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작품 읽어내려 가는 즐거움 극대화하려 했죠"

김용출 입력 2021. 1. 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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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용은 없다' 펴낸 이시백 작가
용꿈 꾸지만 좌절하는 3代 민초 이야기
한번 펴면 덮을 수 없는 웃픈 스토리 가득
"자살률 1위 선진국 한국의 민낯에 주목
물질에 매어 잃어버린 가치 우화적 묘사
줄거리 풍성하게 만들려 현실·환상 뒤섞어
소설 원형인 '이야기 보부상' 계속 추구할 것"
‘이야기 보부상’을 자처하고 최근 장편 ‘용은 없다’를 펴낸 이시백 작가는 “‘소설은 결국 이야기’라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며 “할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이야기책을 많이 읽어줬는데, 그런 이야기책의 즐거움을 우리 소설에서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기대한 건 고민하지 않고 (책을) 단숨에 읽고 행복해하는 것이었어요. 작정하고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지요. 주제나 정신이 그렇더라도 이야기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싶었어요.”

3대에 걸친 민초들의 이야기를 ‘환상적 리얼리즘’ 방식으로 풀어낸 장편 ‘용은 없다’(삶창)를 최근 상재한 소설가 이시백은 ‘이야기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읽는 즐거움’을 극대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읽는 즐거움’ 측면에선 분명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수많은 이야기가 종횡으로 질주해 ‘제1차 독자’인 기자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낙오 없이 끌고 갔을 뿐 아니라 작품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소리내 웃었는지 모를 정도로 쉼 없이 웃음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시인 유용주 역시 ‘추천사’에서 “아프면서 웃긴다. 나는 함부로 자주 웃었다… 자고로 이야기는 힘이 세다. 밤을 꼬박 새운다”고 말했다.
특히 실제 문헌은 물론 가상의 문헌까지 동원하고 다양한 사건과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교직해 이야기를 극단으로 끌고가 ‘마술적 또는 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보르헤스의 작품이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다시 읽는 느낌이랄까.

소설은 산업화를 배경으로 부모들과 몽룡-아지 부부, 그들의 자식인 금룡과 은룡, 말희 등 용꿈을 꾸지만 좌절하는 3대 민초들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그물을 걷으러 강에 나간 틈에 몽룡이 하늘에서 떨어진 미꾸라지 대열을 쫓다가 산막에서 아지를 만난다. 아지와 몽룡은 살을 섞으며 아들 금룡과 은룡, 딸 말희를 차례로 낳는다. 몽룡은 도박에 미쳐 시간과 재산을 탕진한 뒤 장맛비에 용을 타려다가 사라지고, 세 자녀 역시 용꿈 비슷하게 꾸다가 스러진다.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살아온 아지의 곁에 남은 건 있으나 마나 한 자식과 닳아버린 바늘뿐. 그녀는 시커멓게 입을 벌린 밤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너희는 어디로 갔느냐. 네가 찾으려던 보물과 네가 듣지 못한 아름다운 노래와,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들려다오. 너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306쪽)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비루하고, 비겁하며, 거짓말도 밥 먹듯이 잘하고, 이(利)에 매우 민감하다. 시대의 흐름에 크게 흔들리면서도 강인하고, 하나의 꿈을 품고 있으며, 슬픔에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희극이 아니라 서늘한 비극이다.

농익은 사투리와 토속적인 언어가 풍성한 농촌소설로 ‘제2의 이문구’라고 불린 이 작가를 지난 22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소설 모티브는 무엇이었는지.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대국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데 ‘어떻게 자살률은 OECD 1위인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생명을 끊는가’ 하는 모순에서 출발했어요. 소설 속 아지가 자식마저 묻어야 하는, 배부름이나 풍요에 의해 희생된 가치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으냐 하는 생각에서 쓰게 됐지요. 저 자신도 그렇지만, 돈과 욕망에 매몰돼 있는 비극적 참상들을 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에 매달려 얻은 것도 적지 않겠지만, 잃어버린 가치를 우화적으로 다뤄보려 했어요. 이야기의 즐거움은 상상력에 있고 독자의 몫이라고 보기에 1960, 70년대 사건을 에피소드로 사용했지만, 적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다분히 신화적이고 상징적이지만 배경과 맥락은 현실적인 에피소드, 사건을 담아냈지요.”

―이야기를 정말 극단까지 밀고 갔는데.

“제가 이번에 가장 기대한 것은 고민하지 않고 단숨에 읽는 것이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보르헤스적 기법으로, 인문학적 교양이나 주석을 이용해 환상적인 이야기에 개연성을 뒷받침하려 했어요. 주석을 보면 실제 있는 책도 있지만 없는 책도 적지 않아요. 현실과 환상, 꾸며진 이야기와 현실을 막 뒤섞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싶었죠.”

―‘작가의 말’에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뒤 ‘천일야화의 첫 이야기’라고 했는데(그는 “역사나 학문이 아니라, 까막눈인 조부가 줄줄 외던 그 이야기의 즐거움을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6, 7세 때이던 1960년대 초 시골에 내려가면 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주무셨는데, ‘유충렬전’을 읽으셨어요. 그런데 최근에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까막눈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할아버지는 그걸 외우셨던 것이죠. 글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매료시킨 이야기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던 걸 처음 시도한 것입니다.”

1988년 ‘동양문학’ 소설부문에 소설 ‘재회’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장편 ‘종을 훔치다’(2010), ‘사자클럽 잔혹사’(2013), ‘나는 꽃도둑이다’(2013)를, 소설집으로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 ‘갈보 콩’(2010) 등을 펴냈다. 권정생창작기금(제1회), 아르코 창작기금(2012), 거창평화인권문학상(2014), 제11회 채만식 문학상(2014) 등을 수상했다.

―몽골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하더라.

“2005년 시인인 김진경 선배를 따라 몽골에 갔다가 매료돼 무려 스물다섯 번이나 드나들게 됐지요. 산문을 2권이나 펴냈고요. 유목문화의 매력은 결핍이라고 봅니다. 유목 문화에는 없는 것이 많은데, 돈, 창고, 시장이 없어요.”

―‘이야기 보부상’을 표방하고 있는데.

“유목민은 양을 길러 먹고 살지만 그렇지 않는 이들도 있어요. 이들은 두 줄짜리 악기를 가지고 떠돌아다니며 유목민 이야기를 들려주고 고기를 얻어먹고 삽니다. 몽골 시인의 어머니이죠. 더 위로 올라가면 샤먼 같은 존재가 있겠지요. ‘초원을 떠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보부상이 소설의 원형 아닌가, 우리 장터나 마을마다 돌아다니는 소리꾼이나 약장사의 이야기적 요소를 우리 소설이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그것을 복원하려는 취지로 이야기 보부상을 표방했지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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