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 아기에게도 4주.. "공모주 청약이 출산장려책이냐"
지난 22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증권사 지점에 유모차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어린 자녀 명의로 주식 계좌를 만들기 위해 객장을 찾아온 젊은 엄마들이었다. 미성년자 계좌는 온라인 개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직접 방문해야 한다.
이 증권사 직원 A씨는 “작년엔 자녀 증여 용도로 주식 계좌를 많이 만들었다면, 올해는 공모주 청약을 하겠다며 자녀 계좌를 만드는 젊은 부모들이 늘고 있다”면서 “오랜 기간 공모주만 전문으로 해왔던 ‘선수’들도 가족 명의 계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돈보다 머릿수가 중요해진 공모주 청약
지난해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등이 연일 홈런을 날리면서 공모주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투자 수단으로 부각됐다. 그런데 작년 공모주 열풍이 불어 1억원의 청약증거금을 넣어도 주식 1~2주밖에 못 받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소액 투자자는 공모주와 같은 머니 게임에서 매우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약 경쟁률에 따라 공모주 배정 물량이 달라지는 기존의 ‘비례배정 방식’은 돈(증거금)을 많이 넣을수록 공모주를 더 받는 ‘돈 놓고 돈 먹기’ 구조였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작년말 메스를 들이댔다. 공모주 물량 가운데 절반은 종전 방식으로 배정하고, 나머지 절반은 청약을 신청한 계좌(1인당 1계좌만 허용) 수로 나눠 균등 배정하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예컨대 1000주를 공모하면 이 중 500주는 청약에 참여한 사람 수에 따라 나눠주는 것이다.
공모주 제도가 바뀌면서 ‘청약 성공 공식'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처럼 어떻게든 최대한 대출을 많이 끌어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명의를 총동원해 계좌 수를 늘린 다음 최소 수량(통상 10주)만 청약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지난 21~22일 새로 바뀐 방식으로 청약을 진행한 핀테크 업체 핑거(공모가 1만6000원)의 경우, 경쟁률은 939.39대1이었고 총 3만3170건의 청약이 들어왔다. 개인 배정 물량 26만주 가운데 13만주가 균등 배정되면서 청약 참가자들은 모두 4주씩(13만주를 계좌수 3만3170개로 나눈 값) 받았다. 공모주는 증거금의 절반만 내면 되니까 단 8만원만 넣고 10주를 청약한 투자자도 4주를 받았다. 예전 방식대로 4주를 받으려면 약 3000만원이 필요했는데, 문턱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싱글 투자자들 “출산 장려 정책이냐”
문제는 이렇게 진입 장벽이 낮아지자 차명 계좌 같은 편법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같은 금액을 투자하더라도 명의를 여러 명으로 나눈 사람이 공모주를 더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20일 마스크 전문업체인 씨앤투스성진의 공모주 청약에서는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증거금으로 5억1200만원(3만2000주)을 넣은 자산가는 고작 24주를 배정받은 데 반해, 4인 가족 명의로 16만원씩 총 64만원(40주)을 넣은 가족은 16주를 배정받았다. 실탄은 800배 차이 나는데, 배정 물량 차이는 크지 않았다.
IT기업인 솔루엠 역시 25일 배정 결과가 나오자 비슷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계좌로 5억9500만원 뭉칫돈을 넣은 사람은 30주를 배정받았지만, 계좌당 8만5000원씩, 42만5000원을 넣은 5인 가족은 25주를 받았다.
공모주 투자자인 주부 이모씨는 “새로 바뀐 제도는 돈이 아니라 머릿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한데, 정부가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한 출산 장려 정책으로 공모주 제도를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존 공모주 제도가 자금이 많은 사람에게 유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금력 격차가 무시되고 배정 수량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가 무시된 것 같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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