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현의 포커스] 25번째 대책이라도 성공하려면..'헨리 조지'부터 놓아줘라

송종현 입력 2021. 1. 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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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단 공급'설 前 부동산 대책도
결국 토지공개념 반영할 듯
"땅값 상승분은 모두 환수" 철학..'세금폭탄' 등으로 실현
집값 급등, 수요·공급 아닌 '분배 정의'로 풀려다 실패 거듭
고도화된 경제학·수요자의 '합리적 기대심리' 받아들여야
송종현 논설위원

설 연휴 전 발표될 25번째 부동산 대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확인한 대로 큰 틀은 ‘공공 주도의 공급확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및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 완화 같은 거래 활성화 정책이 병행될 것이란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정부는 손사래를 쳤다. 되레 개발지역에 이른바 ‘투기수요’가 몰릴 것을 우려해 현행 토지거래허가제보다 의무 거주기간을 더 늘리는 초강력 규제를 가하는 방안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땅값 상승으로 인한 소위 불로소득을 허락하지 않는 지난 24번의 ‘헨리 조지 실험’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정책 책임자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른바 조지스트(헨리 조지 추종자)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 이유 중 하나다. 변 장관은 공기업 사장 시절부터 줄곧 “조지의 저서 《진보와 빈곤》을 읽고 사회의 불평등을 결정짓는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혀왔다. 때맞춰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지난달 “조지의 토지단일세 취지를 우리나라 조건에 맞게 실행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지대 급등이 빈곤 불러와”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년)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동시대 인물이다. 마르크스와 비슷하게 ‘경제정의’를 지향했지만, 폭력혁명 대신 불로소득 환수를 핵심으로 여겼다는 게 차이점이다. 그는 생산이 늘어나면 땅 투기로 인해 지대(地代)가 임금보다 더 빨리 상승하고, 격차가 갈수록 커져 빈곤을 심화시킨다고 봤다. 이를 타파하려면 하늘이 주신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전액 세금으로 환수해 공동체를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금이 토지단일세, 그 철학이 토지공개념이다. 다만 “땅값 상승분 이외에는 일절 세금을 매기면 안 된다”고 주장한 자본주의자였던 탓에 마르크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적 배경, 땅을 천부(天賦)적 요소로 인식했던 이론 때문에 그의 토지관이 구약성서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禧年)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많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7년 주기인 안식년이 7번 돌아오는 49년의 다음 해(희년)에 땅주인들이 땅을 모두 반납한 뒤 재임대해 그동안 발생했던 빈부격차를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국내 주류 경제학계에선 조지를 경제학자라기보다 대중연설가나 저술가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지만 그가 동시대, 혹은 후대에 남긴 영향이 작지 않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까지 조지의 이론에 상당한 시사점이 있음을 인정한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조지의 토지단일세는 가장 덜 나쁜 세금제도”라고 평가한 게 대표적이다. 제임스 뷰캐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이 “조지의 주장은 큰 호소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례도 있다. 다만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인 앨프리드 마셜의 경우 “도덕적 이유로 토지가치세를 지지한다”면서도 “땅 소유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복잡다단한 경제 흐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탓에 그의 사후(死後) 문명 발전은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투기→임금보다 빠른 지대 상승→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토지가치세를 징수해야 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산업 혁신으로 땅값이 상승한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근로자들의 실질임금도 올랐다. 경제학계에선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자산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서면서 소득불평등이 커진다”고 주장한 게 조지의 이론을 연상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피케티는 데이비드 하비 같은 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로부터도 “순진하고 공상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참담한 ‘성적’

조지의 이론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도화한 것은 노태우 정부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집값이 급등하자 1989년 ‘토지공개념 3법’이라고 불리는 토지초과이득세·개발이익환수제·택지소유상한제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는 각각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인 1994년과 1998년 헌법불합치와 위헌 판정을 받아 폐기됐다.

2000년대 들어 토지공개념에 입각한 정책을 적극 시행한 것은 좌파 성향의 노무현·문재인 정부였다. 두 정부에서는 조지스트 학자들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와 김수현 세종대 교수가 각각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아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취득세 강화와 같은 ‘세금폭탄’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시행을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실험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토지공개념적 제도들이 도입된 세 시기 모두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폭발하던 때였다. 그런데 5대 신도시 200만 가구 공급을 밀어붙였던 노태우 정부 이외에는 ‘투기수요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서울 및 수도권 핵심지 재건축·재개발을 틀어막아 버렸다. 부동산 문제를 수요·공급이란 시장원리 대신 ‘분배정의’를 앞세워 풀려고 했던 것이다.

서울 주요 아파트 34개 단지를 대상으로 한 경제정의실천연합 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는 집값(전용면적 82.5㎡·25평 기준) 상승률 1위(평균 94%), 문재인 정부(2017년 5월~2020년 5월)는 금액 증가분 1위(4억5000만원)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노태우 정부가 임기 후반기에 치솟던 집값을 극적으로 잡은 사례가 있지만, 이는 ‘공급폭탄’ 덕이지 토지공개념 3법 때문이 아니다”라며 “헨리 조지의 이론에 근거한 부동산 정책은 대개 실패했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투기’란 허상에서 벗어나야

돌이켜보면 현 정부 출범 후 부동산 정책은 줄곧 ‘투기와의 전쟁’이었다. 서울 및 수도권 핵심지역에 대한 재건축·재개발 억제로 양질의 주택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실수요자들이 몰려드는데도 실체가 모호한 ‘투기세력’을 잡겠다고 헛발질을 거듭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라치기’가 횡행해 “부동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컸다.

정부가 25번째 대책 발표를 앞두고 ‘특단의 공급 확대’를 공언하고 있지만, 물량 증가로 발생할 이익의 상당액을 공공이 환수하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들과 궤를 달리한다고 보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 주택정책을 임대 위주로 짜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체 주택의 70%를 임대로 공급한 싱가포르의 사례가 있기는 하나, 인구 560만 명의 소국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더구나 공공임대주택을 임차하고 5년 뒤부터는 건물 가격 상승분을 인정받아 매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크다.

계속된 실패에도 정책 궤도를 수정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대체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것인지 국민적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정책 설계자였던 김수현 전 정책실장이 아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 일각의 시선도 있지만, 신빙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여권의 한 인사는 “부동산 정책 방향은 대통령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통령 스스로 ‘투기는 용납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워낙 강해 설득이 쉽지 않은 분위기로 알고 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는 현실경제의 복잡계적 속성을 인정하지 않고, 투기만 잡으면 집값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단선적인 도식화(化)의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해답은 우리가 가지고 있어’라는 식의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투기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친(親)시장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는 조지스트 같은 이념론자들이 아닌 시장에 능숙한 전문가들이 주도해야 할 것이다. “국내 조지스트들은 《진보와 빈곤》 출간 후 140여 년 동안 고도로 발전한 경제학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배워야 한다.

부동산 상승의 원인은 비(非)일관된 정책에 대한 투자자의 왜곡된, 그러나 합리적 기대심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지 보유세를 강화한다고 다스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박호정 고려대 교수)

  국내 '조지스트' 계보
'예수원' 설립 대덕천 신부 소개…대구 '기독경제학회' 통해 확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은 국내 조지스트들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세종대 교수 출신인 그와 학계에서 인연을 맺은 조지스트 중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요직에 앉았기 때문이다. 변 장관이 2014년 소장을 맡은 ‘한국도시연구소’는 공공임대주택·주거복지정책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세종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를 비롯해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하성규 한국주택관리연구원장 등이 이사로 있다.

한국에 조지의 이론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성공회 수도원인 ‘예수원’을 설립한 대덕천 신부다. 1918년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미국인 장로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57년 입국해 1965년 예수원을 설립했다. 이후 조지의 토지관에 기독교적 요소가 가득하다고 보고 종교월간지 ‘신앙계’ 등을 통해 줄기차게 소개했다.

학계에서는 대구지역 기독교인 경제학 교수 모임인 ‘기독교경제학연구회’가 조지의 이론을 확산시킨 발원지로 지목된다. 《진보와 빈곤》을 번역한 김윤상 전 경북대 석좌교수,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을 주도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에 이론적 발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이 동참했다. 이 학맥(學脈)은 여권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조지스트임을 자처하며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에 이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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