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고 싶어 미루고 있는 것

김세윤 2021. 1. 27. 01:4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하에 천국이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도 오래 알던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곳.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은 행복에 젖어드는 곳.

그의 영화는 이번에도,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갈 수 없는 곳에 데려간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울〉
감독:피트 닥터
목소리 출연:제이미 폭스, 티나 페이, 다비드 디그스

지하에 천국이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도 오래 알던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곳.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은 행복에 젖어드는 곳. 신의 이름은 ‘재즈’, 천사의 이름은 ‘피아니스트’. 88개 건반을 어루만지는 열 손가락이 아이의 마음을, 아니 영혼을 사로잡았다.

뮤지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없었고, 어쩌다 보니 음악 선생님이 되었다. 정규직으로 눌러앉을 기회가 찾아왔다. 꿈을 접을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때로 꿈은 용수철과 같아서, 접으려고 하면 오히려 펼쳐진다. 바로 오늘 밤, 오래전 아빠를 따라 내려간 그 지하 재즈 클럽에서, 전설의 재즈 뮤지션과 함께 공연하기로 한다. 급히 구한 대타 연주자면 어때? 꿈의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기쁜 마음을 주체 못하고 거리를 내달리다가 그만, 맨홀에 빠져버린 주인공 조(제이미 폭스).

지하에 천국이 있었다. 이번엔 진짜 천국이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모인 곳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영혼’이 모인 곳으로 숨어든다. 어떻게든 지상으로, 어떻게든 나의 삶으로 돌아갈 방법을 궁리한다. 죽더라도 오늘 밤 무대엔 서보고 죽어야 하니까. 안 그럼,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마니까.

전작 〈인사이드 아웃〉에서 사춘기 소녀의 머릿속을 탐험한 피트 닥터 감독은 신작 〈소울〉에서 중년 남성의 마음속을 여행한다. 인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위로해준 그가, 이번엔 우리의 지친 ‘영혼’을 재즈 선율에 맞춰 춤추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이번에도,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갈 수 없는 곳에 데려간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인 세상에서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삶의 이치 하나 관객 발 앞에 툭, 던져놓고 사라진다.

“어느 물고기가 나이 많은 물고기에게 물었지. ‘저는 바다를 찾고 있는데요.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그러자 나이 많은 물고기가 말했어. ‘바다? 여기잖아. 지금 네가 있는 곳.’ 그랬더니 어린 물고기 녀석이 그러는 거야. ‘이건 그냥 물이잖아요. 제가 찾는 건 바다라고요.’”

이미 바다에서 아직 바다를 찾다

영화 〈소울〉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권태와 실패를 짊어지고 낑낑대는 모든 어른의 말문이 막히는 순간. 이미 바다에서 아직 바다를 찾는 물고기가 내 안에서 헤엄친다. 뭔가 ‘이루고’ 싶어서 지금 ‘미루고’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새삼 삶의 의미를 묻고 싶어진다.

“삶의 의미는 인간이 묻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몸부림이,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말을 곱씹게 하는 영화.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FM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 〉진행자) edito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