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칼럼]권력이 능력을 과신하면 벌어지는 일들
[경향신문]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얻는 것은 부상일 뿐이다. 운동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몸이 굳으면 평소만큼의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 힘은 유연함 속에 숨어 있다. 한 나라를 경륜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기억이 난다. 촛불로 출범한 정부는 운도 많다고 했다.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 경제성장률은 호조를 보였고 재정도 튼튼했다. 부동산도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래를 위한 새로운 활력을 찾는 것이 주요 관심이었다. 민주정부에다 경제도 좋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출범 4년이 지나고 있다. 촛불정부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했다. 고소득층에 재화가 쌓이면 흘러내려 저소득층에게 온기를 전한다는 ‘낙수효과’는 신화에 불과하다며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신 저소득층에게 소득이 직접 들어가게 만들겠다고 했다. 이것이 소비, 생산과 투자로 이어지도록 해 선순환의 물레방아를 돌리겠다고 했다.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대표된다. 문재인 정부는 가난이 낮은 최저임금에 있다고 보았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톱니바퀴처럼 선한 영향력이 온 사회로 퍼질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다줄 장점만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해도 환자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런데 대부분 자영업자들은 종업원과 별반 나을 것이 없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이들을 직격했다. 정부는 부작용에 대한 대처방안이 마련돼 있다고 자신했으나 말뿐이었다. 정부는 장기간에 걸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확대됐다.
일자리는 어떠한가.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최저임금이 급속하게 오르자 자영업자들은 직원을 내보냈다. 차고 넘치던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얻기 어렵다. 일자리 감소를 ‘통계 잘못’으로 몰아 통계청장을 교체하기도 했다. 그런다고 줄어드는 일자리가 늘어날 리 만무하다. 정부는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에서 탈피해 내수와 서비스산업을 키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기업과 수출 위주의 경제는 심화됐다. 갈수록 내수는 위축되고 경제는 정부지출로 돌아가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가장 큰 실망을 안겼다. 정부는 ‘부동산은 자신있다’고 했다. 정부가 안정시킬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주머니에 많은 대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를 믿은 ‘순진한 시민’은 ‘벼락거지’가 됐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규제와 세금 카드를 들고 힘으로 눌렀다. 그런데도 집값은 올랐다. 부동산을 ‘사기도, 팔기도, 갖고 있기도 힘들게 만들었다’는 불평만 쏟아진다. 뒤늦게 실수를 인정했다. 저금리로 돈이 많이 풀린 데다 1~2인 가구가 예상보다 급속히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공급대책 없이 규제를 앞세운 결과’라고 말한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고 아껴쓰면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권력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파란 하늘을 까맣게 뒤덮을 수 있다. 금방이라도 천국이 올 것처럼 시민들을 들뜨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구호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는 어렵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관건은 이를 ‘어떻게 해서 이루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높은 구호와 달리 목표를 완수할 액션플랜은 허술했다. 일자리와 부동산 대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영세상인들을 지원하겠다는 대책들이 봇물을 이룬다. 많게는 월 24조원씩을 투입하겠다거나,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받고, 임대인들에게도 고통분담을 요구하겠다는 것들이다. 24조원이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비(22조원)보다 많다. 재원마련에 난색을 표하는 기획재정부 공무원에 여권의 대선주자 2명은 ‘이 나라가 기재부 것이냐’ ‘무소불위의 기재부 나라’라며 비난을 쏟아냈고 한다.
사안마다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와 여당은 ‘시급성’을 이유로 이들을 밀어붙일 태세다. 물론 팬데믹으로 무너지는 공동체를 지탱하기 위한 대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목에 힘주고 핏대부터 세울 일은 아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다 ‘부상’만 입어온 정부 아닌가. 흥분하다가 또 일을 그르치겠단 건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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