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임종 직전 환자 132명이 연명의료 거부한 까닭은

신성식 입력 2021. 1. 27. 00:58 수정 2021. 1. 27.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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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제도 시행한지 3년 만에
"내 마지막은 내가 결정" 정착
최종 결정까진 4일~1주일 걸려
13만여명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삶을 마무리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연명의료 중단, 즉 존엄사를 선택한 임종환자에게 “왜 그런 결정을 하셨나요”라고 묻기가 참 어렵다. 너무 잔인한 질문이다. 이런 말기나 임종환자 132명 중 36.4%가 이렇게 답했다. 임종환자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하여 사망이 임박한 사람이다. 이들은 연명의료 계획서에 서명한 사람들이다. 중단 대상 연명의료 행위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을 말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존엄사 시행 3주년(2월 4일)을 맞아 실제 존엄사를 결정하고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 336명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11월 온라인으로 설문 조사했다. 당사자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마무리한다’는 말은 임종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연명의료 결정제도 도입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 다음으로 많이 선택한 동기는 ‘생의 마지막에 예상되는 고통을 줄이려고’ 다. 31.8%가 이렇게 답했다. 16.7%는 가족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임종 상황에서도 가족을 걱정하고 있다. 존엄사 선택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4일~1주일이 34.8%로 가장 많다. 절반가량이 시간이 충분했다고 답했다.

2018년 2월 연명의료 결정제도(존엄사)를 시행한 지 3년 만에 존엄사를 택한 사람이 13만4945명(지난달 기준)에 달한다. 지난해 5만4942명이 택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지난해 사망자(30만7764명)의 약 18%에 해당한다. 2019년(5만1747명)보다 6.2% 늘었다.

연명의료

A씨 가족은 말기 폐암을 앓는 아버지의 연명의료 거부를 결정했다. A씨는 “아버지가 더는 치료받지 않길 원했다. 암이 재발하면서 아버지가 아주 힘들어했다. 중환자실 내려가면 다시 눈 뜨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A씨 아버지처럼 가족이 결정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가족 2인이 부모의 평소 뜻을 증언하거나, 그걸 모를 경우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된다.

이번에 환자 가족 전원 합의로 존엄사를 택한 139명을 설문 조사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오랫동안 연명의료를 받아왔기에 이제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어서”라고 합의서에 서명한 동기를 설명했다. B씨가 이런 경우다. 아버지의 병세가 너무 급하게 악화했고, 의료진은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했다. 가족들이 아버지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고 짧은 시간에 존엄사 동의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 방법은 4가지다. 본인이 연명의료 계획서나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한다. 가족이 부모 의사를 추정하거나 전원 합의한다. 아직도 가족 전원 합의가 여전히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까지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한 사람의 31%에 달한다. 가족 전원 합의는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다. B씨는 “아무래도 당사자가 결정하지 못하면 가족이 선택해야 한다. 보내는 입장에서 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게 맞았을까. 과연 이렇게 한 게 잘한 건가. 나와 언니에게 (이런 의문이) 오래 갔어요”라며 “당사자가 결정하면 굉장히 좋은 제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존엄사는 지난 3년간 무난하게 시행됐다. 지금은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의 아버지는 심폐소생술 같은 추가적인 연명의료 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기관 삽관을 해서 인공호흡을 했다. A씨는 “돌이켜보면 굳이 기관 삽관은 안 해도 됐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현행 법률에 말기 환자일 때 연명의료 계획서를 쓸 수 있게 돼 있어서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 시기를 말기환자 이전에도 쓸 수 있게 당겨야 한다”며 “말기에 쓰다 보니 본인이 의사를 표명할 시기를 놓치고 가족이 결정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불치병 가능성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작성하고, 임종기에 시행하면 된다. 게다가 나중에 맘이 바뀌면 수정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외국에서 활용하는 의사조력 자살도 이제 논의해볼 때가 됐다”고 말한다.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에게 의사가 미리 극약을 처방하고, 환자가 스스로 선택해서 이를 복용하는 제도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도입됐지만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와 말기 환자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는 환자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말기 암환자는 두 세 달 내 숨지지만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이런 환자가 더 고통을 받는다. 가족도 마찬가지”라면서 “대만이 이런 환자를 연명의료 중단 대상에 넣었는데, 우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만은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2000년 시행하다 2019년 말기 환자, 돌이킬 수 없는 혼수상태에 처한 환자, 영구적 식물상태, 영구적 심한 치매 환자를 새로 포함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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