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대신 택한 KBO, 휴가 때도 야구규약집 챙기죠" ['유리천장' 뚫은 킴 응, 한국 야구에도 있다 (7)]

최희진 기자 입력 2021. 1. 2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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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선 KBO 1호 사내변호사

[경향신문]

한국야구위원회(KBO) 첫 사내변호사인 류미선 KBO 법무파트 파트장이 지난 2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직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계약서 검토부터 상벌 자문까지
프로스포츠 법무 파트 기틀 다져
올해는 대대적 규약 개정 작업도
“ML처럼 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맨손으로 불모지를 개척하고 결국 자신만의 영토를 일군다. KBO 최초의 사내변호사인 류미선 KBO 법무파트장(38)도 그런 길을 걸어왔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로펌이 아닌 KBO에 입사해 법무 파트의 기틀을 다지고 올해까지 7년째 야구 관련 각종 계약과 소송, 야구규약 관련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도곡동 KBO 사무실에서 만난 류 파트장은 KBO 야구규약집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는 “사내의 여러 부서에서 ‘이 조항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냐’는 문의 전화가 자주 온다”며 “바로 답변을 드릴 수 있도록 항상 규약집을 갖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됐다. 여름 휴가를 갈 때도 규약집을 항상 들고 간다”며 웃었다.

류 파트장은 2015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그해 4월 KBO에 입사했다. 변호사 지망생들이 그렇듯 그 역시 로펌에 갈 계획이었다. 로펌을 알아보던 시기에 때마침 KBO가 사내변호사를 임용한다는 채용공고를 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류 파트장에게는 운명 같은 일이었다.

그는 “고향이 대구다. 아버지가 삼성의 오랜 팬이라 나도 습관처럼 야구를 보다가 그 매력에 빠졌다”며 “중학생 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을 빠지고 시민야구장으로 갔던 야구광이었다. 내가 야구팬인 것을 아는 연수원 동기들도 KBO에서 일해보라고 적극 추천해줬다”고 말했다.

어느 분야든 개척자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류 파트장은 “처음 입사했을 때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스포츠에도 사내변호사가 없었다.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받을 곳이 전혀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초석은 다져놓은 게 아닌가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며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 ‘우리도 사내변호사를 뽑고 싶으니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나름대로 역할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류 파트장의 업무에는 경계가 없다. KBOP가 주도하는 스폰서십 사업, 통합 마케팅 사업 등의 계약서를 검토하고 KBO나 KBOP가 관련된 소송을 관리한다. 최근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자주 불거지면서 클린베이스볼센터와 상벌위원회에도 자문하고 있다. 리그의 질서를 규율한 규약집을 검토해 오류를 찾아내고 개정을 건의하는 것도 류 파트장의 일이다.

류 파트장은 “KBO 입사 후 규약집을 읽으면서 팬으로 봤던 야구와 규약을 통해 보는 야구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며 “규약은 야구의 역사가 녹아있는 것이라 법리적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해 왔다”고 말했다.

올해도 규약 개정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정지택 신임 총재님이 규약을 대대적으로 정리하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나도 한 번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류 파트장은 남성들의 스포츠인 야구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동력으로 ‘열정’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사무실에서 당당하게 야구 중계방송을 켜 놓고 일할 수 있다는 게 KBO의 장점”이라며 웃은 뒤 “물론 취미가 업무가 되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KBO가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산업화돼서 여러 측면에서 풍요로운 리그가 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야구계 진출을 꿈꾸는 후배 여성들을 향해서도 격려의 말을 남겼다. 그는 “두려움은 벗어놓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하겠다는 열정으로 노력하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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