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의 사람사진] 이춘희 명창의 아리랑
최근에 경기소리 이춘희 명창이 살아온 삶을 책으로 정리했다.
『경기소리 길 위에 서서 아침을 기다린다』란 책 이야기는 이렇다.
“어린 춘희는 무병처럼 소리병을 심하게 앓았다.
가슴은 불화살을 맞은 것처럼 뜨거웠고, 정신은 하얗게 탄 듯 아득했다.
소리병의 씨앗은 어머니가 그를 안고 나지막이 불러줬던 사발가였다.
일제의 울분을 담은 사발가는 어머니를 통해 그의 가슴에 각인되었다
병원에서도 알 수 없는 병이라 했다.
먹은 것이 없는 데도 토하며 바닥을 구르기 일쑤였다.
희한하게도 소리를 하면 아픔이 사라졌다.
길거리 라디오, 유성기 가게에서 민요 가락이 나오면 지나치지 못했다.
민요를 하면 기생으로 여겨지는 시대니 배우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열여덟 나이에 기생이 아닌 가수를 꿈꾸며 가요학원에 다녔다.
게서 2년간 꿈을 키웠지만, 자신이 부르고 싶은 건 민요임을 깨달았다.
수소문 끝에 민요학원을 찾았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라 스승 이창배 선생의 소리를 귀로 듣고 익혀야만 했다.
음을 잊지 않기 위해 걸으면서도 소리 지르느라 전봇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죽으라 연습만 하는 그에게 외모를 비하하며 면전에서 구박하는 이도 있었다.
인물이 아무리 부족해도 ‘소리하면 이춘희’가 되리라며 연습 또 연습했다.”
2012년 인터뷰 자리에서 이 명창이 외모로 인한 설움을 직접 들려줬다.
“죽을 정도로 아파도 소리만 하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죽도록 소리만 했습니다.
흑백 TV 시대가 왔습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찬밥이었습니다.
컬러TV 시대가 오니 더했습니다.
방송에 나가도 얼굴을 비춰주지 않기도 했습니다.”
속을 털어놓으며 이 명창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하염없었다.
2012년 이 명창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우리 아리랑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그의 소리가 있었다.
결국 이춘희의 아리랑이, 우리의, 세계의 아리랑이 되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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