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어린이집 CCTV를 보고 싶다”
울산 남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최근 아동 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30개월 남자아이에게 12분 만에 물 7잔을 먹여 토하게 하고, 다른 아이들이 남긴 반찬까지 먹인 혐의다. 피해를 당한 아이 엄마를 취재하며 가슴이 먹먹했다. 이 어린이집은 기자의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과 차로 10분 거리다. 내 아이가 당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학대 사실을 세상에 알린 건 경찰도, 구청도 아닌 엄마였다. 어린이집 원장은 학대 사실이 드러나자 CCTV 확인을 대놓고 가로막았다. 1년여 만에 법원까지 가서야 CCTV 화면을 확보한 엄마는 경찰 수사가 놓친 학대 정황을 83개나 더 찾아냈다.
기자와 같은 30대인 아이 엄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탓하기 전 자신을 자책했다. “맞벌이 부부라 오후 6시쯤 일 마친 뒤에야 집에 데려갈 수 있었다”며 “그 시간까지 어린이집에 남아 있던 아이는 우리 애 한 명”이라고 했다. 선생님들 퇴근이 늦어진 게 아이가 미움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일하는 엄마 아빠들이 퇴근 시간이 10분이라도 늦어질까봐 마음 졸이는 이유를 정부가 알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기자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와 다섯 살 남자아이, 남매를 키운다. 맞벌이 부부라 지난 7년간 아이들을 민간 어린이집, 국공립 어린이집, 유치원 등 다양한 기관에 맡겨야 했다. 지금까지 어린이집에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간혹 아이가 이마나 팔에 멍이 들어 와도 선생님이 “친구랑 싸우다 그랬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꾹 참았다. 어린이집 관계자가 “저는 이 어린이집 못 믿습니다”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전국 수많은 부모들이 CCTV 열람 신청 얘기를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CCTV는 말 못하는 아이들을 학대로부터 지켜줄 사실상 유일한 감시자다. 22개월 된 딸을 안고 처음 어린이집에 갔던 6년 전, 기자는 그곳에 CCTV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이번 아동 학대 사건을 취재하면서, “CCTV를 보려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화면 모자이크 처리 비용으로 수천만~1억원을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피해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웬만한 직장인 연봉과 맞먹거나 더 많은 거액을 내라는 말에 그들이 느꼈을 참담함에 공감했다.
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건 사실 CCTV가 아예 필요 없는 어린이집일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CCTV 확인을 좀 더 쉽게 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보육 전문가들은 교사 한 명이 돌봐야 하는 아이 수가 지금보다 적어야 학대 피해도 줄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행복한 어린이집을 우리는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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