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황 파악조차 되지 않는 요양병원 코호트 격리

나경희 기자 2021. 1. 27.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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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호트 격리는 의료 현장에서 최대한 피해야 하지만 지난해 12월의 전략은 이 차선책과 차선책의 차선책이었다. 이에 대한 통계도 부실하다. 문제가 생기면 현장 인력이 능력껏 대처해야 한다.
ⓒ연합뉴스2020년 12월30일 서울 구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확진자 다수 발생 후 이틀에 한 번씩 검사가 진행된다.

역학조사관 최태성씨(가명)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나간 현장은 15곳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집단감염이 발생한 셈이다. 현장에서 확진자가 감염된 경로를 찾고 추가 감염을 막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확진자가 한 명뿐이거나 접촉자가 적으면 상황은 빨리 종료됐다.

12월에는 집단감염 시설 내에서 ‘코호트 격리’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코호트 격리란 ‘동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코호트·cohort)’끼리 격리하는 방법이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상황에서 코호트 기준은 감염자와의 접촉 여부다. △감염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집단 △접촉 수준이 낮은 집단 △접촉하지 않은 집단으로 나눠 격리하면 다른 집단으로 감염이 확산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최태성 역학조사관은 “감염예방 입장에서 봤을 때 사실 코호트 격리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도 지침을 통해 인정한 부분이다. 지자체용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대응지침’에는 “감염예방 및 관리에서는 환자의 동일집단 격리(코호트 격리)를 일상적으로 권장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코호트 격리는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원칙은 코로나19 감염자와 접촉한 환자를 한 명씩 격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1인 병실에 입원해야 할 환자가 주어진 1인 병실을 초과할 때” 불가피하게 집단을 나눠 코호트 격리할 수밖에 없다.

최선이 불가능한 현장에서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생사가 달린 의료 현장에서는 최대한 피해야 할 상황이다. 감염에 취약한 요양병원이나 장애인 복지시설 같은 집단시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집단감염 현장에서 주로 쓰인 전략은 ‘코호트 격리’라는 차선책이었다. 치료와 격리에 필요한 병상을 미리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해서다.

코호트 격리 와중에 ‘3그룹 격리’가 아닌 ‘4그룹 격리’라는 ‘차선책의 차선책’이 이뤄지기도 했다.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내부 구성원은 ①확진자 그룹 ②밀접접촉자 그룹 ③능동감시자(접촉 수준이 낮은 사람) 그룹 ④비접촉자 그룹으로 나뉜다. 평소라면 확진자 그룹이 즉시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채 4그룹 모두 요양병원에 남겨졌다. 확진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코로나19 전담병원의 병상마저 부족했기 때문이다.

코호트 격리라는 한계 속에서 최상의 가이드라인을 짜려 노력했던 역학조사관들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해당 요양병원에 코호트 격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을 때, 그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없었다. 해당 구역을 관리할 인력이 아예 없다든지 하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감염관리 수준을 한 단계씩 낮출 수밖에 없었다.” 최태성 역학조사관이 말했다. 당시 그의 주 업무는 “차선의 차선을 찾는 일”이었다.

병상 확보나 인력 확충 등의 외부 지원을 받지 못한 요양병원 내부는 고립된 채 고갈됐다. 가장 심각한 건 인력 부족이었다. 지난해 12월11일 직원 6명이 처음 확진된 이후 코호트 격리된 경기도 부천시 효플러스요양병원에서는 같은 달 31일 격리 해제 전까지 3주 동안 확진자 155명(사망자 39명 포함)이 나왔다. 환자를 돌보던 의료진의 피해도 컸다. 의사 2명이 모두 감염됐다.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로도 요양병원에 남아 환자를 돌보던 간호조무사 한 명은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중간 과정’에 대한 정보가 없다

지난해 12월15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시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의 의료진들은 코호트 격리 중이던 12월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코호트 격리되어 일본 유람선처럼 갇혀서 죽어가고 있는 요양병원 환자들을 구출해주세요’라는 제목이었다. 일본 유람선은 2020년 2월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된 채 코호트 격리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가리킨다. 이곳에서 확진자 712명(사망자 13명 포함)이 발생했다. 해당 글에서 의료진들은 “간병·간호 인력이 절대적으로 없어 병동마다 1~3명의 인원이 환자를 돌봐 식사 및 기저귀 갈기, 체위 변환, 가래 흡인(석션) 등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기존 간호 인력도 번아웃돼 곧 나가떨어지면 아무도 환자를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현재까지 아무런 인력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라며 외부 도움을 요청했다.

같은 날인 12월28일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는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요양병원에서 코호트 격리 중인 환자들에 대해 “병상 배정을 받지 못했지만, 자택 대기 상태가 아니라 요양병원 내 의료진의 관리를 받고 있다”라며 그들이 ‘병상 대기자’가 아님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요양병원은 감염병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시설이나 인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지만, 어쨌든 의료진이 상주하는 의료시설이므로 요양병원에 코호트 격리된 환자들은 ‘병상 대기자’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하루 뒤인 12월29일 코로나19 전국 사망자가 4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날이었다. 이 중 28명(70%)이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숨졌다. 이날 방대본은 “안타깝게도 오늘 40명의 사망자 집계가 이뤄졌다. 다만 여러 가지 의료 대응이라든지 병상이 부족한 게 원인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실제와 거리가 먼 주장이다. 1월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또다시 글이 올라왔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열흘 만에 사망한 서울시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 환자의 가족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치료병동(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이송되기만을 바라고 백방으로 전화를 시도했으나 불통이었다. 그러던 중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K방역이 우수하다고 선전하고 있을 때 (요양병원에) 누워만 계셨던 저희 어머니는 코호트 격리된 채 제대로 케어 한번, 치료 한번 못 받았다. 그렇게 버려진 채 쓸쓸하게 비닐에 두 번 싸여 국가가 지정한 화장터로 가셔야 했다.”

1월3일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코호트 격리 중 감염관리가 미흡했던 점, 적절한 시기에 의료자원과 병상이 충분히 지원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된 점 등을 인정했다. 이날 중대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간 코호트 격리된 전국 요양병원 14곳에서 확진자 996명이 발생했다. 이 중 사망자는 99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코호트 격리된 집단시설이 총 몇 곳인지, 그곳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총 몇 명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방대본 관계자는 “확진자 관련 통계를 낼 때 코호트 격리에 대한 통계는 따로 모으고 있지 않다. 환자가 어디서 확진됐고 누구와 접촉했는지와 같은 개별 역학조사 정보는 있지만, ‘코호트 격리된 시설에 있던 환자’ 등의 중간 과정은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코호트 격리는 보통 단기간에 끝나는 조치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코호트 격리와 같은 집단적 특성으로 묶인 정보는 쌓이지 않은 셈이다.

코호트 격리 시설에 관련한 통계가 부재한 상황을 두고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재난대책본부에 재난 현황판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접촉자나 비접촉자 등의) 각 그룹에 환자 몇 명이 있는지, 각 그룹을 담당하는 종사자는 몇 명인지 알아야 어느 곳에 인력이 부족한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정보조차 모으지 않는다는 건 정부가 현장 상황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병상 대기자, 사망자와 같은 결과적인 수치만 남고 ‘중간 과정’에 대한 정보는 흩어져버리는 현 상황에 대해 그는 “앞으로 코호트 격리 시설에서 문제가 생겨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쌓인 데이터, 쌓인 매뉴얼 없이 현장 인력이 능력껏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우려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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