감염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겨울철 독감은 코로나 발생 1년 전의 2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소아 환자 부모들도 소아과 방문을 꺼렸다. 그 탓에 전국 130여 아동병원 중 10여개가 폐업하거나 입원실을 닫고 의원으로 낮췄다.

동네 소아과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지난해 154곳이 폐업했다. 2019년 98곳 폐업과 비교해 57% 급증했다.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소아과가 줄어드는 상황인데, 코로나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소아과 없는 무의촌이 예산, 무주, 진안, 장수, 울진, 태안, 평창, 보성, 강진, 함평, 장성, 곡성, 구례, 신안, 임실, 순창, 고창, 영동, 보은, 옥천 등 전국적으로 속출하고 있다.

소아과 의사를 하겠다는 젊은 의사들도 대폭 줄었다. 지난해 말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현황에 따르면, 181명 정원에 58명만이 지원했다. 지원율이 32%로, 그 이전 연도 69%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현상은 유명 대형병원에서도 벌어져, 세브란스병원은 14명 정원에 3명만이 지원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양성하는 전국 49개 대학·종합병원 중, 26개 병원은 소아과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의료계에서는 한 해 30만명 가까이 신생아가 태어나는데, 이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도 소아 의료 인프라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임현택 소아과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저출산 극복하자고 하면서 소아 의료 붕괴는 방치되고 있다”며 “정부에 대한 항의 차원서 아예 소아과를 없애자는 폐과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진료 환경 열악한 어린이병원 실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어린이병원 2층 병동. 심장 기형, 선천성 호흡기 질환, 뇌종양 등 각종 질병을 앓는 아이 7명이 한 병실에 다닥다닥 붙어 누워 있다. 이곳은 7인실이 있는 전국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7명 아기 환자에 보호자까지 함께 지내니, 최소 14명 이상이 한 병실에 밀집해 기거한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이런 7인실이 전체 250병상의 50%를 차지한다. 병실서 코로나 감염자 한 명이 나오면 집단감염이 이뤄질 위험이 크다. 감염 예방을 위해 병상 간격을 1.5 이상 벌리라는 정부 지침을 위반하고 있는 상태다.

의료진이 회진할 때는 병실이 비좁아 보호자들이 교대로 병실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 심전도 등 의료 장비를 병실에 갖고 들어갈 때는 병상 사이를 움직일 공간이 없다. 보호자들은 아기 침상 옆 간이 의자서 매일 새우잠을 잔다. 입원 아기 엄마 권모(33)씨는 “국내 최고 어린이병원이라는 곳의 환경이 이런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일주일째 의자에서 잤더니 허리가 아파서 아기 대신 내가 입원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6인실과 5인실 비율도 전체의 26%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외국 의료진과 귀빈들이 흔히 방문하는 곳이다. 소아 환자를 격려하기도 하고 진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린이병원은 병동을 외국인에게 민망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2019년 한국을 찾은 덴마크 왕세자빈이 소아암 환자들을 직접 만나 투병을 응원하고 싶다고 했으나, 어린이병원은 끝내 외래에 있는 어린이 환자 도서관만 공개했다. 이곳에는 디지털 교육실도 없어 입원해 있는 초등학생 환자들은 코로나 원격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다.

중환자실에는 인공호흡기나 혈액치료기를 달고 있는 아이들 병상 16개가 칸막이 없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중환자는 감염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1인실 형태로 운영하거나 최소 병상 간 격막이라도 있어야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병원들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이곳은 공간 부족으로 그러질 못하고 있다. 병원 내에 항생제 내성균이 번질 때, 중환자실서 집단 감염이 일어난 적이 있다고 의료진은 털어놨다.

그나마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해 중환자 처치를 일반 병실에서 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생긴다. 날 때부터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는 생후 2개월 여아는 인공호흡기를 낀 채 2인실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음식을 삼키지 못해 위장 튜브가 몸 안으로 들어가 있고, 산소 치료, 호흡 재활 장치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만, 옆 병상 보호자들도 수시로 들락거리는 비좁은 일반 병상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민선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령 산모 증가와 출산 연령 지연 등으로 전문 병원 진료가 필요한 미숙아, 신생아 기형질환, 난치성 중증 질환은 되레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병원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의료수가 구조에 발목 잡혀 진료 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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