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의 '십시일반'.."폐지 줍는 노인들에 마스크 선물해 뿌듯"
[경향신문]
지난 25일 오전 11시, 전북 전주시 소비자정보센터 2층 사무실에 김용학씨(83)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씨 손에는 마스크 한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그는 직접 쓴 편지 한 통과 함께 마스크 1000장이 든 보따리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김씨는 편지에 “노인 일자리를 얻어 활동하는 저를 비롯한 팀원들은 선택받은 복 받은 사람들”이라면서 “사회에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성금 모으기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썼다. 이어 “바라옵건대 음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김씨는 공원에서 청소일을 한다. 5년 전부터 공공형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 김씨는 전주 덕진구 인후2동에 있는 공원들을 맡아 청소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노인들은 30명이다. 이들은 한 달에 열 번 청소일을 하고 27만원을 월급으로 받는다. 김씨는 넉넉지는 않지만 손주들 용돈을 주고 친구들에게 밥도 사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새해 첫 달 월급을 받고서는 마음이 달라졌다고 했다.
2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김씨는 “코로나19라는 몹쓸 전염병이 돌면서 가장 힘들어진 사람들이 노인들”이라며 “무료급식장도 모두 문을 닫아 갈 만한 곳도 거의 없는데 그나마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복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근로를 해서 얻은 수입이 보잘것없지만 더 힘겹게 살아가는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마스크를 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이 같은 뜻을 전하자 모두 동참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의 동료들은 “액수는 적더라도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며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성금을 보탰다. 이렇게 모인 돈이 35만원이었다. 그 돈으로 마스크 1000장을 샀다. 김씨는 이 마스크를 마스크 기부운동을 하고 있는 소비자정보센터에 전달했다.
김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거리에서 폐지를 주워 고작 몇천원씩 벌이를 하는 노인들을 보면 안타까웠다”면서 “여기 동료들도 똑같은 마음인데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에 다들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한지선 대한노인회 전북취업지원센터 팀장은 “김용학 할아버지는 5년째 성실하게 공익형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계시는 분”이라면서 “65세 때 시내버스 무임승차가 가능해지자 통장에 입금된 시내버스 보조금을 1년간 모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월급의 10%를 이웃에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정보센터는 기부받은 마스크를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26일부터 직접 찾아가 1인당 10장씩 전달하기로 했다. 전주시내에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극빈 노인들은 20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의 노인들이 마스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보금 소비자정보센터 소장은 “어르신들께서 비슷한 처지의 노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픈 심정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마스크를 기부해 주셨기 때문에 그 가치는 환산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어르신들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마스크 의미를 잘 설명해 드리면서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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