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와 결혼처럼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항암 치료 후 사망까지 미국은 여섯 달, 한국은 한 달 걸립니다. 우리나라에선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다가 마지막은 제대로 준비조차 못 한 채 숨져요. 죽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과연 최선일까 곱씹으며 책을 썼습니다.”

김범석(45)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의 진료실에 오는 환자 중 80%는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돼 완치가 불가능한 4기 암 환자다. 전공의가 되고 소록도에서 공보의로 활동하던 2007년 수필가로 등단한 그가 최근 에세이집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흐름출판)를 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83세)까지 살 때 암에 걸릴 확률은 37.4%다. 그중 종양내과에는 절제술 같은 외과적 치료로 효과 보기 어려운 말기 암 환자가 온다. 가끔 표적치료제나 면역항암제가 잘 들어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항암 치료를 받으며 ‘덜 아픈’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치료를 멈추고 숨진다.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는 “환자는 살고 싶다고 하고, 가족들은 ‘어떻게든 우리 어머닐 살려달라’고 한다”며 “의사는 치료 효과가 더 이상 없다고 말하길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 ‘그냥 좋아지겠지’ 하다가 한순간 세상을 뜬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주변 정리도 몸 상태가 그나마 괜찮을 때 하셔야 하는데….”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은 암 환자들은 2008년엔 숨지기 평균 두 달 전까지 항암 치료를 받았다. 2015년엔 한 달로 그 기간이 줄었다. 마지막까지 고생하다가 가는 사람이 더 늘었다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의 ‘하면 된다’ 문화가 의학적 근거에 따른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게, 죽기 직전까지 몸을 몰아세우는 항암 치료를 지속하게 해요.” 그는 “이 병원에서 항암 치료가 의미 없다고 하면 다른 병원에 가서 항암 치료를 받는다. 주변 체면 때문에 ‘큰 병원’에 말기 암 환자를 데려오는 자식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를 폐암으로 잃었다. 당시 아버지께 해드린 게 없다는 마음의 빚 때문에 화학공학과를 다니다 입시를 다시 치르고 의예과에 진학했다.
그는 임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제 나이 이제 마흔 중반인데 만약 제가 시한부 삶이 된다면 주변 정리에 6개월은 필요할 것 같아요. 대학 입시는 초·중·고 12년을, 결혼도 몇 달씩 준비하는데 죽음은 유독 준비하지 않죠. 죽음을 부정하고 터부시하는 문화 속에서 죽음의 질은 엉망이 되는 거예요.”
책은 말기 암이라는 ‘예고된 죽음’과 가까이 있는 의사가 지켜본 환자들, 그 과정에서 느낀 의사의 고뇌를 담고 있다. 김 교수는 “적지 않으면 쉽게 잊는다”며 “환자들을 보면서 든 고민이 쓰다 보면 정리가 돼 일기를 썼는데, 그걸 책으로 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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