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동정론에 빠지면 성폭력 진실은 멀어져"

정환봉 2021. 1. 2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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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18일 신고받은 뒤 진상조사를 거쳐 25일 당 대표단에 보고한 배복주 부대표는 그 일주일을 '압박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배 부대표는 "장 의원의 경우 피해자이자 국회의원이라는 두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서 정치인으로의 일상을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어야 정치의 공간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실명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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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성추행 대처' 이끈 배복주 부대표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18일 신고받은 뒤 진상조사를 거쳐 25일 당 대표단에 보고한 배복주 부대표는 그 일주일을 ‘압박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숱하게 흔들린 그를 붙든 것은 20년 넘게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온 경험과,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이었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한겨레>를 만난 배 부대표는 “지난 일주일 동안 내적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20년 동안 피해자 지원을 해오면서 몸에 훈련된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원칙이란 ‘가해자의 서사’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었다. 배 부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가해자와의 친분이나 삶의 궤적, 조직의 평가 등을 성폭력 사건과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가해자 동정론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고 결국 2차 피해가 발생한다. 그 대목을 가장 경계했다”고 말했다. 배 부대표가 사건 처리 과정을 철저하게 비공개한 것 역시 2차 피해를 우려해서였다.

‘사건을 혼자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가’, ‘사건이 공개되고 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일주일 동안 배 부대표의 머리를 오갔던 생각들이다.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장 의원 덕분이라고 했다. 배 부대표는 “장 의원이 피해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우리 당 의원으로 많은 고민을 함께 했다. 장 의원의 감수성과 여러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 나에겐 배우는 시간들이었다. 피해자가 오히려 서포터의 역할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당대표가 연루된 사건임에도 여느 성폭력 사건과 달리 처리 결과 등을 두고 당내 이견이 많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배 부대표는 “정의당이 성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했던 순간들이 쌓여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5일 대표단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보고했을 때 다들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이 기존에 정치인의 성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말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이 과정을 대표단과 의원단이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배 부대표는 여러 선택지를 장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 선택지 중에서 장 의원은 피해자 실명공개, 당 차원의 해결 등을 선택했다. 배 부대표는 처음엔 2차 가해를 우려해 피해자 실명공개에 부정적이었지만, 장 의원은 다른 판단을 했다. 배 부대표는 “장 의원의 경우 피해자이자 국회의원이라는 두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서 정치인으로의 일상을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어야 정치의 공간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실명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배 부대표에겐 아직 남은 일이 많다. 당 젠더인권본부장이자 부대표로 이번 사건에 당원과 국민들에게 거듭 사과를 한 만큼 그도 정의당을 바꿔야 할 책임을 가진 이들 중 하나다. 우선은 2차 가해를 막는 것이 급선무지만, 근본적으로 당의 체질 개선과 쇄신도 주요 과제다. 배 부대표는 “정의당에서 성폭력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잘 처리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모든 당원이 보고 있다. 당이 어떻게 이 사건을 처리하느냐가 하나의 학습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맺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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